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의 밤에서 CGV상·초록뱀미디어상을 거머쥔 <파편>의 이야기는 김성윤 감독이 어느 날 우연히 집어든 책 한권에서 시작됐다. 수감자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꼭 안아주세요> 란 수필이었다. 이에 김성윤 감독은 수감자의 자식이란 이유만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알리고자 했다.
<파편>의 주인공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가 감옥에 간 뒤 단둘이 살고 있는 중학생 준강과 초등학생 준희 남매, 그리고 불의의 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게 된 고등학생 기수로 설정됐다. “초중고교 시기마다 달리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다양하게 그리기 위한” 인물 구도였다. “피해자의 자녀에겐 대개 연민과 도움의 손길이 오는 반면에 가해자의 자녀는 오히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고 있더라”라는 김성윤 감독의 안타까움이 <파편>의 인물들에 투영된 것이다. 김성윤 감독의 따스한 시선은 영화에서 선의를 지니고 아이들을 돕는 많은 어른의 존재로도 나타난다. “조금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를 본 수감자 자녀들에게 조금 더 나아갈 힘을 주고 싶었다”라는 감독의 의도를 대변하기 위해서였다.독립영화에서 다룰 수 있는 사회적 소재를 중심으로 삼되 “최대한 많은 관객이 보편적인 감정으로 수용할 수 있는 대중영화의 플롯”을 적절히 풀어내는 과정이 <파편>의 관건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파편>은 준강과 준희 남매가 왜 단둘이 살며 곤궁함에 처해 있는지, 기수가 어떠한 일을 겪어 극도의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누가 사건의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의 자녀란 정체성을 굳이 구분하기보단 이 아이들이 지금 고립되어 있다는 상황과 감정의 전달이 중요”했기에 결정된 바다. 동시에 이 선택은 관객에게 절제된 정보량만을 제시하며 영화의 미스터리를 강화하고 장르적인 재미를 키운다. 작품의 완성도를 책임질 미세한 촬영의 묘도 놓치지 않았다. “준강은 수많은 사회의 비난과 화살을 피하려 자꾸만 어디론가 뛰어가기에 카메라도 다소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준강이를 놓치곤 한다. 반면에 기수는 모든 고통의 원인과 책임을 자신에게 억누르는 상황이기에 카메라가 기수의 얼굴을 정적으로 담는 쪽에 집중했다.”
김성윤 감독의 영화적 목표는 “재밌는 영화”다. 광활한 의미의 이 답변은 감독의 넓은 취향에서 비롯된다. <파편>을 준비하는 동안엔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를 보며 ‘우리는 함께 밥을 먹을 때 강해진다’란 대사에 감응”했고 “평소 구로사와 기요시와 레오스 카락스, 드니 빌뇌브의 영화를 좋아하며 매해 <사랑의 블랙홀>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터미널>을 챙겨 본다”. 영화를 향한 너른 애정은 ‘시나리오 보부상’이란 그의 별명으로도 이어진다. “조감독 등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제작자들과 계속해서 여러 이야기 소재를 논의하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파편>의 수상 덕에 어디 가서 당당하게 영화감독이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됐고, 죽을 때까지 영화를 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포부를 밝히며 앞으로의 행보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