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진실을 둘러싼 흙, 바람, 물을 읽어내기, <폭로: 눈을 감은 아이> 배우 김민하, 최희서
2024-10-25
글 : 최현수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20년 만에 절친했던 두 친구가 재회한다. 해후의 장소는 취조실이다. 인선(김민하)은 소설가 정상우(이기우)를 살인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다. 형사 민주(최희서)는 그런 인선의 수사를 맡았다. 부산에서 처음 선보인 전선영 감독의 <폭로: 눈을 감은 아이>는 진실을 둘러싼 두 여성의 격동하는 감정이 돋보이는 스릴러다. 작중 끊임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던 인선과 민주처럼,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배우 김민하와 최희서는 끊임없이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 부산국제영화제 첫 상영부터 두 배우의 주연 소식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폭로: 눈을 감은 아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민하 무엇보다 여성들이 주연이고 여성감독이 영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다가왔다.

최희서 한국영화에서 여성들이 온전히 서사를 이루는 구조 자체가 드물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 싶었다. 게다가 김민하 배우가 인선 역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조건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파친코>의 선자를 보고 너무 좋아서 주변에 김민하에 대한 소문을 낼 정도였기 때문이다. 감독님을 통해 민하 배우가 나와 작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운명이라 생각했다.

- 인선이 민주를 담당 형사로 지목한 후로 영화는 철저히 둘의 관계에 집중한다. 특히 취조실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에너지가 상당하다.

김민하 민주와 인선은 대면하는 순간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눈을 마주치는 순간에 엄청난 힘이 생겼다. 특히 희서 언니를 바라볼 때면 일순간 주변이 뿌옇게 변한다. 정말이지 눈만 보일 정도였다. 강렬한 경험이었던 동시에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선은 필사적으로 정의를 찾아내려는 인물이라서 연기하는 나조차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민주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심리를 납득하게 됐다. 배우와 인물모두를 구원하는 시너지가 깃든 장면들이다.

최희서 인선과 민주가 단둘이 남아 고립된 공간에서 대화하는 신이 총 네 차례 등장한다. 나는 네 장면이 이 영화의 척추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께 적어도 이 신들만큼은 차례대로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촬영에 들어간 후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신중하게 다가갔다. 감정적으로 격동하는 여느 클라이맥스들보다 인선과 민주가 대면하는 장면에 쏟은 감정의 밀도와 집중력이 극에 달했다. 개인적으로도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이다.

- 민주와 인선은 서로를 향해 진실이라는 단어를 쓴다. 다만 두 사람의 진실은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듯하다.

김민하 인선은 사실 민주를 보자마자 사건의 전말에 대해 고백할 수 있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이유는 진실을 넘어서는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함께한 3일 동안 민주는 인선의 의도에 궁금증을 품는다. 어쩌면 민주가 자신에 대해 궁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인선의 계획이 아니었을까. 사건의 전말은 그저 동떨어진 돌멩이와 같다. 반면 두 사람 사이에는 20년의 세월이 있다. 인선에게 한 덩이의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 돌을 둘러싼 흙, 바람, 물 같은 주변을 함께 읽어야만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인선에게 진실은 정의에 가깝다.

최희서 민주는 사실로서 진실을 좇기 바쁘다. 경찰은 이성적으로 사건을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민주의 심문은 모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인선은 그런 민주에게 사실 너머의 시간을 직시해야 함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두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교차되는 길목에 진실이 놓여 있다.

- 최희서 배우의 말처럼 인선과 민주는 평행선을 달리는 인물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마음을 향하고 있다.

김민하 인선이 민주를 잊은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까. 인선은 오래도록 민주를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을 먼저 알게 된 후로 인선에게 그런 감정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좇기 위해서 민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선은 그런 면에서 원초적인 사람이다. 인선을 움직이는 동력은 근본적인 문제를 뿌리 뽑고 싶은 간절함이다. 따라서 인선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걸었던 모든 길은 동시에 민주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최희서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형사 연기를 소화했다. 배우로서 층위가 많은 입체적인 인물을 연구할 때 연기하는 맛이 있는데, 민주가 딱 그런 인물이었다. 겉으로는 정의를 추구하는 경찰이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오랜 죄책감이 서려 있다. 그녀의 직업 자체가 위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건에 배정되고 피의자가 인선임을 알게 되자마자 민주는 부디 그녀가 사건의 범인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결국 민주의 수사는 겉으로는 인선을 구하기 위함이지만 결국엔 자신을 구원하려는 길일 수도 있다.

- 인선은 진실을 알지만 침묵하고, 민주는 무지하기 때문에 간절히 파헤치려 한다. 두 인물의 태도가 상이한 만큼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랐을 것 같다.

김민하 촬영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본을 읽고 또 읽었다. 읽을 때마다 인선에게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달라지더라. 물론 인선은 사건의 진실을 쥐고 있는 사람이지만 민주에 관해선 무지한 사람이다. 20년 만에 친구를 만나면 거의 모르는 사람 아닌가. 아마 인선은 민주가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을 것이다. 다만 촬영장에 들어간 뒤론 현장에 스스로를 맡기려 했다. 원초적인 인선처럼 카메라 앞에 선 순간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낯선 느낌을 표출하려 했다.

최희서 연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계획과 즉흥을 유동적으로 조합해나가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 서면 민하의 말대로 상황이 주는 첫인상을 포착해야 한다. 과거에는 캐릭터를 맡게 되면 정서 기억이나 일대기 상상처럼 학교에서 배웠던 방법론을 적용했다. 마치 내비게이션을 켜고 방향을 설정한 뒤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과 같았다. 요즘에는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설정하지만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을 찾아가는 방식이 더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처럼 알지 못하는 상황을 연기하는 게 참 어렵다. 배우라면 각본을 전부 읽었을 테니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무지에서 오는 당혹감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고도 매력적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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