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범죄의 재구성'과 '외계+인'을 잇는 최동훈 감독론
2022-07-28
글 : 김소미
최동훈이 장르를 변주하는 방식

외계 행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죄수를 인간에게 주입하면 둘은 한몸으로 살아간다. 이때 외계인은 기억을 잃은 채 뇌 속에 잠들게 되고, 인간은 자기 몸속의 이물질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다시 남은 생을 영위한다. 보디 스내처 영화의 원조 격인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 그리고 <인베이젼>(2007)을 떠올리게 하는 SF적 설정은 <외계+인>의 2022년 현재 파트를 수렴하는 구심력이다. 인간의 몸을 뚫고 촉수를 뻗친 다음 도심 한복판에 핏빛 공기를 터뜨리는 약간은 호러적이기까지 한 존재가 최동훈 영화에 착지한 것이다.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한국영화의 야심찬 성취 혹은 지평의 확대라는 산업적 의미는 이 글에서 잠시 차치하기로 한다. <외계+인>에 구현된 공상과학적 상상력이 SF 장르의 계보 아래에서 얼마나 독창적인가 하는 문제 역시 취향과 인상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우선 배제하기로 한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최동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음 만나는 시도가 그의 가장 익숙한 스타일과 교차할 때 생기는 이질감과 당혹감, 혹은 흥미로움에 대해서이다. 교차라는 말이 무색한 시간 차(630년)를 두고 펼쳐지는 또 하나의 세계, 고려에는 ‘도둑들’이 산다. 현상금이 두둑히 걸린 신검을 손에 넣기 위해 부채 도사, 신선 도사, 가면 도사, 그리고 정체 모를 총잡이가 사방에서 달려드는 고려 파트는 여러모로 최동훈 감독의 전작과 비교하게 만드는 기시감을 낳는다. 이처럼 고려와 외계, 도술과 초능력, 1부와 2부가 대담하게 이형접합한 결과가 <외계+인>이다. 13개월의 촬영 기간, 도합 700억원대의 제작비가 소요된 초거대 프로젝트 <외계+인>은 최동훈 감독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인 스케일을 보여준다. 이것만큼은 1부를 보는 내내 명확한 지표로 스크린 위에 번쩍이는, 거부할 수 없는 진술이다.

스펙터클은 더하고, 뉘앙스는 줄이고

아직 보지 못한 2부를 가늠하며 거대한 윤곽선을 더듬어보는 동안 최동훈 감독 영화에 따르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상기해본다. 그래서 재미있었나? 응답하기 위해선 그동안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주는 재미의 출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험금이, <전우치>에서 청동검이, <도둑들>에서 태양의 눈물이 맥거핀이었듯 돌이켜보면 그의 필모그래피를 아울렀던 장르적 신화 또한 일종의 맥거핀이라 볼 수 있다. 2004년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을 발표한 이래 그가 일찌감치 장르의 귀재로 떠오른 것은 한국영화에서 ‘장르’라는 단어가 아직은 진귀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이다. 그는 스스로 장르의 개척자보다는 훌륭한 계승자이기를 자처했는데, 이때 주로 나온 이름이 할리우드 고전기 장르영화의 전설적 이름 하워드 호크스다. 최동훈 감독이 하워드 호크스로부터 추출해낸 요소는 명확하다. 갱스터 <스카페이스>, 서부극 <붉은 강>, 로맨틱 코미디 <베이비 길들이기>를 넘나드는 장르적 스펙트럼에의 매혹. 그리고 사건의 긴장을 잠시 희석시키는 재치 있는 대사와 인간관계들. 최동훈 감독은 카리스마와 너스레를 오가는 배우의 연기, 그리고 대사를 날렵하게 직조함으로써 이 미덕을 자기 스타일로 수용했다. 그가 그려낸 하드보일드의 무대는 농가의 비닐하우스에 깔린 포커판(<타짜>)이었고, 주인공 사기꾼은 자신을 고려대 출신에 부친과 함께 압구정동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원장(<범죄의 재구성>)으로 포장했다. 요컨대 관객이 열광한 것은 탄탄한 장르적 원형이 아니라 그 위에 얹힌 대담하고 선명한 디테일이었던 셈이다. 곧잘 유행어로도 회자된 관용적 표현의 대사들, 한국 사회를 통렬히 풍자하는 자잘한 설정들은 그렇다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자신이 택한 인물과 무대를 정확하게 취재한 다음 장르의 무드로 변형했을 뿐, 영화적 감각과 상상력에만 의지한 작가가 아니었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 연출부로 활동하며 수백명의 가출 청소년들을 인터뷰했고, 데뷔작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싸이더스)와 전국의 사기꾼들을 접선한 일화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장르라는 환상과 두터운 핍진성의 결합을 통해 최동훈 감독 이 영화에서 불러낸 것은 약속된 전개 바깥의 감정들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미묘한 뉘앙스였다. <도둑들>이야말로 이러한 스타일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퍼 무비의 도식 위에 캐릭터와 한국어가 빚는 대사의 묘미를 폭발시킨 다음 액션의 스케일까지 확장한 <도둑들>은 그의 영화를 <오션스> 시리즈와 구분할 명분을 제공해주었다.

