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에서 모니카가 이끄는 프라우드먼은 획일화된 계급사회에서 소멸되는 인간성을, 고깃덩어리로 취급받아서는 안되는 여성의 주체성을 움직임으로 보여줬다. 제시의 신곡 안무를 짜는 미션에서는 가수가 아닌 댄서들의 안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의상과 컨셉을 고안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할 말이 많아서 댄서가 되었다”는 모니카에게 춤은 그가 사회에서 느끼는 문제와 그에 대해 자신이 내고자 하는 목소리를 전하는 예술이자 매체이자 도구다. 때문에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합당하며 대중의 사랑까지 받게 된 모니카는 <스우파>이후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셀러브리티가 됐다. 새로운 유형의 연예인이 탄생하리라는 세간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다양한 브랜드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모니카는 최근의 행보를 아티스트로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토대로 삼고 있다. 4년 만에 가수로 컴백한 수지는 “모니카의 춤을 보고 나의 뮤즈라고 생각”하며 신곡 <Satellite> 뮤직비디오에서 모니카와 컬래버레이션을 했고, “나는 모니카 선생님의 팬”이라고 고백한 박찬욱 감독은 그에게단편영화 <일장춘몽>의 안무감독을 제안했다. 그리고 모니카는 타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을 새로운 예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인다. 연쇄적으로 확산되는 분자의 화학 결합처럼 모니카의 춤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단편영화 <일장춘몽> 이야기부터 해보자. 안무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내가 아는 박찬욱 감독님이 맞나?’ 하며 재차 확인했다고.
=믿기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님이 왜 모니카를 부르지? 영화쪽에는 경력 있는 다른 안무가들도 많고 내가 영화에 필요한 작품을 TV에서 보여준 적도 없는데. 박찬욱 감독님이 프라우드먼의 메가 크루 미션을 인상적으로 봤다고 하시더라.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소스들이 많이 들어간 안무라서 그게 통한 건가?’ 추리를 하며 혼자 소설을 썼다. (웃음)
-온갖 시대가 뒤섞인 저승에서 영혼결혼식을 치른다는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퍼포먼스 역시 다양한 요소가 혼합돼 있다. 장영규 음악감독의 O.S.T는 사이키델릭 음악에 국악기를 추가했다.
=박찬욱 감독님이 <일장춘몽>의 군무가 댄스 퍼포먼스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라셔서 댄서로서 자부심을 보여주는 동작을 넣진 않았다. 대신 놀이, 행복, 축제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단순한 동작을 넣어서 안무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을 했다. 시대부터 신분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라 나는 무희복을 입었고 스님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저승에서 경계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서양에서 온 듯한 춤, 가령 로킹도 넣었다. 사실 국악은 좀 어려워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본적인 마디 구성은 현대음악과 유사해서 댄서들이 혼란스러워하진 않았다.
-박찬욱 감독은 물론 류성희 미술감독, 이진희 의상감독 등 각 분야 최고 영화 스탭과의 협업이었는데.
=진짜 최고인 게 느껴졌다. 회의 때 이진희 의상감독님이 의상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오히려 난 그 말을 들으며 그 장면을 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저승이라는 초월적인 시공간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한데 모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까지 생각하시더라. 그래서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춤에 대해 말씀드렸다. 의상감독님이 박물관에 있는 한복으로부터 고증한 의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치밀함을 배웠다. 최고의 스탭들이 모여 박찬욱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부분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쓰며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영화 작업에 대해 생각했다. 무용 공연에서는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불가능한 부분을 관객의 상상에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는 이를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작업까지 한다.
-안무감독으로서 시나리오가 있는 영화 속 춤을 짜는 것과 기존에 했던 무용은 많이 다르지 않나.
=사실 그런 제한이 있는 작업을 좋아한다. 캔버스 하나 주고 마음대로 채워보라는 식의 작업은 너무 많이 해봤다. 종종 자유로운 캔버스 자체가 더 핸디캡이 되기도 한다. 댄서는 무대를 벗어날 수 없고 판타지를 더 끌어오기 위해서는 영상이나 특수장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현장에서 보면 이게 판타지라는 것을 들키게 된다. 마법 같은 공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현실적인 부분을 좀더 고려해 안무를 짜게 된다. 영화는 현실 이상의 것을 실현 가능하게끔 만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훨씬 상상이 자유로워진다. 주제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더 넓다.
-앞으로 영화 안무감독 모니카의 활약을 더 기대해볼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안무감독 제안을 몇번 받았는데 스케줄 때문에 함께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라라랜드>처럼 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영화가 아니라도 연기의 동선이나 리듬을 만드는 작업을 너무 하고 싶다. 좀비의 긴장감을 만드는 움직임을 통해 좀비 시그니처를 만드는 작업도 하고 싶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K좀비가 핫하다 보니 모니카가 만드는 좀비 안무도 궁금해지는데. (웃음)
=최근 <SNL 코리아> 시즌2에 출연해 인턴 좀비를 연기했다. 마음은 <킹덤>인데 잘 안돼서 발연기를 했다. (웃음) 그때 좀비 안무를 한 분이 박재범씨 댄스팀에 있는 ‘국중이’라는 선배다.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 안무를 맡았고 얼마 전 독립영화도 연출했다. 최근에 영화 안무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눴다. 댄서들은 음악을 따라 리듬을 찾고 그 순간적인 효과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한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파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영화 작업에서는 캐릭터를 연구하며 움직임 하나만을 관찰하는 일이 가능하다더라.
-그렇다면 안무감독이 아니더라도 영화의 다양한 파트에서 참여 가능하지 않을까.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악역 발렌타인(새뮤얼 L. 잭슨)이 힙합을 하지 않나. 힙합의 제스처가 악역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다. 댄서가 배우들의 캐릭터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다.
-과거 인터뷰에서 고전영화 시대에는 오히려 댄서와 배우, 배우와 가수, 가수와 감독의 경계 없이 모든 것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더라. 버스터 키턴, 진 켈리 같은 사람들이 그랬다. 최근 할리우드가 프레드 아스테어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등 역대 최고의 뮤지컬 스타들을 다시 스크린에 소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모니카가 영화쪽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나지 않을까.
=이미 댄서들은 분업이 잘되어 있다. 누군가는 발레를, 누군가는 힙합을 잘한다. 이런 상황에서 ‘춤을 제일 잘 춰야 하는 역할’을 맡아 전체적으로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댄서는 많지 않다. 그런데 옛날 댄서들은 다 잘했다. 영화쪽에서는 연기, 춤, 노래, 감독, 편집을 혼자 다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잘하는 게 목표였던 댄서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다. 만약 <42번가> 같은 영화가 나온다면 댄서들의 꿈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면 너무 영광일 것이다. 물론 매우 힘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