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7월20일) <외계+인>이 개봉했다. <암살> 이후 7년 만의 개봉이고, 5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다.
= 사실 이 순간을 기다리며 영화를 만드는 거니까 떨리고, 긴장되고, 극장 개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오랜만에 개봉을 준비하면서 홍보를 어떻게 하는지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음)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쇼케이스를 통한 온라인 마케팅이 활발한 것 같다. 굉장히 빠르게 콘텐츠에 반응하는 젊은 친구들이 신기하다. 개봉 전부터 영화에 나오는 도술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분석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관객은 이를 ‘세계관’이라고 표현하며 관심을 보였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예전보다 다양해진 것 같다.
- 최동훈 감독이 처음 <외계+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려줬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2017년 <도청>을 준비하다가 작업이 중단됐을 때였다. 원작 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기존에 갖고 있던 경험으로 쓸 수 있는 스토리는 <암살>을 끝으로 다 소진한 것 같았다. <도둑들2>나 <전우치2>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역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아예 상상력을 크게 발휘한 이야기를 펼쳐본 거다. 최동훈 감독은 <전우치>에서 다뤘던 도술과 도사의 세계를 언젠가 다시 다루고 싶어 했다. 당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원하는 만큼 이뤄내지 못한 지점도 있었는데, 그동안 한국의 CG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그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새로운 요소를 결합해보자고 얘기했다.
- <전우치>가 보여준 도술의 세계를 확장한 고려 시대와 외계인 죄수가 등장하는 현대 배경이 교차한다. 이러한 구성이 가진 의미는 1부 마지막에야 밝혀진다. 어쩌면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플롯인데 이 아이디어를 밀고 나간 이유가 뭔가.
= 외계인이 지구, 특히 한국에 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막 도착한 것일까 아니면 옛날부터 존재했을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다 외계인들이 그들의 죄수를 인간의 몸속에 가두어놓았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러 오는 이야기는 예전 할리우드영화에도 많다. 할리우드와 차별화되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구상해야 했다. 그래서 마치 조선 시대에 제주도를 유배지로 활용했던 것처럼 외계인이 지구를 유배지로 삼는 설정을 짠 거다. 그리고 외계인이 과거에 존재했다면 ‘요괴’라고 불렸을 것이다. 현대의 외계인과 과거의 요괴를 연결하기 위해 외계인 죄수를 관리하는 가드(김우빈)가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고 설정했다. 영화 초반 가드와 그의 파트너 썬더가 과거에서 만난 어린 아기를 600년 후 현재로 데려오고, 이후 외계인의 모습은 어린 이안(최유리)의 눈으로 관객에게 소개된다. 만약 어른의 시선이었다면 낯선 외계인을 저지하고 싸워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텐데, 어린아이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타임라인의 관계를 처음부터 보여주면 뒷부분을 예측하기가 너무 쉬워진다. 최동훈 감독에게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끝까지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예측 불허의 전개다. 감독 스스로도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지만 새로운 구조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반부에 과거와 현대의 관계가 드러나는 구성을 취했다.
- 전체적으로 고려 시대와 동시대 한국, SF와 고전 판타지 등 이질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이들이 잘 어우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고민은 없었나.
= 사실 <외계+인>을 이루는 요소들이 이질적이라거나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트릭스> 시리즈에는 동양 사상과 무술이,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동양 도술이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동서양의 문화를 엮은 작품들이 활발하게 제작됐다. 그러니 우리도 한국의 전통과 서양 SF의 세계관을 합쳐 스토리를 확장시키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리우드영화에서 묘사되는 도술을 한국인인 우리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도사는 한국의 ‘엑스맨’이다. 서양의 다크한 슈퍼히어로보다 훨씬 해학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지만 정작 영상으로 접한 적은 별로 없다. 비용도 많이 들고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마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왔기 때문에 슈퍼히어로들이 쫄쫄이를 입고 다니는 세계관을 다들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웃음) 한국영화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 고전 판타지가 시각적으로 익숙해진다면 더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외계+인> 제작에 도전하고 꼭 완성해내고 싶었다. 한국의 스토리 및 콘텐츠 산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기술과 자본에는 한계가 있다. 할리우드와 똑같이 만들 수는 없겠지만 관객에게 보다 재밌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동안 최동훈 감독이 보여줬던 캐릭터 앙상블이나 코미디를 함께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 무륵(류준열)과 이안(김태리)을 비롯한 도사들이 활약하는 무대를 630년 전 고려로 확정한 이유가 있나.
