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6개의 키워드로 알아보는 '범죄도시2'의 흥행 비결
2022-06-23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팬데믹 이후 첫 천만 영화는 어떻게 탄생했나

한국 극장산업의 구원투수는 마블보다 마블리였다.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2>가 6월15일 기준 관객수 1082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돌파하며 지난 2년간 영화계에 팽배했던 극장 위기론에 반기를 들었다. 이는 마동석의 힘인가, 혹은 매력적인 캐릭터 빌드업에 성공한 시리즈물의 저력인가. 소비 시장 전반이 엔데믹 초읽기에 접어들면서 작용한 보복 소비의 수혜라는 해석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천만 관객의 고지는 어떻게 달성될 수 있었나. 여기엔 개봉 시기부터 관객의 태도 변화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다.

5월에 천만 영화가 나왔다

2020년 5월 극장 총관객수 153만명. 2021년 5월은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개봉했음에도 총관객수 482만명에 그친 점을 생각하면 <범죄도시2>가 2022년 5월 개봉을 고집한 건 다소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으로 범주를 넓히면 5월은 <어벤져스: 엔드게임>(4월24일 개봉)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4월25일 개봉) 등 마블 영화와 <알라딘>(5월23일 개봉), <곡성>(5월12일 개봉), <독전>(5월22일 개봉) 등 다양한 유형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시즌이었다. 또한 여름 성수기로 넘어가는 길목으로서 5~6월은 관객수 상승 추이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다. 2019년 5월에는 총 1806만명이, 6월에는 2284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개봉일을 제안했던 투자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의 석지우 대표는 “5월은 극성수기를 제외하고 천만 영화가 나오는 유일한 시장이다. 작품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여름방학 시장보다 경쟁이 적은 5월 시장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범죄도시2>의 홍보마케팅을 맡은 이채현 호호호비치 대표 역시 “<어벤져스> 시리즈가 4월 말에 개봉했던 것은 5월이 극성수기에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좋은 시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배경을 전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위축된 영화계에서 5월은 누구도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 자리였고, <범죄도시2>는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신작 개봉 지원금까지 홀로 받으며 장기간 1위를 지켰다. 5월25일 전세계 동시 개봉을 예정했던 <탑건: 매버릭>이 톰 크루즈의 내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6월22일로 한국 개봉 일정을 연기한 것도 <범죄도시2>가 누린 천운이었다.

한국 유일의 슈퍼히어로 마동석, 요즘 잘나가는 손석구

“명확한 선악 구도, 강력한 액션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익명의 투자배급사 관계자) “청소년관람불가였던 전편에 비해 폭력, 성적 수위가 낮아졌다. 보다 많은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익명의 영화 제작자) 다수의 관계자들은 <범죄도시2>의 강점으로 단순하지만 개성 있는 플롯,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액션과 코미디의 힘을 꼽았다. 작품의 힘에 배우의 매력이 더해지면 이는 1+1 이상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확장된 타깃층에게 입소문에 필수적인 화제성까지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단연 “마동석과 손석구의 상승 작용”(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 덕분이었다.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슈퍼히어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마동석”(익명의 투자배급사 관계자)은 한국에서 마블 영화 스타들에 버금가는 호감도와 팬덤을 구축한 스타다. 여기에 <범죄도시2> 개봉 즈음 손석구가 출연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방송 후반에 접어들면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채현 대표는 “마동석은 명실상부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배우였고, 손석구 배우가 <범죄도시2>의 인지 선호도를 더 올려주면서 증폭제가 됐다”며 드라마와 영화, 배우의 시너지 효과가 홍보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실제로 드라마 <카지노> 해외 촬영 후 6월1일 입국한 손석구가 무대인사에 합류했을 때 관련 사진과 동영상이 엄청난 화제를 모으면서 <범죄도시2>의 개봉 3주차 이후 뒷심에 힘을 보탰다. 석지우 대표는 <범죄도시>시리즈에서 마동석의 대척점에 있는 빌런 역을 맡는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로 “악역을 잘해낼 수 있을 만한 연기력과 <범죄도시> 시리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언급했다. “실제로 손석구 배우는 <범죄도시>의 빅팬이었고, 매우 열정적인 자세로 촬영에 임했다. 배우가 하고 싶어서 덤벼들 때 그 배우의 포텐셜이 터진다고 생각한다.”

전편의 강점을 잘 아는, 원년 멤버 그대로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가 더 필요하다. 확장된 스케일과 스토리, 매력 있는 빌런, 더욱 다채롭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의 배치, 전편과는 다른 액션 디자인에 주안점을 뒀다.”(석지우 대표) <범죄도시>는 마동석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윤석호 형사에게서 실제 사건 이야기를 접한 후 기획한 영화다. 2017년 추석 시즌에 큰 성공을 거둔 뒤 바로 속편 기획에 들어갔고, <범죄도시2> 촬영이 끝날 때쯤 완성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바로 3, 4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시리즈 기획이 이어졌기 때문에 제작진과 실무자도 바뀌지 않았고, 전편과의 연결성을 세밀하게 세팅하는 일이 가능했다. 사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메인 투자배급사였던 키위미디어그룹(현 아센디오)이 다른 부문의 실적 부진으로 회생 절차를 밟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영화사업본부에 공백이 생기는 위기에 봉착한 적이 있다. 키위미디어그룹이 갖고 있던 <범죄도시> 시리즈에 대한 권리가 소멸되고 기존 영화사업본부 멤버들이 신생 투자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를 차리면서 이곳이 <범죄도시2>의 메인 투자배급사가 됐다. 이후 시리즈에 대해서 석지우 대표는 “5편 이후로는 기획개발 단계라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긴 어렵다. 마동석 배우가 시리즈의 마지막 즈음에 빌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은 있지만 배우들과 협의된 바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규모는 가성비 있게

