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다: 김아영 현대미술가, 이동윤 영화평론가,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지은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 대담
2022-05-18
글 : 임수연
정리 : 이유채

김아영 현대미술가 또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한다. 내러티브가 강한 영상 작업을 통해 다양한 이주 주체들의 이야기를 사변적 픽션이라는 특유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오고 있다. 제8회 디아스포라영화제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에 객원 프로그래머로 초대됐을 때 <겟 아웃>을 상영한 후 흑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강연했다. 이후 단편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동윤 영화평론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한국 퀴어영화에 관한 연구에도 참여했다. 2019년 모더레이터를 맡으면서 디아스포라영화제와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그간 참여했던 영화제 중 가장 평화롭고 따뜻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영화제에 먼저 영화비평 워크숍을 제안하면서 2020년부터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이혁상 <종로의 기적> <공동정범>(공동 연출)을 만든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5회부터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정지은 문화평론가.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 영화제가 처음 시작되던 해부터 3회까지 인천문화재단 소속 실무자로서 초기 영화제를 세팅했다. 이후에도 어떤 식으로든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먼저, 각자 영화제와 맺었던 인연을 바탕으로 지난 10년간의 소회를 들어보고 싶다.

정지은 처음엔 전체 1억5천만원 규모의 사업 중 3천만원에 해당하는 국비 공모 사업으로 출발했다. 당시 인천문화재단 안에 있었던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에 함께 문화 다양성과 관련한 사업을 하자며 시작한 기획이었다. 개인적으로 서경식 선생의 책이나 양영희 감독의 영화 등 디아스포라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키워드를 떠올리게 됐다. 이방인이 많은 인천시의 역사를 어떻게 문화예술적 측면에서 풀어낼지 고민했다. 솔직히 A4 용지 3분의 1 정도 되는 기획안으로 시작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인천이 디아스포라와 굉장히 어울리는 도시라는 데 많은 분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혁상 사실 디아스포라영화제에 대한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오히려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에서 해왔던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산업 내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프로젝트 마켓이었기에 인연이 있었다. (김일란 감독과 공동 연출한 <공동정범>이 인천다큐멘터리포트를 통해 제작 지원을 받았다.-편집자) 그런데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스탭들이 행사가 마무리되면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일을 하더라. 그래서 영화제 참가자 혹은 행인으로서 한번 디아스포라영화제를 쓱 지나가며 구경한 적은 있었다. <공동정범>을 마친 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재일 조선인에 대한 극영화 <조선의 태양>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당시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있던 강석필 감독님이 내가 디아스포라 이슈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먼저 프로그래머 직을 제안해주셨다. 돌이켜보면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 스탭으로 영화와 관련된 일을 처음 시작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을 거치면서 영화제가 내 삶을 이루는 하나의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영화제 일을 해보고 싶었다.

김아영 15년간 유럽 주요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지냈다. 어쩔 수 없이 내겐 이주자 정체성이, 언제 체류 허가가 끝날지 모른다는 극단적인 불안감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프레카리아트의 삶은 자연스럽게 이주라는 개념에 대한 영상 작업을 하게끔 나를 이끌었다. 다만 리얼리즘 방식은 배제하고 상상이 많이 가미된 픽션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인간이 아닌 어떤 사물이나 광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등 우화적인 픽션들이었다. 한국에 완전히 돌아왔던 2018년 초, 감사하게도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에 객원 프로그래머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겟 아웃>을 소개하면서 아프로퓨처리즘 담론과 흑인 트랜스휴먼 신체성에 대한 강연을 했다. 이듬해에는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 그다음해에는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라는 작품을 초대해주셔서 계속 영화제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현대미술계에서 영상 작업을 하면서 영화계에서 함께 활동하는 분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쪽에 걸쳐 있었다. 극영화에 비해 영화에 대한 경계가 열려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작업물을 영화라고 부르지 않았고 그냥 무빙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나 춘천SF영화제 관계자들은 내 작품을 영화로 받아들여주는 등 앞선 시각을 보여줬다. 그런 의미에서 애착이 있는 영화제다.

