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뮤지컬 <달고나>로 데뷔, 그동안 출연한 연극과 뮤지컬, 드라마를 다 합하면 30편이 넘는 배우 곽선영의 스크린 데뷔작은 뜻밖에도 3월12일 개봉한 <침범>이다. “주변에서 하도 얘기해 이제는 모두가 <침범>이 내 첫 영화라는 걸 안다”라며 수줍게 웃다가 이내 영화 후기를 묻는 골똘한 표정에선 초심자의 긴장이 엇비쳤다. 곽선영은 쉽지 않은 첫길을 선택했다. <침범>에서 그가 분한 수영 강사 영은은 또래와 다른 행동을 일삼는 7살 딸 소현(기소유)의 엄마다. 아이가 사고를 쳤다는 전화를 언제 또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 지 오래된 듯 보이는 영은의 첫 얼굴에서부터 곽선영의 공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첫 영화 현장이 어떻게 남아 있나.
특유의 무드가 있는 것 같다. 드라마를 시작한 지 10년이 채 안됐으나 경험상 드라마 현장은 굉장히 바쁘고 빠르게 돌아간다면 영화 현장은 호흡이 길다고 느꼈다. 비교적 극에 대해서 오래 생각할 시간이 있고 전체 대본이 나와 있으니까 좀더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영화를 끝마친 뒤에 든 생각이고 하는 동안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어떤 매체든 배우로서 맡은 인물을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작업을 한다는 건 동일하니까.
- <구경이> 때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인물이 살아온 세월과 역사를 파악하는 걸 우선시한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업 방식을 <침범>에서는 어떻게 적용했나.
엄마가 된 영은에서부터 시작했다. 소현이가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육아가 처음인 영은이 ‘아이라면 저럴 수도 있는 건가?’ 하고 궁금해했던 순간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원래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절박하게 노력했던 시기, 그렇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어 체념한 현재까지. 그러니까 <침범>은 영은이 이 모든 시간을 거친 뒤 매우 지친 상태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 영은은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곽선영 배우의 곡진한 연기로 드러난 영은의 그 마음이 영화가 슬프도록 무섭게 느껴진 이유였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증오. 그 밖에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감정을 다 합친 말이 모성애일 테다. 그건 느껴본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영은은 자신도 모르게 이 아이를 놓아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분명 느끼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는 인물이라는 사전 합의가 있었다. 김여정, 이정찬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소현을 어떻게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엄마로 영은을 그리자는 데로 의견이 모였다.
-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수영장이 메인 장소라 영화가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배우에게도 수영장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렇네. 돌이켜보니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안전하게 촬영했지만 내겐 수영장이 깊은 편이었고 체온도 내려가니 현장에 있는 동안 평소보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가 지금의 영은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수영장은 물속에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도 살아야 하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엄마 영은의 책임감을 잘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 물과의 접촉이 전제된 수영 강사 역할이었다. 물에 대한 공포가 있지 않았나.
원래 물을 좀 무서워하는 편이라 <침범>은 내게 도전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물속이 편했다. 물과 친해지는 연습을 충분히 거친 뒤 촬영에 들어가긴 했으나 신기할 정도였다. 한번은 잠수한 뒤 얼마 안돼 누가 날 끌어올리길래 ‘왜 벌써?’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랬다고 하는 거다. 확인해보니 40초 넘게 숨을 참았다! 중요한 건 이렇게 극복한 경험이 하나 생기고 나니까 어떤 작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래서 내게 <침범>은 노력한다면 더 많고 다양한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다.
- 지난해에 첫 예능프로그램 <텐트 밖은 유럽-로맨틱 이탈리아>를 찍었다. 여행을 통해 여전히 모르겠는 나를 알아보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는데, 성공했는지 궁금하다.
그 프로그램을 하기 전 즈음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는 고민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가서는 적응하고 즐기느라 생각을 잘 못했는데, 방송 모니터를 하면서 하나 알게 된 게 있다. 누가 울면 따라 우는 사람인 곽선영은 타인의 감정에 잘 전염된다는 걸 말이다. 얼마 전 <침범> 무대인사 때 우는 소유를 보자마자 울고 말았다. 관객들에게 우리 영화를 보여줄 수 있는 지금 이 자리가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는 아이의 말에 진정하기가 힘들었다.
- 기소유 배우와 거의 모든 장면을 함께 촬영하며 쉽지 않은 작품을 헤쳐나갔다. 성인과 아역 배우로 나눌 수 없는 동지적 관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프로페셔널한 배우이자 최고의 파트너였다. 난 우리가 비슷해서 참 좋았다. 둘 다 장면에 확 집중했다가 오케이가 나면 잘 빠져나온다. 대기하는 동안 소품 인형을 가지고 열심히 놀다가 슛 들어간다고 하면 인형들을 고스란히 돌려놓았다. 그리고 같이 손잡고 힘든 신을 연기하러 갔다. (웃음) 그래서 누가 “영은이로 사는 동안 정말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면 즉각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소유 덕분에 즐거웠어.”
공통질문
1. 아무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하루가 주어진다면?
“종일 집에만 있을 거다. 밀린 책도 읽고 햇빛과 바람도 느끼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집순이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
“첫째로는 <친애하는 판사님께>. 첫 드라마 출연작이다. 아직은 매체 연기가 낯선, 그래서 풋풋한 배우 곽선영의 모습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두 번째는 <KBS 드라마 스페셜 2021–보통의 재화>. 캐릭터 자체가 재밌고, 단막극을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이 작품으로 소원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