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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봄밤의 모든 것>
한 눈에 보는 AI 요약
백수린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이 출간됐다. 이 책은 삶에서 마주하는 반짝이는 순간과 예상치 못한 만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첫 번째 단편 <아주 환한 날들>에서는 혼자 사는 70대 여성이 앵무새를 돌보며 느끼는 감정을 담았고, <봄밤의 우리>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주인공과 일본인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고독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과 감정을 발견하며, 독자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백수린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수린의 네 번째 소설집. <눈부신 안부> <여름의 빌라>를 즐겁게 읽은 독자에게 봄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봄밤의 모든 것>이라는 살가운 제목이다. 첫 번째 수록작 <아주 환한 날들>의 주인공은 일흔이 넘은 여성이다. 혼자 살고 있는 그녀는 평생교육원에서 이것저것을 배우며 소일한다. 혼자 사는 그녀의 처지를 다른 사람들은 동정하곤 하지만 사실 꽤나 홀가분하게 잘 지내는 중이다. 가정을 꾸린 딸에게 전화를 걸지만 딸은 대체로 냉담하게 응대하며, 딸의 짤막한 답을 듣고 섭섭함을 느끼며 “콱 죽고 싶어”지는 일도 있다. 어느 날 사위가 아이들을 위해 집에 들였던 앵무새를 데려와 맡기고 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앵무새 돌보기가 제법 까다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것에도 뛰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이, 말 한마디에도 콱 가라앉고 쓰러지는 마음이 다시 설렘에 눈을 뜬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프랑스어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백수린은 이전에 단편 <흑설탕 캔디>(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수록)에서 프랑스에 거주하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이번 책에도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실려 있다. <봄밤의 우리>는 프랑스로 유학 간 주인공과 그의 12살 연상인 일본인 친구 나루카와 유타를 주인공으로 한다. 몇년에 걸친 인연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서 끝을 맺지만 수년의 시간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SNS 덕분에 다시 연결된다. 유타는 할머니를, 그녀는 늙고 병든 개를 간호하며 살고 있는 처지가 되었고 그들의 프랑스어는 전보다 많이 헐거워진 상태였다.

살면서 누구나 반짝이는 무언가와 조우한다. 그 대상을 사람에 국한하고 사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온기를 맞댈 수 있는 동물이 그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만남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많은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으며, 수명이 다한 것만은 아닌 이유로 함께하던 시간이 끝나기도 한다. 백수린은 싫지만은 않은 고독을 발견하고, 그 위에 고독보다 독한 사랑을 발명해 겹쳐놓는다. 알겠다는 감정과 여전히 모르겠다는 마음이 번갈아서 신호등처럼 불을 밝힌다. “스무살 때 다혜는 자신이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못했다. 겨우 스물여덟살이었을 때는 이제 늙어버린 노인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노인의 마음을 안다고 믿었다니. 주제넘은 오만. 어리석은 소리. 다혜는 아무것도 몰랐다. 여전히, 지금도.”(<눈이 내리네> 중에서) 몰라도, 알아도 결국 기대치 못했던 온갖 감정이 흘러 고이고 넘친다. 단편이 끝날 때마다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하나하나의 단편에서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감상에 젖게 하는 책이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아주 환한 날들> 중에서,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