이동윤 아트시네마를 좋아하는 시네필이 상업영화판에서 시나리오작가로 일을 시작하며 느끼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에 들어가 이론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시야가 확장된 부분이 있다. 영상이론과에서 정치철학과 사회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디아스포라 개념과 동아시아 지역의 미디어 생태계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렇게 이 주제에 관심을 갖던 차에 2019년 디아스포라영화제에 가게 된 거다. 내게 이곳은 해방의 공간이었다. 2020년 춘천SF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기준점으로 삼았던 영화제 중 디아스포라영화제도 있었다. 영화제를 꾸려나가는 입장에서는 프리미어 작품을 더 많이 초청해서 상영해야 한다거나 하는, 눈에 보이는 데이터로 증명해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그런 긴장감 혹은 고민으로부터 조금은 여유롭고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9년 당시 참여했던 후속 프로그램 중 인천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영화제 상영작을 틀고 해설하거나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당시 접했던 학생들의 반응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영화제를 중심으로 다각도로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움직임이 열매를 맺는 어떤 순간들을 기대하게 됐다.

정지은

-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잘 모르는 관객도 있다. 혹은 의미를 알더라도 디아스포라영화를 ‘이주민을 다룬 작품’이라는 한정된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제 상영작을 보면 디아스포라는 성소수자, 여성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디아스포라라는 키워드가 영화제로서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정지은 제일 차별화된 지점은 인천에서 열리고 인천이라는 지역 특성과 잘 연계된다는 것이 아닐까. 인천 차이나타운 바로 옆에 화교학교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인천문화재단에서 했던 무지개다리 사업에서 화교학교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그때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 학생들이 동네 잔치처럼 모여서 다 같이 영화를 감상했다. 자막이 총 4종류, 즉 4개국 언어가 함께 제공되었다. 그때 오신 분들이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준 적이 없었다”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그때의 풍경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런 점이 디아스포라영화제만이 할 수 있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혁상 한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영화제는 그 지역의 정체성과 동떨어진 상태로 시작한다. 그에 반해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인천시의 지역성을 잘 살린 토착적인 행사였다. 차이나타운, 인천항, 인천공항, 공단의 이주 노동자들, 지금은 송도의 화이트칼라까지 인천은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나에게 프로그래머 직을 제안해주셨던 것은 당시 내가 재일 조선인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겠지만, 내 정체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로서 내가 가진 위치가 디아스포라 감각을 잘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프로그래머로서는 디아스포라라는 개념 자체가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응용부터 시작하면 관객이 헷갈릴 수 있으니 지역성과 명확히 결부시킨 개념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이주와 이민, 이산과 같은 기본적인 개념에 좀더 집중했다. 이제부터는 광의의 디아스포라를 프로그램에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김아영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가져오는 시도가 중요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작품들,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시대에 그 접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들이야말로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 프로그래머로서 작품을 고를 때 완성도보다는 그 작품이 영화제 공간 안에 들어왔을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충돌과 파격의 에너지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다. 영화제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면서 질문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작품, 인천의 지역성,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공간에서 열리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결국 비주류적 가치를 지향하거나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민이든 난민의 형태든 물리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국제 정세가 복잡다단한 시대에는 모두가 디아스포라적 존재 양식을 삶의 기본적인 양식으로 갖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물리적인 개념을 뛰어넘어 정체성의 방황까지 다룰 수 있는, 주류적 가치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이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다.

-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던 2020~21년에는 CGV인천연수점에서 영화제를 개최했다. 올해는 원래 영화제를 열었던 인천아트플랫폼으로 다시 장소를 옮겨왔다.

