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트와일라잇'의 스타에서 아트하우스 필름의 아이콘으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20년
2022-03-18
글 : 이보라 (영화평론가)
유령처럼, 불멸이 되리
<패닉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스펜서>에서 다이애나는 내내 추워 보인다. 난방을 하면 간편할 걸 담요로 추위를 덮겠다는 왕실의 전통을 고약하다 여기는 다이애나는 그 규율을 이기지 못하고 시종 몸을 움츠리고 있다. 중요한 말을 마칠 때마다 침을 꼴깍이는 그는 바깥으로 시원하게 한숨을 내쉬기보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함을 간신히 삼키는 편이다. 아니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에서 구역질을 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해석한 다이애나는 가늘고 긴 목을 자랑하기는커녕 목과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오그라뜨린 채 다니는 인물이다. 늘 턱을 약간 든 채 꼿꼿하게 앉는 엘리자베스 여왕과는 딴판이다. 자신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몰라 불안한 다이애나의 심경은 이렇게 연약한 자세로 금방 들통난다. <스펜서>의 북미 포스터에서 풍성한 화이트 오간자 드레스를 입고 어딘가에 푹 엎드린 다이애나 앞에는, 사실 변기가 있다. 비정한 아이러니.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보다 도리어 확 없어지고만 싶은 마음은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외출했다 마주친 경찰들에게 ‘헛것(ghost)을 봤다’고 보고하라는 데서 확실해진다. 유령이길 자처하는 이 여성은 이미 4세기 전쯤 죽은 또 다른 유령 앤 불린에게 쫓기고 있다.

<트와일라잇>

이것과 저것 사이. 불안과 역부족의 상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트와일라잇>의 벨라로 낙점된 후 세계적인 하이틴 스타가 된 동시에 오랫동안 ‘발연기’라는 비판적인 피드백을 들어야 했다. 어느 유튜브 영상은 스튜어트가 <트와일라잇>에서 시종 머리를 흔들고 눈을 깜빡이는 탓에 발작을 유발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는 더이상 귀 기울일 필요 없는 조소에 불과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때의 역부족(혹은 습관)이 지금 <스펜서>에서 유능한 자질로 뒷받침되고 있음은 자명해 보인다. <스펜서>의 다이애나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는 떠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떨림이 추위에서 비롯됐든 공포에서 기인했든 다이애나의 이 증상은 그녀를 이루는 중요한 성질이다. 평소 스튜어트가 미디어 안팎에서 보여온 예의 그 구부정한 자세,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 게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는 내외부의 압력에서 혼미한 사람을 연기하는 데 유용한 조건이 된다. 하지만 <스펜서>에서 스튜어트가 선보이는 연기가 그저 배우 자연인의 면모와 캐릭터의 설정이 잘 만난 사례쯤이라고 일컫는 건 불충분하다.

그렇다면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지금 우리 눈앞에 어떤 배우로 나타나고 있을까? 많은 스타 배우들이 그렇듯 스튜어트 또한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는 데 늘 익숙했다. 동시에 매우 어색해했다. 방송계에 종사한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미디어의 세계를 받아들였고 10살에 찍은 데이비드 핀처의 <패닉룸>으로 성공적인 눈도장을 찍었지만, 그는 여전히 남들 앞에서 자신을 오픈하길 극도로 꺼렸으며 중요한 토픽의 선봉장에 선 적도 별로 없다. 퀴어 정체성을 ‘인정’받으려 적극적으로 나선 편도 아니다. 물론 공과 사를 치밀히 분리하고 파파라치를 혐오하는 배우들은 많다. 그러나 스튜어트가 유독 흥미로운 것은 모두에게 보여야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를 꺼리는 양가적인 상태가 그가 맡은 캐릭터들을 통해 영화에서도 반복적으로 기입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영화에서 스튜어트는 대개 타인으로부터 보이는 입장으로, 말하자면 피사체로서의 형상으로 요구되는 것 같다(그러나 이는 그 역할들이 비자발적이라거나 수동적이라는 뜻과는 전혀 상관없다). <아메리칸 울트라> <카페 소사이어티>처럼 상대적으로 가벼운 장르물에서 제시 아이젠버그와 귀여운 합을 맞출 때나 <이퀄스> <리지>처럼 어두운 멜로드라마에서도 그는 주로 극을 이끄는 화자의 바깥 영역에 자리한다. 달리 말해 함께 주인공을 맡을 때도 그는 ‘상대방’에 머무는 쪽이다. 이상한 일인가, 당연한 일인가. 더 구체적으로는 이 독특한 아우라의 배우가 자신의 관점을 선취한 자율적인 자리에 위치하는 것이 타당한가, 도리어 응시의 대상으로서 타자에게 발각되고 노출되는 곳에 놓이는 것이 그럴듯한가. 스튜어트는 자주 전자처럼 등장해서는 후자에 속했다. 심지어 <퍼스널 쇼퍼>에서처럼 단독 주인공일 때조차도 그는 서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타자와 긴밀히 연루된다. 스튜어트는 자신을 향한 기대 또는 편견을 계속해서 배반하면서, 어쩌면 지금 가장 분열하는 개인에 적합한 얼굴로 존재한다(흥미롭게도 그 옆에는 <트와일라잇>에 함께 출연했던 로버트 패틴슨의 이름 또한 놓일 수 있을 것이다). 움푹 팬 눈이 일상에 밴 피로감을 나타내듯, 스튜어트를 이루는 가장 큰 정서는 불안이다. 불안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정착하지 못할 때 생기는 진동이다.

