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의 감흥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한지. 일본영화에서 수화와 외국어, 영화와 희곡 사이를 오가는 독특한 꿈의 실험을 마친 한국의 신인배우 3인에게 지난 2년간 들이닥친 새로운 경험을 전부 다 소화시키기도 전에, 폭풍 같은 기회가 또 밀려들었다.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고 결과적으로 수상까지 성공한 <드라이브 마이 카>로 할리우드 돌비극장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박유림은, 연극 연출가 가후쿠(나카지마 히데토시)가 다양한 언어를 뒤섞어 만드는 <바냐 아저씨>에서 수화를 쓰는 배우 이유나를 연기해 순수와 결의, 초연함을 오가는 얼굴로 영화 속에 자기만의 순간을 아로새겼다. 이유나의 남편이자 가후쿠를 안내하는 연극제 프로듀서 공윤수를 연기한 진대연은 말을 잃은 아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남자의 얼굴로 인상적인 존재감을 더했다. <바냐 아저씨>의 아스트로프 역을 따낸 후 반복적인 대사 읽기 훈련의 신비를 경험하는 한국인 배우 류종의를 연기한 안휘태 역시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이들이 “영화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박유림)으로 벅차게 보냈던 3일간의 할리우드 여행을 전한다.
* 출발, 도착 *
* 시상식 전날 *
* 오스카 당일 *
06 안휘태 “마치 내가 상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포즈를 취해봤다. 실제로 들어보니 상상 이상으로 무겁고 번쩍거린다. 시상식이 끝난 후 어떤 애프터파티들은 입장 조건이 무조건 ‘오스카상 보여주기’인 곳도 있었는데, 파티장 테이블 위에 무심하게 놓여 있는 오스카상을 볼 때마다 솔직히 엄청 멋있다고 생각했다.”
07 진대연 “모든 일정이 끝나고 파티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귀가하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발견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이 먼저 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국제장편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었을 때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모두가 다 같이 트로피를 안고 서서 한 프레임 안에 담기고 싶었다. 잊지 못할 인생 최고의 순간.”
안휘태 “어릴 적 할아버지와 <E.T>를 처음 본 이후로 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의 팬이었다. 가족들끼리 손가락 맞대는 제스처를 유행시켰고, <쥬라기 공원>은 10년 넘게 나를 공룡 덕후로 만들었으며, <백 투 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전편과 메이킹이 수록된 비디오 세트는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봤다. 그분이 내 눈앞에 나타나니, 그제야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실감이 났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 시상식 다음날 *
08 박유림 “아카데미 뮤지엄 구경, 의상 전시가 가장 재미있었다. <라라랜드>의 노란 원피스, <인터스텔라>의 우주복을 실제로 볼 수 있다. 아카데미 배지도 8개나 샀는데 아무래도 계산이 9개로 된 것 같다. 내일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될까? 아! 아까운 내 16달러!”
굿바이, <드라이브 마이 카>!
박유림 “이제 정말 떠나보낸다고 하면 너무 슬프니까 그냥 책장에 꽂아둔다고 생각해야겠다. 덕분에 행복하다는 단어가 모자랄 정도로 행복했다. 박유림의 인생에 와줘서 고마워.”
진대연 “요리만 하다가 29살에 처음 배우가 되었고 이후 연극만 하던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준 은인 같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덕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와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돌아간다.”
안휘태 “지난 2년간 내 내면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변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 것 같다. 그 영향은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 차마 정리해서 말할 수가 없다. 언젠가 이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