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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닥터 차정숙’
2023-05-05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독기를 품고 이전의 자신과 전혀 다른 타입이 되는 캐릭터를 두고 ‘점을 찍고 돌아왔다’고 한다. 현모양처가 팜므파탈이 되어 남편과 시댁을 박살내는 SBS <아내의 유혹>이 낳은 숱한 패러디를 거치며 역으로 ‘점을 빼고 돌아온’ 캐릭터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기껏해야 얼굴이 환해졌다는 덕담을 들을 테고, 여전히 나는 나인데 전보다 더 만족스러운 정도겠지.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라고 여겼거나 거슬렸어도 내버려뒀던 무엇을 손보기로 한 이의 이야기는 점 찍는 드라마보다 싱거울 거라고 묻어뒀었다. JTBC <닥터 차정숙>은 46살 전업주부가 20년 만에 종합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로 복귀하는 드라마다. 외도하는 남편, 며느리를 종처럼 부리는 시어머니, 목숨을 구해준 근사한 연하남에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귀인의 등장까지 <아내의 유혹>과 다를 바 없어 초반엔 정숙(엄정화)도 딴사람처럼 각성하는가 했더니, 자기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다 이젠 점을 빼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다시 떠올랐다.

간이식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 중년 여성이 이전과 다르게 살기로 했으니 의대 동기였던 남편만큼 유능한 의사로 변신해 활약하는 전개가 짜릿할 테지만, 실수투성이 1년차 레지던트 정숙은 나이와 병력으로 눈칫밥을 먹고 민폐 소리를 듣는다. 고구마 드라마일까? <닥터 차정숙>은 현모양처로 살던 이전의 삶을 후회와 잘못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희생과 헌신에 보람을 느끼는 것을 자신의 장점으로 다시 파악하되, 이를 당연하게 요구받는 상황들을 바로잡으며 정숙은 성장하고 드라마는 핸디캡을 재능으로 뒤집는다. 큰 수술을 받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몸은 메스를 잡고 정점에 서는 의사가 되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주저앉아 우는 환자 앞에 쪼그려 앉아 두렵고 막막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으니, 이는 때가 늦어 경험으로 피우는 재능이다.

CHECK POINT

길에서 쓰러진 위급 환자를 만나는 것은 의사 캐릭터가 드라마 속에서 비범한 영웅으로 승인받는 첫 번째 관문. <닥터 차정숙>도 이 공식을 빌려오지만, 의사 일을 그만둔 지 20년이 된 정숙은 손을 달달 떨며 119를 외치고 다른 의사가 개입해 무사히 처치하자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요. 저 환자 분이 선생님을 만나서”라고 말한다. 정숙의 활약은 없지만, 이 사건은 중단한 꿈을 다시 잇는 계기가 되고 젊어서는 모호했던, 되고 싶었던 의사의 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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