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힙합, 뮤지컬, 팝페라 등 어떤 분야를 대중적으로 풀어내고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했지만, 해당 분야에 관한 어떤 오해를 만들 수 있다는 논란이 있었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여자들의 캣파이트를 조장하는 연출로 비판받았다. 앞선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스우파>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이게 필요한 시기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나는 괜찮으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효원이(립제이)하고만 하려고 했는데 동생들도 오케이해서 함께 나가게 됐다. 내가 가르친 애들과 언제 이렇게까지 활동할 수 있을까, 이게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같이해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인간적인 부분과 댄서로서 현실적인 고민이 섞인 상태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창구였다.
-경연 후반부로 갈수록 크루마다 춤에 대해 다른 철학을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가령 YGX는 “동작에 대한 의미 부여보다는 그저 댄싱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증명하고 싶다”, “목적 없이 추는 춤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드리겠다”고 하지 않았나. 반면 프라우드먼은 “할 말이 많아서 댄서가 되었다”, “댄스는 즐거움 그 이상의 것을 담을 수 있는 예술”이라며 퍼포먼스를 소개했다.
=내 말이 맞다는 생각은 없었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중요했다. 나는 (YGX의 리더) 리정의 의견도 존중한다. 내 생각, 정이의 생각을 다 들어본 후 보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해보라는 의미였다. 다양한 관점이 있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정이가 겪은 인생과 내가 겪은 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점이 너무 재미있다. 세상엔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춤은 무엇이지? 사람들이 각자 고민에 빠졌으면 좋겠다.
-“난 단순히 도톰한 엉덩이만은 아니야.” 여성선언문(Womanifesto)을 보여준 맨 오브 우먼 미션 당시 “대중성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차근차근 풀어가겠다”고 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춤을 통해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프라우드먼의 색을 계속 보여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고 여러 번 반복되면 너무 당연해지는데 그 순간이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용기가 생긴다. 지금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세번만 하면 손가락질이 박수가 될 수 있으니 그냥 하자, 우리의 퍼포먼스가 계속 욕을 먹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겠지만 보통 문제 있는 예술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 열심히 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떨어지면 집에 일찍 가야 한다는 핸디캡이 있어서 아쉽겠지만,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던지라 두려움이나 고민은 없었다. 오히려 <스우파> PD님이 “파이널 미션 가야 하지 않겠냐”며 적당히 하라고 할 정도였다. (웃음) 대중성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그것을 만들려고 하면 더 안된다.
-프라우드먼이 대중성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하지 않았나.
=대중성을 포기한 건 아니다. 이미 사랑받은 대중적인 것은 남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것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생각 없이 춤을 추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겐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프라우드먼 동생들이 내가 추구하는 무대들을 워낙 좋아해줘서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관심을 덜 받을지 몰라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대중성이 생길 수 있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진짜 모니카 거’를 하고 싶지 않니?” 내 생각에 다들 함께해줬다.
-프라우드먼의 무대는 이른바 여성성을 과시하지 않는다. 섹시함으로 대상화된 춤을 추지 않는다는 점이 늘 눈에 들어왔다.
=나도 섹시 댄스를 할 수 있지만 <스우파>는 10대들이 주로 본다는 생각이 있었다. 초등학생도 나를 알고 있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섹시한 의상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내가 댄스 학원을 운영하는 만큼 교육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섹시한 코드로 공연을 많이 하게 되면 ‘적당히’가 안된다. 아이들이 훨씬 더 앞서가버리면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또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동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춤을 추는 게 아니더라. 원치 않게 따라오는 문제들이 생긴다면 그냥 내가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댄서마다 입장은 다를 수 있고 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애들이 보는데 꼭 그런 춤을 춰야 해?”라고 다른 댄서들에게 얘기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섹시 댄스나 댄서의 섹시함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가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섹시가 위험한 코드가 됐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무드가 다르고 누군가는 섹시한 의상이나 춤을 좋아할 수 있는데 이상한 취급을 받을까봐 고민하는 친구도 있다. 그래서 섹시한 코드로 춤을 추는 댄서들에게 말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춤의 주체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살피게 되는 것 같다. 섹시한 코드로 춤을 추더라도 그 주체성이 댄서에게 있도록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당당함.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입맛에 맞춘 춤을 추고 제대로 공감받지 못하면 서로가 민망해진다. 자신의 춤에 대해 당당한 태도와 감각을 갖는다면 큰 문제는 없다.
-<스우파> 이후의 다양한 활동 중 K팝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눈에 띄더라. 최근 수지, 백예린과 컬래버레이션을 했다. 예전 K팝 아티스트들과의 작업과는 표현의 자유도나 결과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커졌을 것 같은데.
=사실 나는 기존에 해왔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한 거다.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호칭의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백업이라는 단어를 썼고, 지금은 내 존재감이 생기니까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표현한다.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하니 아티스트쪽에서 음악에 아예 변화를 주지 않겠냐며 배려해주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댄서의 역할이 아니다. 제대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내가 손을 댔다가 자칫 노래가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댄서는 기존에 만들어진 음악을 듣고 받은 감동을 몸으로 표현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요즘 K팝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는 거의 블록버스터영화 같은 스케일을 보여주지 않나. 수지의 <Satellite>는 오로지 춤에 집중해서 오히려 신선한 면이 있더라.
=이도 냉정하게 얘기하면 편집으로 누구에게 비중을 더 실어주는가의 차이일 뿐 작업 방식은 똑같았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에 수지님이 아예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배우로서 참여한 느낌을 받긴 했다. 수지님은 클라이언트가 아니었고 음악을 잘 표현해달라고 내게 부탁을 했다. 보통은 클라이언트가 내게 맞춰달라고 하는데, 이번 작업에선 수지님에게 내가 맞출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작업 범위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더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었다. 노래를 순간순간 재해석하며 도전하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촬영 중간에 테이크를 끊은 적이 없었다. 곡을 틀어주면 한곡 내내 춤을 추는 일을 수십번 반복했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이건 수지님이 춤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파트를 모두 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지님의 목소리, 나의 움직임이 만난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이 될 수 있었다. 모두 그럴 필요는 없지만, 가수와 댄서가 할 수 있는 일이 공평하게 들어가는 작업들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춤을 잘 추는 댄서와 정말 좋은 음악이 만나는 컬래버레이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