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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샤일록 작전>
한 눈에 보는 AI 요약
필립 로스의 소설 <샤일록 작전>은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메타픽션이다. 주인공 필립 로스는 자신을 사칭하는 인물이 이스라엘에서 정치 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그는 사칭범을 추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소설은 유대인 정체성과 분쟁, 정치 풍자를 다루며, 현실의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필립 로스의 명료한 문장 덕분에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비채 펴냄

필립 로스의 전작을 쉬이 읽은 독자가 아니라면 <샤일록 작전>을 펼치는 데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벽돌책으로 보이는 두께에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메타픽션적인 작품이라는 소개는 난해할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립 로스의 명료한 문장은 소설이 난해할 틈을 주지 않으며, 바로 이 거대한 이야기의 소용돌이를 향해 돌진하는 데 소설의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주인공 ‘필립 로스’씨가 직면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필립 로스이다. 물론 작가는 ‘이 소설은 허구’라고 하면서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이 변형되었다고 밝히기도 한다. 실제로 책에는 예루살렘 지방법원에서 열린 나치 강제수용소 교도관의 재판 내용을 그대로 적은 기록도 등장한다.

주인공 필립 로스는 어느 날 친척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이스라엘에서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인물이 강연을 하고 방송 인터뷰를 하는 등 정치 활동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이었다. 정작 자신은 불면증약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으며, 그로 인해 집에서 대피해 뉴욕 호텔에서 장기 체류 중이건만 ‘디아스포리즘’을 설파하는 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보다 못한 진짜 필립 로스는 사칭범에게 전화를 거는데 상대는 뻔뻔하게 “내가 필립 로스”라며 전화를 받는다. 사칭범은 유대인들을 분산해 유럽에 정착시키면 이스라엘 영토 내 분쟁은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대인 정체성과 시오니즘, 스릴러와 정치 풍자를 오가는 필립 로스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자 지구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 주인공이 정체성 분열을 겪고 있고, ‘가짜 나’를 잡으러 가지만 사칭범 앞에서 진짜 필립 로스는 가짜 이름을 밝혀야만 하는 것부터 현실의 투영이다. 갈등과 분쟁,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여기 둘러싸여 있다. 분열은 저기 먼 나라, 타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내 것이다. <샤일록 작전>은 끝난 것처럼 보이는 과거의 사건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남은 이들을 보여준다. 필립 로스의 소설 중 <휴먼 스테인> <에브리맨>보다 먼저 펜/포크너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는 미국인 작가 필립 로스와 확연히 닮은 외양을 하고 있어서, 자신의 이름 또한 필립 로스라고 주장하며, 전적으로 공상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어쨌든 설명할 수 없는 이 우연의 일치를 이용하여 자신이 바로 그 작가 행세를 하면서 디아스포리즘을 널리 알리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 3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