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티 치티 뱅뱅, 치티 치티 뱅뱅.” 극장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된다는 할머니의 만류에도 버디(주드 힐)는 잔뜩 신난 채 <치티 치티 뱅 뱅>(1969)의 주제곡을 따라 부른다. <공룡 100만년>(1966)을 관람할 땐 또 어떤가. 의자에 등을 바짝 기댄 채 호기심에 찬 눈으로 공룡들의 싸움을 바라본다. 동그랗게 뜬 눈, 놀란 숨소리, 가족과 소곤대는 몸짓. 버디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영화를 감각하는 관객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상영되는 신은 흑백영화인 <벨파스트>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색이 덧입혀지는 때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인생에서 “색깔로 기억되는 건 영화였다”고 말하는 케네스 브래나 감독의 말과도 이어지는 대목이다.
영화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버디와 그의 가족이 겪은 일들을 다룬 작품이다. 1960년대 말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이 빚어낸 폭동, 그럼에도 이어지는 일상의 파편들, 가령 유쾌하게 영화를 관람하는 순간 같은 것들이 동시적으로 그려진다.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작품을 연출했다. 극중 사건들은 9살 소년 버디의 시선에서 지극히 사적으로 묘사되지만 도리어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유년기를 상기하게 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케네스 브래나 감독의 <벨파스트>는 제79회 골든글로브 각본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2022 각본상, 베스트 아역상, 베스트 앙상블상을 거머쥐고 얼마 전 제75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국 작품상을 수상했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음향상, 음악상 등 총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상황이다. 과연 <벨파스트>는 이 기세를 이어 아카데미에서도 축배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아카데미 결과를 예측하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영화 <벨파스트>를 6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았다.
흑백 대비를 사용한 이유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한 이유로 “고향 벨파스트는 내게 항상 흑백의 이미지였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언급한다. 그외에도 케네스 브래나 감독이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작업이었다.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브레송의 사진 작업을 보며 색을 뺀 이미지가 도리어 현실성을 강화하고 진정성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다. 흑백영화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나일 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신데렐라> <토르: 천둥의 신> 등에서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해리스 잼바로코스 촬영감독과 다시 한번 긴밀하게 작업했다. 흑백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 캐릭터들의 의상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버디 아빠(제이미 도넌)의 의상은 주로 셔츠와 재킷을 레이어드하고, 엄마(커트리나 밸프)의 의상엔 니트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질감을 다양화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버디 가족의 모습은 영화에서 “시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그려질 수 있었다.
갈등과 노스탤지어의 공간, 벨파스트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현재의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의 수도이자 상공업 중심 도시이자 항구의 도시답게 화려한 전경을 자랑한다. 하나 영화에서 그려지듯 벨파스트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갈등으로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도 거주지를 종파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과거 격렬했던 종교 분쟁의 잔해가 남아 있다. 현재의 평화로운 도시를 바라보던 카메라는 곧바로 1969년의 벨파스트를 비추고 그곳에서 버디는 장난감 칼과 방패를 들고 친구들과 골목길을 누빈다. 그러나 그의 무기로 대적할 수 없는 폭도들이 등장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벨파스트의 거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버디 집 앞의 골목은 영화의 주요한 공간이다. 이 골목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빈번하게 대적하는 교차로이면서도 버디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아버지와의 재회를 기다리는 추억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1969년의 벨파스트 거리를 재현하기 위해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나일 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함께한 프로덕션 디자이너 짐 클레이와 협업했다. 두 사람은 벨파스트의 공간감을 영화로 옮겨오기 위해 벨파스트의 거리를 탐색했고, 도시의 일부 공간을 로케이션으로 설정해 촬영을 이어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시에서 촬영을 지속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국 제작진은 영국 햄프셔의 판버러 국제공항 활주로 끝에 새로 세트장을 제작했다.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벨파스트>는 케네스 브래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 그의 이야기를 가장 내밀하게 담은 작품이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불안감을 안고 영화의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는 <벨파스트>가 “1969년 벨파스트를 메운 폭도들이 떠난 후 사람들을 가둔 바리케이드와, 한 가족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날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봉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전하며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가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팬데믹 상황과의 접점을 짚어냈다.
