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마녀 Part2. The Other One' 박은빈/진구 "새로운 서사의 끌림"
2022-06-15
글 : 이자연
사진 : 오계옥

소녀(신시아)를 둘러싼 경희(박은빈)와 용두(진구)의 온도는 다르다. 모두가 소녀를 괴물로 몰아세우며 득달같이 달려들 때 경희만이 홀연히 손을 내민다. “경희는 소녀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제동장치다. 그리고 그 제어 방식은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것이다.” 박은빈의 말은 <마녀2>가 그리는 보살핌의 의미를 보여준다. 결국 초월적 존재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애정이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경희가 쉬이 휩쓸리지 않고 강인함과 다정함 모두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반면 용두의 온도는 차갑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켜내기에 급급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재빨리 이득을 계산한다. 하지만 용두가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용두에겐 모순이 있다. 악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작 경희 남매를 해치지 않고 사람들을 협박하면서도 겁이 많다. 그 여백이 인간적이다.” 용두의 심연 속에서 배우 진구는 자기만의 역동적인 면모를 발굴해냈다. <마녀2>에 담긴 미스터리는 자기만의 서사를 구축한 인물들의 촘촘한 연결 고리를 통해 작동되고 있다.

진구, 박은빈(왼쪽부터).

- 두 배우 모두 시리즈 영화는 처음이다. 흥행작 <마녀>의 후속편이라는 데 부담은 없었는지.

박은빈 인물이 그대로인데 캐릭터만 바뀌거나 캐릭터는 그대로인데 인물이 바뀌었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마녀2>는 세계관을 더 확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로서 우리만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진구 나 또한 전작에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후속작에 출연하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게 없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용두는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 상대적으로 편하게 임하려 했다.

- 소녀와의 관계에서 경희와 용두는 정반대로 그려진다. 용두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소녀를 잡아 넘기려 한다면, 경희는 구원하고 배려한다.

박은빈 경희는 누군가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찾아내는 인물이다. 소녀에게 갖는 감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측은지심이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를 잔혹하게 살인한 듯한 소녀의 모습을 봐도 저대로 두고 갈 수 없다는 걱정이 앞선다. 경희와 소녀의 관계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진구 용두는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다. 멀리서 보면 비겁하기 그지없다. 극악무도한 의도를 갖고 소녀를 해치려 한다기보다 코앞에 닥친 일만 생각하기 때문에 미련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당장 살아남는 게 가장 큰 목표인 용두의 관점에서 갑작스러운 소녀의 등장이 어떻게 보이는지, 관객이 용두의 시선을 따라가면 좋겠다.

- 경희와 용두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이고, 어떤 계기로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전사가 정확히 나오진 않는다. 이러한 여백은 어떻게 채워갔나.

박은빈 용두는 경희가 어릴 적 굉장히 잘 따르던 삼촌이고 오빠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보스인 경희 아버지 밑에서 행동대장으로 지내면서 집안과도 각별한 연이 있었을 것이다. 긴밀한 관계에서 배신은 충격이 크지 않나. 그래서 용두를 더 미워하나 총을 들어도 쉽게 죽이진 못한다.

진구 용두는 건설업을 하는 사람이다. 경희의 땅을 팔아서 큰돈을 벌려고 한다. 사실 조직 폭력배의 보스 정도면 부모 없는 남매를 조용히 죽이고 땅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애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경희는 극중 가장 따뜻한 성정을 지닌 캐릭터다. 혼자가 된 소녀를 외면하지 않고, 집에 데려와 방까지 내어준다. 다양한 집단이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경희의 온정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나.

박은빈 박훈정 감독님은 저울 위에 인간의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을 올려두고 여러 캐릭터를 통해 균형을 잡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경희는 어떤 문제가 생겨도 선함을 지켜낸다. 마음이 한번도 오염된 적 없는 인물처럼 보였다. 소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지만 경희는 애정을 갖고 그의 폭주를 막는다. 때문에 경희는 <마녀2>에 꼭 필요한 인물이다. 어떤 장면에선 그 온정이 조금 지나쳐 보일 수 있지만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성정이야말로 경희가 가진 특별함을 보여준다.

- 진구 배우는 <달콤한 인생>과 <비열한 거리> <마더>에서도 건달 역할을 맡았다. 용두도 잔인한 조폭이지만 전작에 비해 조금 더 능구렁이 같은 면모가 보인다.