이혁상 팬데믹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펼치면서 CGV라는 민간 극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스퀘어원 쇼핑몰 안에 있는 CGV에서 영화제를 열다니, 드디어 성공하셨군요”라고 하는 거다. (좌중 폭소) 원래 성공한 영화제들은 모두 쇼핑몰 안에서 열린다는 거다. 사실 그게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엔 10주년을 맞아 영화제를 시작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 한 가지 걱정됐던 부분은 인천아트플랫폼이 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간이 극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경험과 정취가 영화제와 어울린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요즘 관객은 멀티플렉스 극장의 안락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인천아트플랫폼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애관극장에서도 영화를 틀게 됐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애관극장으로 이어지는, 신포동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더욱 살려보려고 한다. 동시에 내년부터 새로운 숙제가 또 생긴다. 안정적으로 영화제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해야 할까. 누군가는 편안한 극장 시설을 원하기도 한다. 인천과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는 공간을 계속 찾고 있다.

이동윤 지난 2년간 한국의 거의 모든 영화제들이 온라인 상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전반적으로 관객의 영화 관람 방식이 달라지면서 어떤 과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디아스포라영화제만의 강점이 있다. 장소성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자체가 매우 해체적이고, 오히려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안락한 극장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간이 극장에서 다소 불편하게 영화를 보더라도 이를 뚫고 나가는 게 디아스포라영화제였다. 2019년 <뷰티풀 데이즈> 관객과의 대화를 하던 당시 컨테이너 의자에 앉아서 1시간 동안 관객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떠오른다. 관객도 나가면서 너무 재미있는 시간이었다며 만족해했다.

김아영 현대미술에서 영상은 기본적으로 공간 설치미술일 수밖에 없다. 같은 작품을 전시해도 공간에 따라 설치 디자인이 바뀐다. 복잡한 물성을 가진 설치미술보다 미디어 작업이 팬데믹 상황에서 전시하기 더 쉬웠기 때문에 각종 온라인 플랫폼에서 무료 스트리밍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회의적으로 봤다. 공간적인 맥락이 사라질 때 작품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동윤

- 올해 영화제에서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상영작이나 행사가 있다면 하나씩 꼽아달라.

정지은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연극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텍스트라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난해 8월에 트라이아웃 공연을 보러 갔다. 재일 조선인 관련 텍스트를 낭독극에 가까운 형태로 흡수할 기회가 거의 없어 굉장히 신선할 듯하다. 공연이 끝난 후 원작자인 서경식 도쿄경제대학교 교수가 진행하는 ‘전쟁과 예술’ 강연이 이어진다. 천장산우화극장(성북정보도서관 지하 1층)에서 공연했을 때와 관객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도 체크해보고 싶다.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초기부터 서경식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고 긴밀하게 협업했다. 때문에 몇년 만에 선생님이 다시 영화제를 찾는다는 점이 굉장히 의미 있다. 또 자문위원 중 이종찬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이 <디아스포라 기행>의 극작을 담당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공연장에서 서경식 선생님을 모시고 이종찬 선생님의 극을 같이 보는 일을 영화제에서 실현할 수 있어서 기대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디아스포라라는 감각을 일반 대중 관객에게 좀더 쉬운 방식으로 널리 퍼뜨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아마 모든 영화제가 가진 숙제일 것이다. 시네필에서 출발한 영화제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아방가르드한 예술영화나 액티비즘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영화를 많이 선택하면서 축제로서의 영화제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영화제는 지자체의 예산을 받는 행사이기 때문에 대중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영화제의 생명력 또한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시네마 피크닉’이라는 섹션을 신설해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등장하는 유명한 작품들을 상영한다. <카사블랑카> <사운드 오브 뮤직> <첨밀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등에서 다루는 이야기 역시 디아스포라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김아영

김아영 영화제 기간에 한국 이민사 120주년을 맞이해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민사 투어’와 인천시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지역 문화 투어’가 열린다. 영화제가 열리는 인천아트플랫폼과 애관극장 사이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영화 시간표가 빌 때 이런 투어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개항장 디아유람단 가이드 투어는 애관극장과 인천아트플랫폼을 연결하는 코스로 구성돼 있다. 미술계 종사자로서 비엔날레가 해당 지역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는지 이런 서브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도시를 돌아다니는 여정 자체가 비엔날레를 즐기는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다.