9살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자신의 유년기를 작품에 녹여내되 새롭게 창조한 9살 소년 버디를 <벨파스트>의 화자로 내세웠다. <벨파스트>가 버디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인 만큼 캐스팅이 중요했을 터. 배우 주드 힐은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버디로 낙점된 신인이다. 주드 힐은 밝은 금발에 주근깨가 수놓인 코, 살짝 벌어진 앞니가 보이는 웃음 덕에 개구진 인상을 지녔으면서도, 1960~80년대 영화에 나왔을 법한 고전미를 지닌 독특한 마스크의 소유자다. 카메라는 버디로 분한 주드 힐을 쫓으며 시점숏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한 인터뷰에서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당시 벨파스트에 폭도들이 들이닥친 상황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보였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영화는 극중 버디가 폭도들을 마주한 신을 슬로모션으로 처리하고 사운드를 페이드아웃해 버디가 공포감에 잠식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을 공감각적으로 묘사한다. 그 밖에 폭도에 맞서는 아버지의 너른 등판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교실 안 풍광, 창문을 통해 바라본 첫사랑 캐서린의 옆모습 또한 오로지 버디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가능한 신들이다.
고향에 남은 이들과 떠난 이들에 관하여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북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버디의 할머니를 연기한 주디 덴치를 제외하고 버디의 아빠와 엄마, 할아버지를 연기한 제이미 도넌, 커트리나 밸프, 키어런 하인즈 모두 북아일랜드 출신 배우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 혹은 부모에 대한 기억을 재료 삼아 버디의 가족을 구축해나갔다. 제이미 도넌이 연기한 버디의 아빠는 영국에서 목수 일을 하며 주말에 가족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위안인 인물이다. 그러나 폭동으로 인해 경비가 삼엄해지면서 영국과 벨파스트를 오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영국으로의 이주를 고민한다. 한편, 커트리나 밸프는 홀로 두 아이를 양육하는 버디의 엄마를 연기하며 실제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버디의 엄마는 벨파스트를 떠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지만 폭동으로 인해 남편의 부재를 더욱 크게 느끼면서 결국 벨파스트를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된다. 버디의 부모 반대편엔 버디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이주를 결심한 버디의 가족을 묵묵히 응원한다. 든든한 조언자인 할아버지는 버디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네가 누군지 너만 알면 돼. 여기선 모두가 널 알지. 네가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변함없는 사실이야.” 담담히 전한 할아버지의 말은 “아무리 멀리 간다 해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벨파스트>의 메시지와 맥을 같이한다. 대화로, 때로 눈빛으로 버디의 등을 다독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주디 덴치와 키어런 하인즈의 연기는 이들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유를 납득하게 만든다.
북아일랜드의 전설, 뮤지션 밴 모리슨의 음악
<벨파스트>의 음악은 1960년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이어지는 갈등의 긴장감을 세밀하게 조성한다. 이는 1967년에 데뷔한 뮤지션 밴 모리슨의 참여로 이루어진 결과다.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밴 모리슨 또한 벨파스트 출신이며, 아일랜드 포크와 록이 결합된 독특한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션이다. 실제로 벨파스트 거리에서 밴 모리슨의 음악을 듣고 자란 케네스 브래나 감독은 “어린 시절의 영웅과 함께 일한 기분”이었으며 “밴 모리슨의 음악은 영화 속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캐릭터를 형성하는 마법의 동맹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밴 모리슨도 마찬가지로 영화 대본을 읽고 엄청난 유대감을 느꼈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전했고, 이번 작업에서도 여러 장르를 혼합한 자신의 음악적 특기를 여실히 발휘했다. 밴 모리슨은 자신이 아카이빙해뒀던 8곡에 새로 작곡한 곡, 그리고 연주곡들을 더해 <벨파스트>의 음악을 꾸렸고 그의 손길이 닿은 곡들은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