진구 용두의 겉모습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반대로 연기해보고 싶었다. 센 대사는 오히려 부드럽게 하고 겁먹어서 뱉은 대사는 더 세게 말했다. 경희는 온순하고 다정다감한 캐릭터고 소녀도 신비로움과 막강함이 뒤섞인 오묘한 인물인데, 그 사이에서 용두가 여느 깡패처럼 굴면 뻔한 인물로 보일 것만 같았다.

- 그런데 경희도 용두 못지않게 거칠다. 욕도 잘하고, 욱하는 성질도 있다. 지금까지 드라마 <청춘시대> <스토브리그>에서 밝고 명랑한 인물을 연기했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에서는 차분하게 자기 고민을 꿰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경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역할들이었다.

박은빈 드라마에서 욕을 하면 보통 묵음으로 처리되는데 영화에선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더라. 나는 괜찮지만 듣는 사람들이 나의 외모나 그동안의 이미지 때문에 어색하다고 느낄까 걱정됐다. 감독님께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더니 “경희는 미국이 아니라 목포에서 온 것 같다”고 하시더라. (웃음)

- 진구 배우는 ‘원더월’에서 진행한 연기 클래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초창기에는 먼저 건조하게 읽다가 그다음엔 발성을 연습하고 마지막엔 액션까지 얹어나가는 방식으로 극본을 읽었지만, 이제는 촬영 전까지 건조하게 읽기만 한다고.

진구 현장에서 상대 배우와 맞춰보기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 임의로 설정해버리면 모든 걸 지우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두가 합의한 캐릭터를 완성하는 게 중요하다. 또 같이 일하는 동료의 감정을 배려하며 작업하는 게 내 성격에도 맞다. 과정도 원활해지고. 유연성은 내 장점이자 강점이다.

- 용두의 스타일이 인상 깊다. 자신의 잔인함을 고급스러운 코트 안에 감추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진구 용두를 두고 가장 크게 고민한 건 외모였다. 감독님이 시리즈물 <나르코스: 멕시코>의 미겔(디에고 루나)을 레퍼런스로 말씀하셔서 찾아보니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는 옷과 턱까지 연결된 진한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것을 종합해서 외양을 상상하니 대사를 너무 무겁게만 하면 안되겠더라. 직설적인 욕설이나 협박보다는 뼈가 담긴 칭찬이 더 무섭게 보일 것 같았다.

- 박은빈 배우는 <청춘시대>와 <스토브리그>를 기점으로 가녀린 역할에서 벗어나 한계 없는 스펙트럼을 보여줬고, 진구 배우는 <태양의 후예>와 <리갈 하이>를 통해 우직한 역할부터 코믹한 역할까지 다양하게 소화했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두 배우가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주연 캐릭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박은빈 새로운 서사를 가진 인물을 만나면 운명처럼 이끌리는 작품이 있다. <마녀2>가 그랬다. 한번은 감독님께 왜 내게 경희 역을 제안했는지 여쭤봤다. 소녀 앞에선 다정하지만 용두에게는 과감하게 총을 겨누는 상반된 모습이 가장 중요한데, 내가 그 차이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감독님의 설명을 듣는 동안 강해 보이면서도 소녀 가장의 불안함을 갖고 있는 경희의 면면을 내가 어떻게 채워나갈지 나도 궁금해졌다. 결국 감독님의 섬세한 설득과 유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웃음)

진구 나도 감독님의 꾐에 넘어갔다. (웃음) 감독님과의 작업이 워낙 재미있기도 하고 아름다운 제주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기대됐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대부분이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더 거친 남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누구보다 약한 남자가 되는 색다른 기회를 얻었다. 배우로서 값진 경험이다.

- 세계관이 확장된 만큼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

진구 전반적으로 무척 화기애애했다. 특히 용두 패거리를 맡은 조연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허심탄회하게 속마음까지 얘기하고 빠르게 친해졌다. 그 무리가 총 5명이라 독수리 오형제라 불렀다. 이번 촬영의 예상치 못한 인연이고 기쁨이다.

- <마녀2>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어떤 점을 주의 깊게 보면 좋을까.

진구 아무래도 N차 관람이지. (웃음) 다양한 캐릭터를 반복해서 감상하면 새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세계관이 확장된 만큼 대화 속에서 퍼즐 맞추듯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대사에 집중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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