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트릿 우먼 파이터' '일장춘몽'의 모니카를 만나다 - 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춤을 춘다
2022-03-30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모니카에겐 늘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함께 따라다닌다. 심지어 박찬욱 감독도 “모니카 선생님의 팬”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20대 초반에도 ‘선생님’ 같은 포스가 있었다고 들었다.

=당시엔 지금보다 더 열정적이고 불같았다. 말도 훨씬 직구로 던졌고, 책임감이 너무 세서 항상 불안감을 느꼈다. 20대 때의 (신)정우(모니카의 본명)는 정우를 위해 살진 않았다.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할까봐 압박을 느끼며 산 게 더 크다.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되게 열심히 살았다. (웃음) 내 신념을 증명해 보이기까지 4~5년이 걸렸다.

-그때 자신을 증명해 보였던 경험에 대해 들려줄 수 있나.

=“인성이 첫 번째, 실력이 두 번째”라고 한 말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인성이 좋다는 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그런 의문을 매일매일 안고 살았다. 그래서 고지식하다거나 정의감이 넘친다는 이미지가 생겼다. 언젠가 동료 댄서가 그런 얘기를 했다. “누나는 진짜 말도 안되는 얘기를 꺼내서 사람을 코웃음 치게 만드는데 결국 그것을 해내는 게 진짜 ‘킹받아’, 어렸을 땐 누나의 말을 무시했는데 지금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해”라고. (웃음)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뿌듯했다. 선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댄서 동생들이 아예 팀을 떠나 춤을 못 추게 됐던 때가 있었다. 그때 “딱 3년만 기다려. 저 선배 망할 거야. 안 망하면? 그럼 내가 망하게 할 거야” 라고 했다. 못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댄스 신이라면 나는 댄서를 하지 않았을 거라고, 남들을 밟고 올라가 성공한 사람들은 내가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투지를 다졌다. 댄서라는 직업은 항상 솔직하고 정의로웠고, 여기에선 사기를 치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언젠가 들통나고 벌을 받았기 때문에 좋았다. 지금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난 후배들이 불의를 참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도 내가 했던 생각이 맞다고 증명하기 위해 계속 춤을 추고 있다.

-댄스계는 반짝 스타로 톱을 찍는 것보다 장수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곳이라고 알고 있다. 지금까지 댄서로 일하면서 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항상 최고일 수 없고 트렌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자아실현에 좀더 집중하는 것, 100명 중 10명이 알아보던 나를 1명만 지켜본다고 해도 그에 감사함을 느끼며 계속 춤추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와~ 저 선배 예전엔 진짜 날렸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지 않네.” 연예인의 인기와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던 연기를 하고 원래 하던 노래를 부르는 분들이 있지 않나. 댄서도 똑같다. 온전히 본인에게 집중하면 외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요즘엔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인기가 수치상으로 표현되다 보니 댄서의 자존감이 하락하는 일도 자주 생기는데, 그런 부분에 흔들리지 말라고 많이 얘기한다.

-모니카야말로 자신의 것을 꾸준히 해나가면 오랫동안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산증인 아닌가.

=나도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SNS 세대에 끼어 있어서 어렸을 땐 수치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요즘 유행하는 춤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남들이 하는 것을 했을 땐 동기 부여가 되지 않더라. 금방 흥미가 떨어졌다. 이게 인생에 있어 중요한가 자문해보니 아니었다. 그래서 좀더 내게 의미 있는 일을 선택했다.

-댄서는 몸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직업이다. 십수년 동안 춤을 추면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도 필연적으로 안고 있었을 텐데.

=무대 위에서는 이렇게 춤추다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습할 땐 몸이 아픈데 무대에 오르면 아프지 않다. (웃음) 어쩌면 아픈 걸 알면서도 추는 게 춤이고, 건강하게 춤을 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직업병이 있는 것처럼 춤 역시 어떤 병을 앓아야 더 잘 출 수 있기도 하다. 몸을 다치지 않고서는 춤이 늘 수 없다. 다만 최대한 적게 다치고 재활을 하는 관리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스우파>에서 보여줬던 리더십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닐 테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모니카가 탄생했을 텐데.

=좋은 사람들을 운 좋게 많이 만났기 때문에 올바르게 컸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불량 청소년이 될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바른길을 걸을 수 있었다. 대학에서도 안 좋은 선택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운 좋게 훌륭한 선배와 교수님을 만나 좋은 것만 배웠다. 좋은 분들을 선택하는 것 또한 능력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운이 따랐다고 본다. 만약 내가 선배나 선생님이 된다면 그분들처럼 되고 싶었다. 당시 들었던 말이 아직도 내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서,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후배들은 또 내게 배운 것을 그들의 후배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짓궂은 질문을 하나 던져보겠다. 어릴 때 선배에게 들었던 부정적인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웃음)

=이건 내가 예쁘다는 편견이 있어야 가능한 말이지만, 당시 회사를 다니다보니 다른 댄서들에 비해 차분하게 꾸미고 다녀서 나온 소리 같다. “정우 정도 비주얼이면 춤을 못 춰도 방송 가면 먹히잖아. 스트리트 댄스로는 성공 못하니까 방송쪽으로 가봐!” 그 말을 듣고 “아하~ 남들보다 두배로 하면 되겠네!” 하고 방송도 스트리트 댄스도 했다. (웃음) 내가 인정받고 싶은 부분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기분이 나쁘고 오기가 생겼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방송 댄서는 실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스우파> 이후 댄서들의 입지가 많이 달라졌다. 동료들의 직업 여건이 전반적으로 좋아졌겠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걸림돌이 있을 텐데.

