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벨파스트' 케네스 브래나 감독 인터뷰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집' 으로 돌아갔다"
2022-03-26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케네스 브래나 감독이 9살 때 떠난 벨파스트를 다시 찾은 건 2011년이었다. 성공한 배우가 되어 찾은 고향은 어릴 적 기억과 다른 모습으로 온기를 잃은 채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2020년, 우리 모두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팬데믹을 겪으며 감독은 어린 날 벨파스트에 찾아들었던 불확실성과 불안을 떠올렸다. 그리고 고향을 떠날 때 깊숙이 넣어두었던, 이해하지 못한 감정을 돌아봐야겠다는 감독의 결심은 영화 <벨파스트>로 완성됐다. 케네스 브래나 감독과 <벨파스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 <벨파스트>는 자전적인 경험이 바탕이 된 이야기다. 50대가 된 지금에 와서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가 있을까? 언제 이 영화를 흑백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나.

= 내 기억 속의 벨파스트는 언제나 무채색의 도시였다. 살던 곳은 볕이 잘 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도시를 좋아했다. 그때 내 인생에서 색깔로 기억되는 건 영화였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거대함과 영화를 통해 열리는 다른 세상들, 그리고 색상에 압도되었다. 그래서 <벨파스트>는 흑백영화지만 컬러로 표현되는 순간들이 있다. 왜 지금 이 영화를 만들었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팬데믹 초기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처럼 강렬한 불확실성을 느꼈다. 인생은 예측 불가였고, 불안은 크게 다가왔다. 나약한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그리웠다. 이런 기분은 내가 9살이었을 때의 기억과 감정을 들춰냈다. 내가 살던 거리와 이웃과 가족에게 예상치 못한 폭력이 닥쳤던 여름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의 수문이 열리면서 오래전 정리하지 못한 감정들이 밀려나왔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모멘텀이었다.

- 버디와 버디의 가족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각본을 쓸 때 따라야겠다고 정해둔 제1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제1원칙은 “9살의 눈으로 보자”였다. 그래서 서사의 순서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에는 일종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당시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고, 이 영화가 내 가족의 삶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돼서도 안되기 때문이었다. 대신 1969년 8월15일 폭동이 일어난 사회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뉴스 영상과 영화, 당시 라디오방송을 참고했다. 하지만 나의 가족사와는 연결 짓고 싶지 않았다. 보편성을 언급해준 것은 상당히 고맙다. 관객 중에 영화를 본 뒤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도 영화의 길잡이인 아이의 상상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내면의 아이를 깨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시점숏이 많다. 특히 버디의 시점에서 올려다보는 숏들이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버디의 시선을 넣으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 영화에서 버디는 세상을 보는 방법을 찾으려 계속해서 노력한다. 어떤 순간에는 그가 보는 세상이 TV에서 본 장면 같을 때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뒤뜰에서 아버지와 폭도가 마주하는 장면은 서부영화 속 목장주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그때 내가 떠올린 이미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영화 포스터의 뒷모습이었다. 9살 아이의 눈에 비친 아버지라는 존재가 얼마나 거대하고 강한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디는 그 순간 영화에서 본 장면과 아버지의 거대함을 동시에 본 거다. 착한 사람이 악당과 싸워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엄마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소망도 담겨 있다.

- 주드 힐은 요즘 아이 같지 않은 고전적인 분위기를 지녔다. 어떤 자질이 마음에 들어 버디 역에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 주드는 잘 들을 줄 아는 배우였다. 말하기 위한 준비로 연기하는 조심성 많은 어린 배우가 아니었다. 촬영과 촬영 사이에도 주드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잘 들어주었고, 유머 감각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렇듯 주드는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역시 여러 배우들의 연기를 흡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주드는 영화를 위해 연기하기보다 영화를 위해 존재했다. 진짜 버디 그 자체였다. 그건 학습되기보다 타고나는 자질이기 때문에 캐스팅 때 한대 맞은 것처럼 놀랐던 기억이 있다.

- 사실 눈길이 가는 배우는 제이미 도넌이었다. 도넌이 연기한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도 세월에 따라 바뀌었을 거라고 짐작해보았다.

= 이 영화는 내 부모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 삶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가졌을 테고, 잉글랜드와 벨파스트를 오가는 피곤한 여정을 감내해야 했다. 아버지의 삶은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생각하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제이미 도넌은 겉모습은 강해 보이고 감정적으로 공허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심하고 예민한 북아일랜드 성인 남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심하지만 강해져야 하는 남자, 평범한 결함이 있는 남자를 세련되게 표현했다. 제이미와 커트리나 밸프를 보며 부모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 흑백영화 촬영은 컬러영화 촬영과 얼마나 다른가.

= 중요한 것은 텍스처다. 사람들이 입은 옷의 질감이 살아 있는지, 외벽의 벗겨진 페인트가 도드라지는지,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에 드리워진 톤 차이가 얼마나 뚜렷한지가 중요하다. 해리스 잼바로코스 촬영감독은 컬러가 사라지고 남은 흑백이 관객에게 좀더 시적인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가 흑백이기 때문에 프레이밍 또한 중요했다. 언제 클로즈업을 사용할 건지, 어떤 시점숏을 쓸 건지, 언제 롱테이크로 촬영할 건지 등을 고민했다.

- 직접 쓴 이야기의 연출은 상당히 오랜만이다. 유명한 이야기, 알려진 캐릭터의 영화화에서 연출을 하다가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경험은 어떤지 궁금하다.

= 나에게는 ‘회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만들기를 시작한 때부터 나는 사람들 사이의 역동성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고 그걸 이야기로 풀어왔다. 서사극도 하고 블록버스터도 연출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그려내는 풍경을 영화로 보여주는 일을 가장 즐겁게 해왔다. <벨파스트>는 나의 마음이 그려내는 풍경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작업이었고,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그래서 꼭 필요했던 영화라고 생각한다. 회복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내준 것보다 이 영화가 나에게 돌려준 것이 더 많다. 이 영화는 나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처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