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일상 브이로그가 쏟아지던 2010년대 중후반에는 크리에이터를 겸한 일반인이 주로 주목을 끌었다. 핸드폰으로 가볍게 찍어 앱으로 편집해 올리는 경우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유튜버로 정체화한 사람까지 1인 채널의 스펙트럼은 무척 다양했다. <문명특급>을 제작한 재재는 스스로 연반인(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으로 지칭했고, 배우 신세경이 브이로그를 시작한다는 소식은 골목상권 침해라는 호소가 이어지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연예인과 유튜브의 상관관계가 낮던 시절이었다. 어린이들의 진솔한 관점을 담은 <ODG>도 처음엔 아동 의류 브랜드로 론칭했다. “<ODG> 채널을 설립했던 2019년엔 콘텐츠를 판매한다는 개념 자체가 미비했다. 나는 영상을 계속 만들고 싶은데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의류 브랜드와 영상을 엮었다. 사실 아동복은 부차적인 것이었다.”(윤성원 솔파 스튜디오 대표) 100인 100색의 1인 채널이 대부분이었던 유튜브에 영상 전문가들이 군집을 이뤄 각 잡은 콘텐츠를 풀어내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이후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색다른 시도를 모색하는 스튜디오들이 유튜브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레거시 미디어와 달리 영상 플랫폼이 지닌 높은 자율성과 허들 낮은 진입장벽, 자유로운 콘텐츠 전개 방식 등 이점이 있지만 오직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온에어 콘텐츠 대비 유튜브는 플랫폼 구조적으로 시청자와 유기적·상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유튜브는 구독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이다. 온에어 콘텐츠가 시청률과 화제성의 집계를 기다려야 한다면, 유튜브는 영상이 업로드되는 즉시 실제 반응을 체감할 수 있다. 댓글은 기본이고 주요 구간을 태그해 기록하거나 구독자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등 리액션의 확장성이 높다. 스튜디오들이 레거시 미디어보다 유튜브에서 콘텐츠 실험과 도전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빠른 반응 수집, 정확한 취향 확인 그리고 언제든 보완점을 적용할 수 있다는 유연성.”(김예슬 에그이즈커밍 PD)
유튜브 예능의 진화과정
연예인과 방송인이 적극적으로 출연하는 게 일종의 일탈이나 낙오처럼 비쳐졌던 과거의 유튜브 분위기에서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던 콘텐츠들이 있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평범한 일상을 5분 안팎의 콘텐츠로 구성한 메타코미디의 <숏박스>는 보편적인 포인트를 명확하게 짚어내는 배우들의 몫이 중요하다. 특히 11주년을 맞이한 장기 연애자들의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선보인 ‘모텔이나 갈까?’ 편은 조회수 1578만회, 댓글 8천여개를 기록했다. 채널 구독까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으로 퍼지는 강렬한 파급력을 선보였다. 서준맘을 연기한 박세미 또한 자기 채널에서 세대보편적으로 친근한 엄마의 모습을 연기하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서준이의 시선을 적용힌 키 낮은 카메라앵글이나 아이를 대하는 박세미의 섬세한 연기는 2030 시청자에게 자신을 비슷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다시 말해 연기자로 등장하는 엄지윤, 박세미, 김원훈, 김해준 등의 연기력이 세밀하면 할수록 온라인의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이제 유튜브 채널은 새로운 연기자를 발굴하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한다. ‘언제든 쉽게 반응할 수 있는 댓글 구조’는 공감 중심적 콘텐츠와 맞물려 시너지효과를 낸다. 초 단위로 구간을 짚어 댓글을 달면서 이용자간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본 콘텐츠만큼이나 댓글이 하나의 즐길 거리로 부상한 것도 유튜브 생태계의 주요 맥락이 되었다.