이동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워크숍을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원래 청소년 대상으로 하던 영화비평 워크숍이었는데 자신도 듣고 싶다는 성인들의 항의가 많아서 청소년과 일반 성인 조를 나눴다. 올해 ‘디아스포라 영화비평 워크숍’은 가능한 한 전공이 겹치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을 모집했다. 영화제 기간에 모여서 영화 보고, 토론하고 나중에 비평문을 쓴 후 리뷰하는 시간도 갖는다. 기본적으로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비평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은 다양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토론이 깊어졌을 때 만족감이 크다.

이혁상

- 지난 10년간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인천을 대표하는 지역 영화제로서, 다른 페스티벌과 차별화된 개성을 지닌 프로그램에 대해 인정받으며 성장해왔다. 이제 앞으로의 10년을 고민할 시점이다.

이혁상 규모 면에서 디아스포라영화제를 한국을 대표하는, 심지어 인천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키우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상영 편수를 늘리고 상영관을 확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계속 이야기해왔던 디아스포라의 의미,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영화제의 비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전시회를 갔는데, “나의 예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와 방식”이라는 말이 있더라. 박보나 작가의 미술 에세이 <태도가 작품이 될 때>라는 책도 있다. 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태도가 영화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 태도는 다양성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제라는 그릇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서로를 일깨우는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주류적인 가치가 아닌 낯선 존재 또는 타자들을 좀더 끌어안을 수 있는 시각을 계속해서 키우고, 스탭을 채용하거나 함께하는 파트너를 구할 때도 성별이나 학력보다 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것과 소수자 혹은 디아스포라의 감각을 잘 살릴 수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그러다보니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스탭은 대부분 여성이고, 5년 넘게 페스티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고 있는 디자이너는 성소수자다. 비백인, 비남성, 비-1세계 영화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작품을 초청했다. 앞으로의 10년도 이런 태도를 바탕으로 영화제의 개성을 지켜나가고 싶다. 다만 한국 내 디아스포라적인 존재들, 이주민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과 영화제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려나가는 부분은 좀더 노력해야 한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와 만나고 그들을 영화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지은 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해 <보통의 우리>라는 소설집이 나왔다. 영화 상영과 함께 북토크도 진행할 예정이다. 디아스포라와 잘 어울리는 작품을 쓰는 4인의 작가에게 의뢰해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졌던 건 계속 인천에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토박이가 없는 도시라거나 문화 불모지라는 말을 들으면 반박하고 싶어진다. 동시에 서울에 가면 동경과 질투심이 생긴다. 누군가가 지방 거주자가 느끼는 이런 심리를 변방의 상상력이라고 표현했던데,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아마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서울에서 열렸으면 그다지 재미없지 않았을까.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 열리는, 소박하지만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하는 영화제의 존재 가치가 너무나 소중하다.

이동윤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해보니 현상 유지가 얼마나 힘든지 알겠더라. 그런데 관객 입장에서는 지금 형태가 굉장히 이상적으로 다가온다. 현재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좀더 규모가 커져도 좋을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에 와서 보고 즐기고 누린다면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와 문제의식이 사람들에게도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김아영 영화를 영화로 존재하게 했던 본질적인 조건들이 무너지고 있다. 팬데믹 때문에 가속화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양극단에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굉장히 긴 러닝타임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극장이 럭셔리한 플랫폼이 되기도 하며, 혹은 아주 짧은 러닝타임의 영상들이 나온다. 칸국제영화제가 틱톡과 협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디아스포라영화제의 미덕은 새로운 형식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영화를 관람한다는 조건 자체를 새로 만드는 시도가 굉장히 소중하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있는 것만이 영화가 아니다. 큐레이션의 개념, 공간을 해석하는 방식이 계속 접목되어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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