=무언가가 커질수록 그만큼 그늘도 더 크게 생긴다. 그늘에 있는 댄서들이 어떻게 하면 좀더 좋은 대우나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댄서에게 해결책은 <스우파>였다면서 자신이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댄서들은 스타가 되기 위해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에 스타 시스템에 대한 교육도 받지 못했다. 어떤 타이틀을 얻는 것을 투자라고 생각하는 댄서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땐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있다. TV 프로그램에 안 나와도 댄서로서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 없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요즘은 댄서들을 위한 어떤 풍토를 만들 수 있도록 플랫폼을 통해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스우파> 멤버들의 방송 출연을 보면 ‘댄서’라는 새로운 부류의 방송인이 탄생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다른 직군과 가장 다른 차이점은 어쨌든 이들은 몸으로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댄서 모니카로서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면서 겪는 고민은 없나.

=댄서로 활동할 때는 댄서만 만났다. 혼자 잘 추거나 팀원들과 함께 잘 추는 것만 신경 써도 무대가 완성됐다. 그나마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면 연출 정도? 그렇다 해도 우리가 공연 기획에 손댈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지금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멤버들에게도 계속 알려줬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이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지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우리 모두가 스탭일 수도 있고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자고. 또한 댄서가 연예인화되어 기존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댄서들은 댄서들끼리 신을 따로 만들어서 다른 풍토를 일으키고 싶다.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하는 동생들이 있었다. “선생님, 댄서도 무대 위에 서서 주목받아야 하는 직업이라면 결국 우리도 연예인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연예인은 어떤 직업에서도 태어날 수 있다, 연예인은 직업의 영역이 아니라 그냥 연예인화되는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그외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들은 원하면 하는 것일 뿐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고 답해줬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연예인처럼 됐다는 말을 듣는 입장이지 않나. (웃음) 스스로에게도 되뇐다. 댄서의 본질은 결국 춤으로 일을 한다는 데 있고, 그외 부수적인 것은 두 번째, 세 번째여도 괜찮다고 말이다. 댄서는 전문직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춤이 연기가 되고 연기가 춤이 될 때

-퍼포먼스의 영감을 일상에서 얻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일상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선택하느냐가 모니카의 춤을 이루는 재료가 될 것이다.

=일단 감정에 굉장히 집중한다. 설렘, 그리움, 분노 등 다양한 표현이 있다. 가령 ‘환희’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 경험을 떠올려본다. 언제 환희를 느꼈지? 그 단어를 온전히 얼마나 이해했지? 그로부터 퍼포먼스의 목표가 생긴다. 가령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어떤 즐거움인지를 생각한다. 설렘, 풍요로움, 안정도 모두 즐거움이 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느껴지면 좋을까? 다양한 경험들이 떠오른다. 만약 술을 마시고 일했을 때 너무 즐거웠다면 무방비한 상태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해체하는 편이다. 그래야 구성이 나오고 바이브가 결정되고 댄서들이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분노’라고 얘기했는데 어떤 친구는 분노가 아닌 절규라고 볼 수 있다. 절규와 분노는 엄연히 다를 수 있기에 모호한 춤이 나올 수 있다. 감정을 구체적으로 해체해야 무용수의 퍼포먼스가 정확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춤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연기든 댄스든 결국 하나의 예술이라는 대분류하에 통합될 수 있을 것 같다.

=굉장히 공감하는 말이다. 춤과 연기는 아프리카 제사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그때 난 “제사가 왜 연기야? 춤이지!”라고 말했다.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연기를 했으니 연기가 맞다더라. 너무 충격적이었다. 제사에 들어간 동작은 춤일지언정 그 사람이 연출한 것은 연기가 될 수 있고, 춤과 연기가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기적인 표현을 퍼포먼스에 좀더 과감하게 넣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언니는 왜 공연할 때 춤을 적게 넣고 연기를 많이 해?”라며 춤과 연기를 분리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알겠지만 춤과 연기는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고 싶었다. 사실 춤의 동작을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는 연기에서 온 것이다. 어떠한 행위를 반복해서 리듬을 만들어낸 동작들이 흔히 생각하는 춤이라면, 나는 리듬을 만들지 않고 행위만 보여주는 움직임을 넣었다. 이 역시 춤일 수 있다고 누군가가 자신감을 줘서 연기 같은 무빙을 많이 넣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스우파> 이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댄서 모니카의 시야도 많이 확장됐겠다.