웹드라마 <에이틴>(2018)의 부흥과 페이크 다큐의 주목 등 스토리텔링 기반 콘텐츠가 유튜브에 안착한 시점을 생각하면 예능 콘텐츠는 비교적 후발주자에 가깝다. 포맷이 한정되지 않은 유튜브의 속성은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줬다. 기성 방송국에서라면 연출자 파워, 출연진 인지도 등에 따라 차등 편성을 두게 되지만 모든 콘텐츠가 나란히 나열될 수 있는 유튜브는 일면식 없는 모든 이들에게 수평적으로 선택권을 준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레거시 미디어가 덜 주목했던 계층도 주인공 무대에 오를 수 있다. ‘You were a kid once’(당신도 한때는 아이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솔파 스튜디오는 론칭 당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어린이, 청소년을 메인 출연자로 내세웠다. 이들은 어른의 취향에 맞춰 인형처럼 예쁜 모습으로 랜선 이모·삼촌의 사랑을 예약한 재롱 콘텐츠를 제작하기보다 어디서나 볼법한 평범한 아이들로부터 솔직한 속마음을 들어볼 기회를 주었다. ‘아무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6천만 조회수(‘한국 아이가 미국 아이를 처음 만나면 하는 말’)를 달성할 수 있던 것도 유튜브가 지닌 수평성 때문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일반인들과의 대화를 핵심 주제로 차용한 <썰플리>나 일반인 사이의 비밀을 추리해내는 <픽시드> 또한 이런 배경을 발판 삼았다.
플랫폼이자 장르이고 포맷이자 소통 방식인
레거시 미디어 또한 유튜브의 입지를 인지했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홍보맨(김선태 주무관)이 공무원 세계의 경직성을 뚫고 유튜브의 활로를 다진 풍경 또한 그 자체로 유튜브의 매체력과 필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성 방송사에서 가장 빠른 탐색을 보인 건 SBS다. 뉴미디어 <문명특급>을 제작하면서 기성 방송사가 하지 못하는 영역을 두루 손봤다. <문명특급>은 ‘지상파 최초의 뉴미디어 프로그램’이라는 수식과 함께 역으로 TV 편성을 받기도 했다(새로운 전략으로 유튜브를 공략했으나 그에 대한 인정이 기성 방송사 편성인 점은 여전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MBC는 보다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방안을 내세웠다. ‘14층 사람들이 만드는 짧고 똑똑한 뉴스’라는 슬로건의 ‘14F’는 원래 소속이었던 보도국에서 나와 전면적인 뉴스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플랫폼의 수익 방안 중 하나인 간접광고와 협찬을 받기 위해선 보도국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뉴스와 취재, 기획력과 네트워크 등 기존 방송국이 지닌 장점을 유튜브 문법에 따라 재미있게 재구성하면서 비즈니스 모델까지 영리하게 포용한 사례에 가깝다. 가수 브라이언의 다소 강박적인 청결함을 소재 삼은 M드로메다의 <청소광 브라이언> 또한 MBC의 안정적인 기획력이 톡톡히 묻어난다. 시작과 함께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며 MBC 파일럿 편성까지 올랐다. 유튜브를 통해 반응을 확인하고 방송 편성으로 다시 본진에 회귀시키는 이 패턴은 기성 방송사가 이제는 유튜브를 경쟁 상대로 바라보기보다 하나의 브랜치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멜팅포트처럼 모든 미디어가 뒤섞여 녹아들고 있는 유튜브는 플랫폼이자 장르이고 포맷이자 세대적 소통 방식이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콘텐츠 제작사의 궁극적 목적지는 유튜브일까. 레거시 미디어를 병행하는 유튜브 제작사의 고민을 통해 핵심적인 단초를 엿볼 수 있었다. “온에어 콘텐츠를 만들던 방식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면 너무 정보값이 많아진다. 디바이스가 작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자막도 음악도 덜어내려고 한다. 촬영도 방송국 카메라가 아닌 가벼운 카메라로 고르고, 촬영감독 없이 PD가 직접 찍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요즘엔 유튜브를 스마트TV로 많이 보더라. 큰 화면으로 보니 다시 빈틈이 보이고 화질도 낮아 보였다. 이젠 어쩌지? TV 디바이스와 유튜브의 결합까지 왔다. (웃음)”(김예슬 에그이즈커밍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