총제작비 130억원이 투입된 <범죄도시2>의 손익분기점은 150만명이다. 해외 세일즈와 부가판권 실적, 한국영화 신작 개봉 지원금을 반영한 수치다. 지금까지 제작사·투자배급사 예상 순수익은 466억원, 코로나19 첫 번째 천만 영화의 타이틀뿐만 아니라 ‘가성비’ 좋은 상업영화로도 의의를 가질 전망이다. 전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스케일을 무리해서 키우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석지우 대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되 <범죄도시> 시리즈가 지닌 색깔을 잃지 않고, 필요한 제작비는 반영하지만 손익분기점은 최대한 낮추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고 말한다. 전편(총제작비 70억원)에 비하면 거의 두배의 예산이 들어갔지만 한국영화계 평균 제작비 상승을 감안하면 영화의 인지도에 비해 몸집이 매우 가볍다. 그럼에도 “순제작비 100억원이 넘는 영화가 코로나19 시기에 등판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결정” (장원석 대표)이었다. “뻔히 안될 걸 아는데 누가 시장을 테스트하겠다며 등판하겠나. 누군가가 그 벽을 깨줄 필요가 있었다. 지난해 말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7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을 보고 일종의 신호를 읽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없었다면 우리도 용기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작이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웠겠지만 손익분기점 150만 명을 목표로 한번 치고 나가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엔데믹의 시작과 보복 소비

5월18일은 전세계적인 코로나19 확진자 추이를 분석하며 확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우리보다 코로나19 확산 추이가 빠른 나라들이 언제 감소세로 바뀌었는지 데이터를 보고 시뮬레이션한 결과, 한국은 4월이면 감소세, 5월이면 안정세에 접어들 거라 판단했다. 4월도 고려했지만 감소세에 접어든다고 해서 관객이 바로 극장을 찾을 것 같진 않았고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지는 한달 뒤를 디데이로 잡았다.” (석지우 대표) 구체적으로는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는 시그널의 인터뷰를 보고 확신”하면서 대선 이후로 일정이 결정됐다. 지난 2년 동안 극장의 폐쇄성은 개방된 식당, 카페, 놀이공원에 비해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켰지만, 실제로 극장에서 집단 감염이 벌어진 사례가 없다는 점은 엔데믹 이후 폭발적인 소비를 이끌었다. <영화 배급과 흥행>을 쓴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코로나19 보복 소비가 나타난 시점에 영화가 들어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물론 <범죄도시2>는 엔데믹과 보복 소비를 감안했어도 이를 훨씬 웃도는 스코어였다.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5월 극장가는 엔데믹 이후 첫 시장이었다. 이를 감안해 월 관객수 1천만명만 넘어도 좋겠다고 예상했는데 1455만명을 기록했다”며 <범죄도시2>가 당초 기대치를 50% 가까이 뛰어넘는 스코어를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집단의 엔터테이닝 경험에 최적화된 장르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범죄도시2>의 성공 요인을 두고 가장 중요한 건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려서 관객이 원하는 바를 보여준” 데 있다고 했다. “영화에 없는 것을 홍보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가령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를 체험하게 해준다고 홍보했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 관객이 실망한다. <범죄도시2>는 관객이 기대했던 대체 불가의 캐릭터, 권선징악 구도에서 오는 통쾌함을 정확히 보여줬다.” 익명의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소규모 그룹의 집단 경험”을 충족한 점을 짚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관객이 극장에 가는 이유는 예전보다 좀더 분명해졌다.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간다는 개념이 훨씬 강해졌고 선택의 기준도 그쪽으로 쏠린다. 세상을 사유하고 의미를 찾는 영화보다는 <범죄도시2>처럼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가 관객의 선택을 받는다. <브로커>의 결과와 비교하면 더 선명해진다.” 티켓값 인상도 <범죄도시2>에 관객이 집중되는 요인 중 하나다. 원동연 대표는 “티켓값이 1만원이던 시절에는 마케팅 설문을 했을 때 관람 우선 순위 3등까지는 괜찮다고 봤다. 그런데 티켓값이 1만5천원까지 오르면서는 관람 우선 순위 결과가 최소 2등에는 올라야 한다”고 변화를 짚었다.

<범죄도시2>

과연 극장 위기론은 불식됐을까?

6월22일 <탑건: 매버릭>, 6월29일 <헤어질 결심>, 7월6일 <토르: 러브 앤 썬더>, 7월13일 <엘비스>, 7월20일 <외계+인> <미니언즈2>가 개봉을 확정했다.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 <헌트>도 여름 성수기에 개봉한다. 극장가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개봉을 차일피일 미루던 예년과 달리 대작들이 연이어 홍보마케팅에 들어갔다. 조성진 전략지원담당은 “대작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는 조금 우려스럽지만, 전반적으로 회복세라고 보고 있다. 여름 시장에는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영화가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일단 8월 말까지는 지금 분위기를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범죄도시2>는 이례적인 경우이며, 오히려 여름 영화 중 천만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이하영 대표는 “지금은 보복 소비 심리가 반영돼 오버부킹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과열된 시장이 여름 시장에 천천히 연착륙하면서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상실적인 사이클이 작동하는 안정된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전까지는 아직 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범죄도시2>만을 놓고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익명의 영화 제작자 역시 <한산: 용의 출현> <외계+인> <비상선언> <헌트>가 경쟁하게 된 그림이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지난 10년간 스코어를 보면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관객이 3천만명 내외로 드는데 이때 너무 많은 대작들이 개봉했었다. 다만 티켓값 인상으로 객단가가 5천원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은 낮아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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