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오징어 게임'의 한미녀, 배우 김주령이 경험한 미국 배우조합(SAG)상
2022-04-05
글 : 김소미
영화와 웃고 울고 환호하며

2월27일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미국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SAG)상에서 <오징어 게임>이 3관왕(TV 드라마 스턴트 부문 앙상블상, TV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의 쾌거를 이룰 때 배우 이정재, 정호연만큼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으니 작품이 호명될 때마다 매번 무아지경의 환호를 보낸 배우 김주령이었다. 김주령은 <오징어 게임>으로 약 4주 만에 글로벌 스타가 됐다. 2021년 9월, 작품이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직전 400명 남짓하던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현재 223만명. 스트리밍 한달차에 전세계 1억명이 넘는 시청자를 확보하고 넷플릭스 TV시리즈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한 <오징어 게임>의 212번 한미녀는 성가신 만큼 강력하고 매력적인 적수였다. 2000년에 영화 <청춘>으로 데뷔한 김주령은 <도가니>의 기숙사 사감, 드라마 <SKY 캐슬>의 세리 이모 등으로 눈도장을 찍고 <오징어 게임>으로 퀀텀 점프해 최근 드라마 <공작도시>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도가니> 이후 임신, 육아를 경험하고 가족과 LA 근교에서 약 3년간 거주했던 김주령은 SAG 시상식 참석차 7년 만에 다시 LA에 발을 디딘 순간 “제2의 고향에 금의환향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짧지만 완벽했던 축제의 시간이 그렇게 시작됐다.

01 치열한 릴레이 인터뷰의 현장

국내 시상식은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고 식장에 입장하면 되지만, SAG의 첫인상은 치열하고 분주한 릴레이 인터뷰 현장이라는 점이었다. 한국 시상식 경험도 많지 않은 내게 해외 시상식 문화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인터뷰 시간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부스를 도느냐가 관건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우리를 잘 이끌어주었는데,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는 현장의 속도가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이정재, 정호연, 김주령, 아누팜 트리파티, 박해수(왼쪽부터)

02 “역사를 쓰긴 썼구나!”

시상식장에 들어가기 전 마치 박람회처럼 언론 매체들의 부스가 쫙 펼쳐진 풍경에 놀랐다. 그들이 인터뷰에서 <오징어 게임>을 향해 보여준 관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부스를 돌아다니며 인터뷰할 때 모두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손을 꼭 잡았다. <오징어 게임> 촬영장에서도 항상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울고 웃었었는데, 그 순간들이 막 스쳐 지나갔다. 외신들의 질문은 시즌2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많았다.

03 SAG에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시상식 참석 전에 SAG에서 누구를 가장 만나고 싶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샌드라 오 배우”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시상식장에서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는데 저쪽에서 샌드라 오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인간 김주령의 모습 그대로 달려가서 소리를 지르며 손을 잡았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계속 그렇게만 외쳤다. 이날 이후 샌드라 오와 같은 드라마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04 레이디 가가 & 그레타 리

시상식장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가까운 곳에 <하우스 오브 구찌>의 레이디 가가가 앉아 있었다. 관계자에게 레이디 가가와 꼭 인사하고 싶다고 부탁하고 다가갔다. 평소에 늘 조우를 꿈꿨던 배우와 실제로 만나고, 그 역시 나를 한눈에 반갑게 알아봐주는 경험은 감동적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제안하는 배우들의 적극적인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배우 그레타 리는 직접 와서 <오징어 게임>을 잘 봤고, 한미녀 역할이 강렬했다고 칭찬해주었는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너무 기뻤다.

사진제공 SHUTTERSTOCK

05 김주령의 ‘찐모습’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내 진짜 모습이 나온 것 같다. 이정재, 정호연이란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두 사람은 물론 우리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쾌거였다. 기쁨과 벅찬 감정으로 환호와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TV 드라마 부문 앙상블상을 놓친 것?

06 한미녀를 만든 감독

처음부터 끝까지 한미녀를 다이내믹하게 그려준 황동혁 감독님과. 촬영 현장에서 문득 미녀의 삶이 안쓰럽게 느껴져 혼자 많이 울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현장에서 부담감이 없진 않았지만 결국 스스로 잘 극복해낸 것 같다.

01 게임이 끝나면 절친이었던 우리

촬영장에서 매일 붙어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눈 나의 친구, 정호연. 그녀에게 많이 의지했다. 연기는 물론 삶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시간은 촬영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박해수, <오징어 게임> 제작사 사이런픽처스의 김지연 대표, 김주령(왼쪽부터).

02, 03 샴페인 향 가득한 축제

마음이 잘 맞았던 <오징어 게임> 동료들과. SAG는 샌타모니카 바커 행어의 공간과 그 속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에너지가 엄청났다. 식장 안에 앉아 있으면 중간중간 계속해서 잔에 샴페인을 채워주는데, 상기된 탓인지 술을 잘 못하는데도 계속 마셨다. 자유롭고 즐기는 분위기에서 시상식을 이어가는 문화를 한국 시상식에서도 볼 수 있으면 좋겠고, 배우가 주최해 서로에게 주는 상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더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우리도 배우조합상을 만들면 어떨까?

김주령의 22년

<오징어 게임>

“어느덧 연기한 지 22년차가 되었다. 그사이 배우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 직전에 남편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4~5년 정도 힘들게 보낸 시간이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배우로서도 한계를 느껴 많이 지친 시기였다. 남편이 미국 대학의 교수로 임용된 이후엔 배우 일을 접고 미국행을 택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너무나 기적같이 황동혁 감독님이 한미녀 역을 제안주셔서 지금 이 순간까지 왔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치 하늘이 ‘아니야, 너는 배우를 해야 해’ 하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종교는 없지만 꼭 누군가 이끌어준 것 같은 큰 행운을 감지하고 또 감사함을 느낀다. 연기하는 마음 자체는 늘 같다. 앞으로 배우로서 무엇을 지켜나갈지, 어떻게 더 잘할지 그것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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