‘감초 피자’라니,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독특한 로맨스영화를 만든 감독다운 제목이다. 사실 ‘리코리쉬 피자’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었던 레코드 가게 체인 이름으로, LP판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LA 근교의 산페르난도 밸리에서 자랐고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재료로 한 레트로 무비를 만들었다. 하지만 산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한 이번 신작이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간주하는 것은 성급하다.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개인의 노스탤지어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황금 비율로 혼합한 칵테일영화다. 20여년 전 그는 동네를 걷던 중 우연히 어느 중학교에서 열린 사진 행사를 구경하게 됐고, 어린 소년이 한 여자아이에게 데이트하자고 조르는 모습을 보고는 영화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라 생각했다고 회고한다. 16살 남자아이와 25살 여자가 교감한다는 기본 뼈대는 그렇게 탄생했다. 여기에 유명 프로듀서이자 톰 행크스의 비즈니스 파트너 게리 괴츠먼에게 들었던 흥미로운 무용담이 더해졌다. 그는 원래 아역배우 출신이었고 물침대와 핀볼 오락실 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억울하게 살인죄로 체포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게리 괴츠먼의 사연은 영화 속 개리의 스토리로 흡수됐으며, 폴 토머스 앤더슨은 자신이 클 만큼 컸다고 믿는 치기 어린 소년을 연기할 배우로 그의 오랜 친구이자 뮤즈, 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아들 쿠퍼 호프먼을 택했다. 알라나를 연기한 알라나 하임을 캐스팅한 일화는 더 드라마틱하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그의 추억이 깃든 스튜디오 시티 출신의 인기 밴드 ‘하임’에 흥미를 느꼈고, 에스테·다니엘·알라나 하임 자매를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가 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 도나 로즈마임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리코리쉬 피자>의 알라나는 실제 알라나 하임과 그의 엄마, 즉 어린 시절 감독에게 최고의 우상이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섞은 것이다. 때문에 알라나는 할리우드 틴 무비에서 묘사된 밸리 걸(캘리포니아 산페르난도 밸리 일대에서 사는 중산층 젊은 백인 여성들의 전형적인 이미지. 영화 <클루리스>를 떠올리면 된다.-편집자)과는 전혀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여기에 알라나 하임의 가족이 영화 속 알라나의 가족을 그대로 연기하며 실제 집안의 유쾌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위시켰다.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팬텀 스레드>로 이어지는 최근의 필모그래피와 사뭇 다른, 귀여운 청춘 로맨스를 만든 폴 토머스 앤더슨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4년 만에 돌아온 신작에서 훨씬 사적인 기억과 취향을 고집한, 특유의 날 선 텐션을 느슨히 늘어뜨린 이유를 물었다.
- <리코리쉬 피자>는 1973년 LA 근교 산페르난도 밸리를 배경으로 한다. 1970년생인 당신은 당시에 극중 개리와 같은 10대는 아니었다. 개리 캐릭터에 영감을 준 게리 괴츠먼은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왜 당신의 10대 시절보다 앞선 1973년을 배경으로 택했나. 당신은 이 시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 감독의 관점이 영화에서 보는 어린 소년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 흥미로울 것이다. 나도 1970년대 산페르난도 밸리가 어땠는지 생생하게 떠오르긴 하지만 정확히는 1976~77년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다. 영화가 다루는 시기와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리코리쉬 피자>의 디테일은 아주 구체적이다. 1970년대 물침대, 라디오광고, 핀볼 기계는 다른 시대 배경에 적용할 수 없다. 만약 내가 10대였던 1980년대가 배경이었다면 <리코리쉬 피자>에는 비디오게임이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게리 괴츠먼이 겪었던 시대에 솔직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 197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70년대 산페르난도 밸리가 어땠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시티의 ‘Tail O’ the Cock’ 레스토랑은 나 역시 경험했다. 하지만 1972년까지만 존재했던 청소년 박람회를 영화에 등장시키는 등 의도적인 속임수도 몇 가지 있다.
- 당신이 기억하는 산페르난도 밸리는 어떤 곳이었나.
= 내 기억을 영화에 정확히 투사했다. 누구나 젊은 시절을 돌아볼 때 생기는 로맨티시즘이 있을 것이다. 당시 우리를 둘러싼 질문은 우리가 반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아낼 것인지, 혹은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 묻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스터리한 시간을 기억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에 관한 디테일은 내 기억에 최대한 진실하려고 노력하거나 게리 괴츠먼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 <리코리쉬 피자>에서 묘사하는 청춘은 오늘날의 청춘과 다른 것 같다.
