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개막작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파이널 컷', 오마주의 경계는 어디까지?
2022-05-23
글 : 임수연
취재지원 : 최현정 (파리 통신원)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아는 관객이라면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 <파이널 컷> 첫 장면에서 이미 이 작품의 태도를 눈치챌 수 있다. <파이널 컷>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거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번안한 리메이크영화다. 좀비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2019년 짐 자무시의 <데드 돈 다이>와 같은 전례가 있긴 하지만, 오리지널리티를 의도적으로 포기한 작품을 영화제에 초청한 것을 두고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을 테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을 연출한 사람이 <아티스트>를 만든 미셸 하자나비시우스라는 점이다. 그는 <아티스트>에서 무성영화의,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에서 누벨바그와 장뤼크 고다르의 스타일을 모사에 가까운 태도로 오마주했던 감독이다.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에겐 이미 전세계적으로 컬트적 인기를 누렸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그대로 따라 하는 태도야말로 영화와 영화 만들기란 행위에 바치는 진실된 사랑을 증명하는 길인 것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똑같다. 원테이크로 찍은, 형편없는 퀄리티의 30분짜리 좀비영화가 먼저 관객에게 공개된다. 그리고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벌어진 일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 남은 러닝타임을 채운다. “빠르게, 싸게, 퀄리티는 그럭저럭”의 태도로 각종 영상을 찍는 레미(로맹 뒤리스)에게 일본에서 이미 성공한 원테이크, 생방송, 좀비영화를 프랑스어 버전으로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원작에서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방송국 프로듀서를 연기했던 다케하라 요시코는 이번에도 같은 역할로 등장한다). 레미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선망하는 감독 지망생 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일본어 대본을 그대로 살리기를 고집하는 프로듀서 때문에 프랑스인 배우들이 일본인 이름으로 등장하는 등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간다. <파이널 컷>이 원작 영화에 새롭게 더한 부분이 있다면, 이미 성공한 일본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점을 극중에서 언급하면서 고민 없는 리메이크 작품이 빠지는 함정을 자조적인 유머의 재료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주요 외신의 반응은 대체로 호평이지만(“원작과 마찬가지로 ‘피 땀 눈물’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로, 조잡한 예술이 창작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격려한다.”(<할리우드 리포터>)) 눈에 띄는 악평도 나오고 있다(“<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예산 없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예산 없는 영화(실제 제작비가 2만5천달러였다.-편집자)라는 진실된 아우라를 채굴했다. 반면 400만달러 예산이 투입된 <파이널 컷>이 같은 소재를 반복하는 것은 지난해 핼러윈에 유명인들이 <오징어 게임> 코스프레를 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인디와이어>)). <파이널 컷>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를 감안해도 이 영화엔 계속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일종의 영화학교라 할 수 있는 ENBU 세미나에서 젊은 영화인들이 협업한 결과물이며, 단점마저 품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오스카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수상한 감독이 굳이 이 작품을 반복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미 검증받은 스타일을 따라 하는 것과 클래식에 존경을 표하는 것, 미셸 하자나비시우스의 영화는 이 사이에서 모호한 위치를 점하곤 했다. <파이널 컷>은 오랜 시간 사랑받은 고전이 아닌, 4년 전 영화에 인생을 건 바보 같은 청춘들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성공했던 작품을 가져오면서 이 경계를 무너뜨렸다.

<파이널 컷>은 칸영화제에서 상영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개막 직전 원래 영화의 원제였던 ‘Z’가 러시아 침공을 옹호하는 심벌로 쓰인다는 우크라이나 연구소의 지적으로 <파이널 컷>측은 공식 타이틀을 ‘Coupez!’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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