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코미디의 핵심은 시대정신이다”, <피식대학> <빵송국> <숏박스4>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
2024-04-26
글 : 이유채
사진 : 오계옥

2021년 문을 연 메타코미디는 베이비붐 세대부터 Z세대까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며 국내 코미디계의 흐름을 이끄는 코미디 레이블이다. 장삐쭈, 피식대학, 빵송국, 숏박스, 과나, 김해준, 박세미 등 대세 크리에이터들 모두 이곳에서 한솥밥 먹는 사이이며 카페 사장 최준,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 서준맘과 길은지, 한사랑산악회와 같은 유명 캐릭터들 역시 이곳에서 탄생했다. 2010년대 들어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으면서 한 덩어리가 돼버린 한국 코미디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다시금 우리에게 코미디를 다채롭게 즐기는 기쁨을 안기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CJ ENM, YG 엔터테인먼트 코미디팀, 샌드박스네트워크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마침내 코미디왕국의 수장이 된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는 “코미디가 우리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사회”를 꿈꾼다.

- 메타코미디의 창업 계기가 한국 코미디의 쇠락과 관련이 있나.

= 그렇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당시 코미디가 한국 방송계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미디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코미디가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만나면 농담을 했다. 그게 코미디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한국 코미디가 공백기일 때 나는 운 좋게 영어를 할 줄 알고 일본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코미디 빅 팬으로서 양국의 왕성한 코미디 콘텐츠를 섭렵했다. 보면서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많은 것들을 흡수하는데 왜 코미디만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 국내 최초 코미디 레이블을 설립했을 당시,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 초반 기틀을 어떻게 잡아나갔나.

= 대부분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너는 개그맨 소속사를 차리고 싶은 거냐’는 말들을 들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워낙 반골 성향이라 타격을 받진 않았다. 코미디업에 대한 확신은 없어도 내 커리어에 대한 확신은 있었다. 그간 몸담았던 회사들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서 전부 수익을 냈었기 때문에 나와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렇다고 나 혼자 뭘 할 수 없는 분야이니 처음 1~2년은 거대한 함선을 함께 타고 나갈 동료들을 영입하는 데 주력했다. 장삐쭈, 피식대학, 빵송국, 김혜준, 숏박스, 엄지윤, 과나, 스낵타운까지 나와 방향이 같고 세상에 다양한 코미디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줄 만한 아티스트들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그들이 응해준 덕분에 비교적 빠르게 순항할 수 있었다.

- 유튜브 플랫폼엔 친숙한 편이었는지.

= 거의 처음 생겼을 때부터 이용했었던 것 같다. 당시 20대였고 사진 올리는 문화가 막 생겨나던 시절이었는데, 유튜브가 나온 걸 보고 사람들이 동영상으로 소통하는 시기도 곧 오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머지않아 정말 그런 시대가 왔고 유튜브 큐레이션이 궁금해 MCN쪽으로 가서 유튜브 코리아 카테고리를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뷰티, 먹방, 게임은 다 있어도 코미디는 없었다. 그나마 키즈쪽에서 ‘급식왕’, ‘흔한남매’ 같은 코미디 콘텐츠가 태동 단계에 있었다. 그래서 일하면서 교류가 있었던 코미디언들에게 2030세대가 볼만한 코미디가 비었으니 그걸 너희들이 맡아줬으면 좋겠고, 채널 이름은 ‘○○ 대학’이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들이 ‘피식’이란 이름을 가져왔고… 그게 <피식대학>의 시작이었다. 나도 그때쯤 나올 때가 됐다 싶어 마지막 직장을 나왔고.

- 그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유튜브 문법이 있나.

= 솔직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무슨 무슨 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만드는 사람들이 재밌다고, 멋있다고 여기는 걸 하면 되는 거고, 대중이 운 좋게 공감해주면 그 자체가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거다. 예전에 유튜브는 10분 넘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 진리처럼 떠돌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얘긴 잘 알다시피 너무나 쉽게 깨졌다. 침착맨이 <삼국지>에 대해 1시간 동안 설명한 콘텐츠가 몇백만 조회수를 기록한 적도 있다. 다시 말해 유튜브는 타이밍이 잘 맞는 게 핵심이지 이래야 한다는 법칙들은 다 부차적인 문제다. 그래서 메타코미디도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있지 않았다.