= 독립심이 매우 강했다. 지금의 아이들은 대부분 예전만큼의 독립심을 갖고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엔 수수께끼가 더 많았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두 볼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을 방송할 수도 있다. 미스터리가 부족하면 상상력이 열심히 발동되지 않는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70년대의 나는 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석유 파동이 일어났을 때, 물론 몇달 동안 불편함을 겪긴 했지만 찰나의 종말이 온 것에 오히려 설렘을 느꼈다. 아포칼립스적인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짜릿하다.
- 흥미롭게 꿰어진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스타배우들이 등장한다. 브래들리 쿠퍼는 헤어스타일리스트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만나 교제하고 이후 영화감독과 제작자가 됐던 존 피터스를 연기한다. 숀 펜이 연기한 잭 홀든은 <콰이강의 다리> <와일드 펀치> 등에 출연했던 배우 윌리엄 홀든을 연상시킨다. 시네필들은 청년 정치인 조엘 왝스로 분한 베니 사프디의 출연을 반가워할 것이다. 이들과의 작업은 어떻게 성사됐나.
= 브래들리 쿠퍼는 오랫동안 존경해온 배우였다. 언젠가 그와 만나 우정을 쌓고 일하고 싶었는데, 그가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마침 이번 작품에 있었다. 그는 존 피터스를 연기할 수 있다는 데 매우 흥분했다. (존 피터스는 <스타 이즈 본>의 제작자이기도 하다.-편집자) 숀 펜은 내가 30년 동안 러브콜을 보내며 사랑한 배우다. 몇번이고 그에게 내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번에 인연이 닿았다. 베니 사프디는 형과 함께 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연출한 영화에서 본 연기가 너무 감동적이었다. <리코리쉬 피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능 있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들과 또다시 일하고 싶다.
- 70년대를 대표하는 많은 영화인 중에서도 윌리엄 홀든을 묘사한 이유가 궁금하다.
= 복잡한 사연이 있다. 당시 게리 괴츠먼과 교제하다가 헤어졌던 여자 친구가 윌리엄 홀든과 영화를 찍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브리지>라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리코리쉬 피자>에 녹여내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했다. 숀 펜이 윌리엄 홀든이란 이름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고, 덕분에 굳이 진짜 그 사람처럼 보이려고 연기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둘에겐 많은 공통점이 있다. 모험을 즐기는 성향과 멋진 얼굴을 갖고 있다. 나는 지난 수십년간 고전기 할리우드에서 윌리엄 홀든의 작품을 동경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숀 펜의 작품을 존경했다. 윌리엄 홀든과 숀 펜은 모두 영화사에서 중요한 배우들이다.
- 알라나와 개리의 나이 차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고 우정에 가까운 교감을 나눈다. 그들의 로맨스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 16살 개리가 물침대 사업을 하는 등 어른처럼 행동하고 25살 알라나가 오히려 미숙한 어른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이라고 늘 생각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안정적이다. 재미있는 건 알라나가 우리 사이에 연애는 없을 거라고 분명하게 설정한다는 것이다. 여자와 로맨스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16살 소년의 본성이자 그 또래 소년들이 늘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아주 희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두 사람은 그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성적인 요소를 없애면서 그들의 관계를 점검하고, 서로를 더 필요로 하며, 더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다. 사실 개리와 알라나의 나이 차가 논란이 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미성년자와 어른의 관계를 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다른 작품들의 존재를 잘 모르기도 하고, 그것은 애초에 <리코리쉬 피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 전반적으로 조지 루카스의 <청춘 낙서>나 에이미 해커링의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영향이 보인다. 후자의 영화에는 젊은 시절 숀 펜이 출연하기도 했고. 실제 70~80년대 할리우드 청춘영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나.
= 미국에서 ‘청춘을 다룬 영화’라는 장르를 언급할 때 떠올리게 되는 작품들이다. 저예산으로 만들었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고, 뚜렷하게 미국적이면서, 유머가 스토리를 진전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흥미롭다. <청춘 낙서>와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등장은 기적과 같았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에는 숀 펜뿐만 아니라 제니퍼 제이슨 리가 출연했고, <청춘 낙서>는 리처드 드라이퍼스, 론 하워드 등 당시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다. 전에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캐스팅해서 젊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