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외가 거의 모든 것을 완성하는 순간이 있다. 무대에 선 배우 나문희 위로 핀 조명이 떨어지고 <나의 옛날이야기> 전주가 흘러나올 때, 이 노래를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걸 직감했다. 늘어뜨린 손끝으로 가만가만 박자를 맞추던 그가 경건한 얼굴로 첫 소절 “쓸쓰을~하던 그 골~목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라고 노래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나문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때때로 목소리가 살짝 잠기고 박자가 조금 밀리거나 당겨져도 상관없었다. 60년 넘게 연기자로 활동해온 그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듯, 하지만 한 음정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곡진하게 들려준 노래는 JTBC <뜨거운 씽어즈>에 잊을 수 없는 오프닝을 선사했다.
마흔셋 최대철부터 여든넷 김영옥까지, 합창단을 만들기 위해 모인 이들의 ‘노래로 자기소개하기’ 무대에는 15명 각자의 이야기가 담겼다. 연극을 시작한 뒤 18년이 지나서야 처음 주역을 맡고 차차 대중에게 알려졌던 서이숙은 노래를 통해 선언한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마야, <나를 외치다>) 역시 오랫동안 연기하며 생활고로 힘든 시간을 겪었던 이서환은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윤종신·정인, <오르막길>)이라는 가사 덕분에 잊고 싶었던 지난 시절에도 좋은 기억이 있었음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코믹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연기자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진지하게 열창할 때, 수많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무리 긴박한 순간에도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떨던 전현무가 정작 자신의 무대에서는 수줍어하며 땀을 뻘뻘 흘릴 때, 우리는 그들의 숨어 있던 얼굴과 만날 수 있다. “노래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노래에 대한 감상평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는 김문정 음악감독의 말이 <뜨거운 씽어즈>가 갈 길을 보여준다. 함께 노래하기,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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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민족> / 시즌
“64년째 연기만 해온 배우 김영옥입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르기 전 김영옥은 말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가 ‘연기만’ 해온 것은 아니다. <뜨거운 씽어즈>의 신영광 PD가 2016년 연출한 JTBC <힙합의 민족>에서 그는 이미 래퍼에 도전한 바 있다. 낯선 무대에서도 마음껏 흥을 발산하며 “이런 거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면 어때?”라고 말했던 김영옥에게 마지막이란 없어 보인다.
<진격의 할매> / 채널S
<뜨거운 씽어즈>에서 김영옥과 나문희는 60년 넘게 같은 길을 걸어온 친구이자 동료로서의 우정과 존중을 보여준다. <진격의 할매>는 김영옥의 시니컬한 농담과 나문희의 점잖은 일침, 박정수의 화통한 멘트가 어우러진 고민 상담 예능 프로그램이다. 온갖 희한한 사연을 들고나온 ‘요즘 애들’의 삶을 이해하려 애쓰며 격려와 덕담을 던지는 할머니들의 두런두런 대화를 듣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