<퍼스널 쇼퍼>
<세버그>

이웃집 소녀가 아닌, 절대적인 단독자의 모습으로

<스펜서>의 유령이라는 단어가 환기하듯이 스튜어트는 어렴풋이 귀기 어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지 <트와일라잇>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가 중년의 배우 마리아(쥘리에트 비노슈)의 매니저 발렌틴으로 분한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떠올려보자. 이 영화에서 우리가 맨 처음 마주하는 것은 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채 조급하게 통화 중인 발렌틴의 모습이다. 마리아는 20년 전 자신이 맡았던 시그리드라는 역할을 라이징 스타 조앤(클로이 모레츠)에게 넘기고 나이든 상대역을 맡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버겁다. 매니저 발렌틴은 그런 마리아의 대본 연습을 돕는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발렌틴이 시그리드의 대사를 반복하며 마리아의 감정을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마리아와 발렌틴의 관계에서 누적된 미묘한 갈등이 그들이 연습하는 (극 안의) 극중 대립 상황과 겹친다. 영화의 에필로그 직전, 마침내 발렌틴은 사라져버린다. 함께 오른 실스마리아의 풍경에 마리아가 잠깐 홀려 있을 때, 이전 숏까지만 해도 그의 뒤를 따르던 발렌틴은 땅으로 꺼진 듯 없다. 구체적인 얼굴로 관객 앞에 등장한 스튜어트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의 결절점을 확인할 새를 허락하지 않은 채 증발한다. 그런가 하면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다음 작품인 <퍼스널 쇼퍼>에서 스튜어트는 아예 영매가 된다. 모린은 먼저 죽은 쌍둥이 오빠와 영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다(영매라는 존재는 현대의 배우와 겹쳐 볼 접점이 있다). 기다린다, 는 말이 무색하게 그는 오토바이를 타거나 기차에 탑승해 이곳과 저곳을 오가는 유동하는 존재다. 묘연하고 홀연하며 그러나 매혹될 수밖에 없는. 안과 밖, 여기와 저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스튜어트의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이동에 지친 피로와 고독을 내장한다. <어떤 여자들>은 불면증이라 부를 만한 스튜어트의 그늘이 여실히 느껴지는 영화다. 영화의 세 번째 장에서 스튜어트는 야간 수업을 하기 위해 새벽 내내 왕복 운전을 하는 법대 졸업생 베스를 연기했다. 천진과 순수는 릴리 글래드스톤에게 통째로 맡긴 채, 스튜어트는 피곤함에 찌들어 늦은 저녁 식사를 해치우는 무심한 얼굴이다.

<어떤 여자들>
<리지>

한편 최근의 스튜어트는 전기영화에서 호명되는 추세다. 12년 전 <런어웨이즈>에서 동명의 밴드 기타리스트 조앤 제트를 연기했던 그는 <세버그>와 <스펜서>에서 각각 전설이 된 진 시버그와 다이애나 스펜서로 활약한다. 뚜렷한 접점이 발견되지 않는 인물들임에도 이들이 스튜어트라는 하나의 육체를 공유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누가 봐도 눈에 들어오는 인상을 지닌, 그래서 절대 ‘원 오브 뎀’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물이라는 사실일 터다. 한번도 이웃집 소녀(The girl next door)인 적 없었으며 그렇다고 매닉 픽시 드림 걸(Manic pixie dream girl)의 전형에서도 한층 먼 스튜어트는 차라리 그가 속한 모든 커뮤니티 내의 절대적인 단독자였다.

우회하자면 어떤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범상한 인상으로 유능한 배우의 입지를 꿰찬다. 이들은 소위 ‘백지 같은’ 마스크로 어떤 역할이든 자유자재로 소화한다. 타고나길 강렬한 인상 탓에 그는 백지가 되기는 글렀다. 다른 부류 중에는 분명한 장기를 지녀 이를 종횡무진 선보이는 배우들이 있다. 가령 또래인 제니퍼 로렌스의 관능성 또는 과격함, 엠마 스톤의 유머러스함처럼. 이들이 그 장기에 최적인 역할을 만나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면, 스튜어트는 외양적 특징을 배제하면 딱히 꼬집어 가리킬 만한 성격은 없다. 그가 혼란스러움을 체현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앞서 말한 배우들처럼 그의 내부에서 발현되는 성질이라기보다 연출자들이 그가 맡은 캐릭터에서 이끌어내길 원하는 종류의 것이다. 사실상 스튜어트의 필모그래피는 보호망을 단단히 쳐두고 안전한 수순을 밟아온 지도다. 그럼에도 관객으로서 그의 새로운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면… 그가 부단히 분열을 증명하고 혼란을 실어나르는 존재로서 현재에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되었기 때문일 테며, 그 불안이 관객에게 마치 강신(降神)을 시도하듯 달칵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지고도 내부를 장악하듯 혹은 흔들리더라도 끝내 존재하듯, 이제 그는 불멸할 당대의 배우가 되었다.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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