한편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의 흐름 사이에서 제각기 돌출되어 있는 두 작품, <전우치>와 <암살>은 어떤가. <전우치>와 <암살>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상상의 지대로 나아갈수록 뾰족한 디테일과 뉘앙스를 잃기 쉬워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들이다. 고니와 마카오 박은 날렵한 대사를 날릴 뿐 염석진처럼 웅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이 두 영화에서 훔치고 빼앗고 죽이는 강탈의 모티브는 여전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작전의 치밀함은 덜 중요해졌고, 현실의 언어는 줄어든 대신 달려들어 싸우는 액션과 시각적 스펙터클의 크기는 커졌다. 하드보일드의 비정한 태도 속에서 미묘하게 절제되었던 사랑의 감정은 오히려 한층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아슬아슬함은 더이상 ‘쿨하지 않음’을 자처하면서 규모의 스펙터클쪽으로 자기 영토를 확장하는 감독의 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적어도 이 두편까지는 아직 완전히 가상의 무대로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전우치>는 민속설화의 해학성을 믿는 영화였고 <암살>은 대체 역사의 관점에서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다룬다. 영화 바깥에 있는 분명한 원본과 레퍼런스들이 역시나 장르 이상의 뉘앙스를 더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동훈 감독의 여섯 번째 영화 <외계+인>은 홀로 다른 길을 간다. <외계+인>에는 더이상 최동훈 감독이 자신의 감각대로 ‘가지고 놀’ 현실의 조각이 없다. 고려는 홍콩 무협 장르를, 현재는 할리우드 SF 장르를 옮겨온 세계다. 2022년 현실에서 묘사되는 주요 장소가 그 느낌을 대변하는데, <외계+인>의 오늘날은 학교와 병원, 도심처럼 집단적 개념으로만 뭉뚱그려지고 현재에 머무르는 주요 배우가 모두 이방인의 정체성을 수행하면서 피상적인 현실감각에 타당함마저 안긴다. 말하자면 <외계+인>에서 진정 당혹스러운 것은 2022년 한국과 14세기 고려라는 낯선 것들의 접합이 아니라, 둘간의 연결을 견인하는 디테일의 피상성이다. 세속의 민낯, 풍자와 페티시로 극대화한 캐릭터들을 뭉쳐 장르를 빚는 감독의 장기는 한국형 SF라는 거대한 스펙터클의 포부에 포섭된 모양새다.

그래서 어쩌면 <외계+인>은 최동훈 감독이 완벽히 새로운 분기점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객은 처음으로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시각적 체험을 제1의 미덕으로 두고 몰입해야 하는 요구에 처한다. 인간의 감정이 지니는 힘을 깨달은 외계 로봇이 읊조리는 말, “전투에서 이길 확률 2%… 4%…”는 대사의 유희가 이제 더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감독의 선언일지도 모른다. 내막이 어찌되었든 최동훈 감독이 내건 전에 없던 스펙터클의 목표는 한층 더 도달하기 어려운 성역처럼 보인다. 장르의 경계는 무너진 지 오래이고 현대영화에서 장르의 혼종은 피할 수 없는 경향이며 생존 방식이다. 이 가운데 혼성적 요소를 극대화해 풍요와 과잉 사이에서 확실한 재미로 맺히게 하는 일. 쾌감의 역치가 날로 높아지는 현대 관객에게 그의 새 과제는 조금 무모하게, 그래서 더욱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심화되는 이중의 정체성과 시간

<범죄의 재구성>의 주인공인 사기꾼 최창혁은 죽은 형의 정체성을 빌려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전우치>에서 인간 세상을 구원할 표운대덕은 순진한 여자의 몸에 잠들어 있다. <타짜>에서 죽은 줄 알았던 고니는 다른 이의 죽음을 빙자해 정 마담과 재회하고, <도둑들>에서 마카오 박은 변장을 사기의 기술로 활용한다. <암살>에서는 아예 쌍둥이 모티브가 등장한다. 똑같이 생긴 두 쌍둥이(안옥윤-미츠코)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액션 신을 가능케 하는 결정적 요소다. 시간을 재구성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떠받치는 중요한 구조는 이중의 정체성, 이중의 무대였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는 플래시백을 통해 시간의 겹을 만들고, <전우치>는 영생하는 도사들의 속성을 빌려 수백년을 관통했으며, <도둑들>은 해외 로케이션을, <암살>은 만주와 조선,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라는 질곡의 역사를 영위한다. 그 끝에 <외계+인>의 내러티브는 시작과 끝이 거의 맞닿아 있는 것 같은 부채꼴을 그린다. 유물 속에 잠든 조선 도사들을 현대로 끌고 온 <전우치> 역시 기본적으로는 순방향의 시간을 그리는 영화였음을 감안하면 최동훈 감독이 최초로 SF 장르를 택함으로써 진정 새롭게 시도하게 된 것은 시각적 스펙터클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시간성을 지닌 내러티브라고 해도 좋겠다. 그래서 <외계+인> 2부에서 기대되는 것은,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끈질기게 이중의 정체성과 시간을 꾸려온 최동훈 감독이 어떻게 노련한 변주를 창조해낼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현재에서 고려로 넘어가면서 끝맺음한 것이 1부라면 2부에선 그들이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과정이 보여질 것이다. 인물의 대사와 움직임, 정서가 1부의 컨셉들을 딛고 단단한 디테일을 쌓아갈 것인지, 그들의 다층적인 정체성이 비로소 매혹적인 미스터리로 다가올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에 있다.

사진제공 케이퍼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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