- 메타코미디의 회의실 풍경과 현재 정영준 대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우선 CM이라고 부르는 대표 직속 크리에이티브 매니저들이 아티스트들을 총체적으로 담당한다. 이들이 아티스트들과 창의적인 얘기들을 중점적으로 나눈다. 하루에 회의만 10시간씩 하다가 집에 갈 때가 비일비재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사무실을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아티스트들과 논의도 하고 일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고. 앞장서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위치다 보니 아쉽게도 A부터 Z부터 디테일을 챙기던 시절과는 멀어졌다. 기본적으로 모든 콘텐츠는 해당 콘텐츠를 만드는 아티스트들의 소관이고 내가 컨펌하는 절차 같은 건 밟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구독자가 아이디어마다 그걸 처음 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들하시는데 우리도 모른다. 이거 웃기다, 저거 웃기다 하면서 막 던지다가 한 덩어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웃음)

<메타코미디클럽>

- 자잘하게 궁금한 것들이 있다. <The Psick Show>는 왜 영어로 진행하고, <05학번이즈히어>에서의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줌 사용법은 어떻게 결정했나.

= 단순하다. 소위 영어 잘하는 척하는 외국병에 우리가 걸렸다고 설정하면 웃길 것 같았다. <05학번이즈히어>의 촬영법은 출연진인 (김)민수가 현장에서 낸 아이디어였다. 아마 못난 얼굴과 볼록 튀어나온 배를 가까이서 보여주는 게 웃겨서였을 거다.

- 캔슬 컬쳐 이슈 이후 <나락퀴즈쇼>가 나온 걸 보면서 코미디는 시대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탄생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 코미디의 핵심은 시대정신이고 코미디라는 건 결국 우리가 대체로 공감하는 굉장히 우스운 지점을 놀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만약 ‘대체로 공감’할 수 없는 소재라면 그건 코미디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락퀴즈쇼>는 슬기롭게 잘 만들어진 기획이라고 자부한다.

- 콘텐츠 제작에 있어 수위 조절은 늘 고민거리일 것 같다.

= 아티스트들이 매일 진지하게 하는 고민이다. 대중은 수위가 너무 낮으면 찾지를 않고 너무 세면 크게 분노한다. 그러나 그런 지점은 어쩔 수 없이 코미디가 필연적으로 가져가야 할 부분이다. 어떤 친구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안 만날 수 없듯이 대중과 계속 싸우고 화해하면서, 무엇보다 현명하게 대응하면서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

- 지난 3월30일에 코미디 전용 공연장 ‘메타코미디클럽 홍대’가 개관 100일을 맞았다. 오프라인 공간이 왜 필요하다고 봤나.

= 메타코미디클럽 홍대는 메타코미디의 IP를 만들어내는 R&D 센터 정도로 생각해주면 될 것 같다. 관객과 직접 만나는 자리는 우리의 농담을 검증해보고 가다듬어서 더 좋은 농담으로 발전시킬 절호의 기회다. 이호창 본부장 같은 캐릭터가 공연에서 나왔는데, 그와 같은 실탄을 많이 쟁여놓고 싶었다. 앞으로는 신인 개발의 장 역할도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우리가 메타코미디 제작 코미디영화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웃음)

= 구체적인 계획까진 없지만 만들 생각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메타코미디가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해야 할 텐데 코미디가 해외로 나갈 기회는 영화나 드라마 형태일 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코미디 역량이 내부에 어느 정도 쌓이고 국내 코미디의 범위를 범대중적으로 넓혀 어느 정도 승률이 높아졌을 때,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행오버> 같은 코미디 무비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

- 2024년의 메타코미디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나.

= 굶어 죽지 않는 미래. (웃음) 애초에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어 메타코미디를 차렸다. 그러니 그것들을 다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 망할 수 없다.

공통질문

<메타코미디클럽>

1. 메타코미디를 대중에게 인식시킨 핵심 콘텐츠는?

“당연하게도 ‘메타코미디클럽’. 흔히 축구선수가 하는 족구 경기 같은 콘텐츠라고 소개한다. 누구나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의도로 시작했는데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진지해지는 바람에 지금은 휴업 상태다. 조만간 새 콘텐츠가 업로드돼 올라가니 기대해 달라.”

2. 내 예상만큼 조회수가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아끼는 회차는?

“<빵송국> 채널의 ‘두루마리 밴드’. 시대를 잘못 타고난 괴작 중의 괴작이다. 미국의 하드 록 밴드 ‘키스’처럼 얼굴에 분칠을 한 메탈 밴드가 나오는데 언제 봐도 정말 웃기다. 밴드의 시대가 오고 있으니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볼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