=그렇지만 욕심을 부리진 않는다. 내가 가진 시간은 유효하고 세상에는 한 분야를 깊게 판 전문가들이 많다. <사랑은 비를 타고> 당시에는 진 켈리가 연기와 노래, 춤, 연출을 모두 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만든다면 CG부터 시작해서 잘해내야 하는 요소가 너무 많을 거다. 그래서 온전히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의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댄서라는 직업만큼 그들의 분야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요즘 어떤 걸 공부하고 있나.

=<스우파>를 하기 전에 편입해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 4학년 수업을 못 듣고 있긴 하지만. (웃음) 수업을 들으면서 진짜 많이 배웠다. 조직적인 분업이나 사업도 예술적일 수 있고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거다. 과학자도 예술가 같다. 상상력이 들어가고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다면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을 나누는 건 연기, 연출, 경영, 과학과 같은 전공이 아니라 의도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분야를 불문하고 앞으로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

=이미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으니 더 욕심을 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하지만 내가 꼭 필요하다면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계속 협업하고 싶다. <SNL 코리아>가 수많은 회의를 통해 속도와 흐름을 만들고 타이밍을 연구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굉장한 전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 음악 등 무언가를 표현하고 관중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다양한 분들과 만나 작업하고 싶다. 사실 영화 작업이 내게 특히 뜻깊었다. <일장춘몽> 이전에도 이원석 감독님의 <킬링 로맨스>에 참여했다. 외부인으로서 정말 많은 스탭들이 한편의 영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완벽주의라서 모든 점에 치밀하더라. 그래서 함께하면서 너무 신났다. 예전에는 소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스템이었다면 지금은 시대가 점점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작품에 임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스우파> 이후 K팝 아티스트들의 무대 영상에서 댄서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이 공연은 가수와 댄서가 함께한 퍼포먼스였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처럼, 영화도 많은 이들이 협업한 집단 창작 예술이다. (웃음)

=나는 안무가니까 내 마음대로 안무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2시간짜리 영화에는 많은 스탭들이 참여하고 이들을 통솔하는 사람들도 수십명이다. 이런 조별 과제가 있을 수가 없다. (웃음) 그런데 나는 그 결과물을 단돈 1만4천원에 본다. 영화는 개인적인 이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염원으로 완성되는 것이구나, 말도 안되는 정성이 들어가니까 이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스우파>에서 프라우드먼이 보여줬던 메시지들이 있다. 지금은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스우파>에 나가기 전의 모니카는 더럽고 보기 힘든 일을 직시하자는 메시지를 많이 담았다. 메가 크루도 맨 오브 우먼도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프라우드먼 동생들과 콘서트를 하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공연을 하면서 멤버들이 너무 힘들어하더라. 배우도 어두운 역할만 계속하면 사람이 어두워질 수 있는 것처럼 경쟁 구도에서 날카로운 이야기를 계속 전하다 보니 애들이 굉장히 뾰족해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많은 대중을 만날 수 있게 됐으니 좀더 긍정적인 얘기를 하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 연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따뜻하게 표현하는 식으로 프라우드먼의 공연이 바뀌고 있다. 마음속의 슬픔을 다루더라도 무섭게 혼내기보다는 행복하게 건드리고 싶다.

프라우드먼의 퍼포먼스 BEST3

'Desperado' from <스우파> 메가 크루 미션

박찬욱 감독이 가장 인상적으로 봤다는 프라우드먼의 무대. 획일화된 조직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획일화된 걸스카우트 의상을 입고, 인간 지네의 형상을 통해 계급사회를 은유했다. 선을 대변하는 립제이와 악을 대변하는 모니카가 싸운 후 악이 이기고 혼자 남은 엔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관중의 해석에 맡긴다고.

'윈윈' from 스트릿 우먼 파이터[ON THE STAGE]

<스우파> 콘서트에서 선보였던 프라우드먼의 단독 무대. 수렴과 발산, 가감속의 리듬과 수반되는 다양한 감정을 프라우드먼 멤버들의 움직임과 구도의 변주로 시각화한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질주하는 퍼포먼스가 압도적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콘서트 외에 정식으로 퍼포먼스 영상이 올라온 점이 없다는 것. 프라우드먼 유튜브 채널이 개설되는 그날 제일 먼저 게재하는 영상이 되길 기대해본다.

'몸마음' from <집사부일체>

모니카가 아껴왔던 곡이라 고백한 오혁, CIFIKA의 <몸마음>에 맞춰 배우 유수빈과 꾸민 무대. <스우파>에서 이미 선보인 퍼포먼스가 아닌 새로운 노래를 선곡했다. 공허함, 두려움, 슬픔 등 가사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감정을 보다 다각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모니카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연기가 춤이 되고 춤이 연기가 되는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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