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모가디슈>(2021), <군함도>(2017), <베테랑>(2015), <타임리스>(2009), <짝패>(2006), <주먹이 운다>(2005)를 함께했다.
“<주먹이 운다> 때 처음 만나 함께 작업했는데, 나문희 선생님과 (류)승범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던 게 문득 기억난다. 그만큼 선한 사람이었고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단 하나도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6편의 작품을 함께하면서 어느 하나 전쟁처럼 치열하지 않았던 현장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든 순간에 그가 함께했기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던 기억만이 남는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주변과 함께 나누려 했다. 위대한 아티스트와 인생의 한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다.
한편으론 야속한 것도 있다. 최근까지 <베테랑2> 작업을 함께하자고 문자도 나누었는데 이렇게 황망하게 보내고 나니 빈자리가 너무 크다. 청룡영화상 음악상 때 얼굴을 보고 너무 놀라 찾아갔었는데, 병색이 완연한데도 계속 괜찮다고 했다. 아마도 주변에 걱정과 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끝까지 혼자 감내하려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식을 잃는 순간까지도 기타를 붙잡고 있었다고 하더라. 외롭고 무겁고 힘든 여정을 끝내고 부디 그곳에서는 덜 아프고, 덜 외롭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주먹이 운다> <짝패>, 단편 <타임리스>까지 연달아 하고, 한동안 못보다가 <베테랑> 때 다시 만났을 때도 병마와 싸우고 회복하던 시기였다. 영화음악감독으로서 그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스스로의 작업을 음악이 아니라 소리의 측면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베테랑>을 보면 음악이 나오지 않는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꽤 많다. 보통 완성된 음악을 준비해와 화면에 입힐 때 볼륨 조절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방준석 음악감독은 악기별로 트랙을 다 따로 가져와서 녹음실에서 사운드 디자이너와 함께 다시 믹싱을 했다. 사운드와 음악의 아름다운 디졸브, 대사와 효과음과 사운드 이펙트와 음악의 공존. 그야말로 한 덩어리가 되는 팀 작업이었다. 음악이 사운드의 영역까지 확장된 유의미한 변화이자 기억해야 할 성취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티스트로서 개성을 드러내는 걸 강조하기보다 관객에게 더 친절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했다. 예술가로서 자존감도 대단한 분이었지만 대중영화 작업을 할 땐 아티스트로서의 태도를 분리할 줄 알았다. <모가디슈> 작업 내내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 기술 말고 본질에 대한 대화가 오갔던 밤들이 잊히질 않는다. 이제는 별다른 대화 없이 눈빛만으로 손발을 맞출 수 있겠구나 싶은데 그는 가고 없다. 좋은 음악을 남겨주어 감사하다. 어제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그의 숨결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고마웠다’라는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겠다. 내 안의 그의 음악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어제도 고마웠고, 오늘도 고맙고, 앞으로도 늘 계속 고마울 거다.”
이준익 감독
<자산어보>(2019), <변산>(2017), <박열>(2017), <사도>(2014), <소원>(2013), <님은 먼 곳에>(2008), <즐거운 인생>(2007), <라디오 스타>(2006)를 함께했다.
“방준석. <비와 당신>의 가사처럼 비가 오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 음악감독으로서 그는 영화에 대한 깊숙한 이해를 가지고, 음악으로 영화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지녔던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는 대충 자리를 메우는 음표가 하나도 없다. 모든 음 하나하나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음악적 자기확신을 가지고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다. 영화가 제아무리 총체적으로 완결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필연적으로 모순과 결함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방준석의 음악은 그런 빈틈을 최대한 보완하고 음악적 양분으로 채우려 노력한다. 그 집요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동반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가 그런 괴로움을 토로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여덟 작품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산어보>는 결과적으로 나와 함께한 그의 유작이 되었지만 그렇게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내색 한번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명처럼 해나갔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정약전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수많은 대화를 통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고 수치화할 수 없는 감정들을 음악으로 풀어나갔다. 때로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나의 오류를 잡아주기도 하고 누구나 수긍할 만한 의견을 제시하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동시에 매 작업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고 배움에 게으른 적이 없었다. <사도>에서 국악과 정통악기에 대한 세련된 접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이토록 치열한 작업을 이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상대방에게 단 한번도 불편함을 안긴 적이 없다. 상대의 절실함에 절실함으로 답했던 아름다운 사람. 아픔 없는 세상에서 즐겁고 행복하기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거기서 만나서 또 즐겁게 영화하자고.”
이언희 감독
<…ing>(2003)를 함께했다.
“첫 영화 준비를 막 시작하던, 감독이라는 호칭이 아직 낯설었을 때 방준석 음악감독님을 처음 뵈었다. 내 영화의 음악을 부탁하던 자리였지만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어 어찌나 떨었는지, 만남이 끝나고 감독 같지 않아 보였을까 너무나도 창피했던 기억이 있다. 첫 영화의 작업이 끝나던 날, 나에게 정성스럽게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서투름을 지적하는 내용일까봐 겁을 먹었다. 거기엔 수줍게 ‘감독님과 다시 한번 작업하고 싶다’고 써 있었다. 내가 먼저 드리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부끄러워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먼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되었다. 다음엔 더 나은 감독이 되어 함께하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 감독이라는 호칭이 더이상 낯설지만은 않은 시기에, 당연히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다시 함께할 기회가 있을 거라 여겼다. 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되어서야 그 기회를 미루었던 것이 너무 아쉽다. 더 나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미루면 안됐던 거였다. 방준석 음악감독님. 시간이 꽤 지났지만 감독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감독님과 음악에 대해, 영화에 대해, 창작에 대해 이야기했던 순간들이 저에게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의 그 시간을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듀오 프로젝트 ‘방백’의 백현진
“연주를 함께한 1997년 이후, 그와 참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와의 추억을 셀 수 없다. 모습이 많았던 사람. 그래서, 방준석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복잡한 마음이다. 그가 간 지금, 그는 나에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