= 남아 있는 자료가 방대한 조선에 비해 고려는 의외로 우리가 잘 모르는 시대다. 도사에 더해 외계인, 즉 요괴가 적극적으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미지의 세계인 고려가 더 재밌을 거라 생각했다. 복식이 화려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룩을 선보이기에도 적합했다. 고려 말은 상대적으로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편이라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에 많이 참고했다.
- 고려 시대에도 동시대 한국에도 잘 어우러져야 한다는 점도 디자인 선택 기준 중 하나였겠다.
= 그래서 촉수를 많이 활용했다. 고려 시대에는 촉수가 튀어나와 휘감은 이미지가 의상과도 잘 어울렸다. 현대에서 건물을 파괴하는 타격감을 보여줘야 할 때는 레이저 빔을 사용했다. 처음 디자인이 잘 완성되어야 CG가 완성된 후에도 그럴싸해진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크리처를 디자인했던 장희철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외계인이 인간 몸속에 갇혀 있다는 설정을 감안할 때 인간과 비슷한 외형으로 묘사하는 게 더 어울렸고, 지금의 디자인이 나왔다.
- 프리프로덕션까지 합치면 2년 넘게 소요된 프로젝트다. 스탭을 꾸릴 때 특히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 프리프로덕션을 1년, 촬영을 1년 정도 해야 한다는 건 스탭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촬영감독은 경험도 중요하지만 CG 등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팀간 커뮤니케이션을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프리프로덕션이 요구된다. 김태경 촬영감독은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고 연구도 성실하게 하는 분이다. 마침 스케줄이 맞아서 함께하게 됐다. 세계관은 디자인 작업과 함께 가야 한다. <암살>을 함께했던 류성희 미술감독이 많은 자료를 찾고, 컨셉을 잡고, 이를 각각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아 의뢰하고, 세트 제작 방식을 고민하며 작업했는데 이건 한명의 미술감독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두명의 미술감독이 필요했다. <도둑들>을 함께했던 이하준 미술감독이 마침 시간이 돼 합류하게 됐다. 그렇게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노하우를 펼쳐보자며 <외계+인> 현장에서 의기투합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인간의 체력과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촬영을 마칠 수 있었을까, 몰랐으니까 도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웃음)
- 배우 캐스팅이 젊어졌다.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의 조합이 신선하다.
= <타짜> 때 조승우씨, <전우치> 때 강동원씨가 당시 20대 후반이었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관객층이 생기고 배우가 성장하던 때였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보여줬던 젊은 배우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외계+인>은 주인공들이 호기심을 안고 신기한 사건을 겪으면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어쩌면 능력이 모자랄 수도 있는 젊은 캐릭터들과 그들이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스토리가 함께 갔으면 했다.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고 있는 가드는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느낌을 줘야 한다. 그 역시 아빠라 불리기엔 다소 젊어 보이는 배우가 어울렸다.
- 2017년 <외계+인>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한국 CG 기술력으로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은 어떻게 가졌나. 당시 <신과 함께-죄와 벌>이 개봉했다.
= <신과 함께> 시리즈를 통해 CG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후 OTT 플랫폼에서도 SF 판타지 장르가 활발하게 제작됐다. 2017년 당시에는 구현할 수 있는 부분과 어려운 부분이 함께 있었다. 블루매트 합성은 많은 노하우가 쌓였지만 3D 캐릭터가 인간 배우와 함께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가드가 슈트를 입은 신은 원래 스튜디오에서 블루매트를 놓고 촬영한 후 합성하는 방식이 훨씬 편한데, 아직 한국 스탭의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그림이 튀지 않게 붙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실제 로케이션 현장에 세트를 지었다. 그리고 김우빈씨가 타이츠를 입고 그 위에 하얀색 패드를 대고 전선을 꽂고 연기를 했다. 그렇게 최대한 근사치에 가까운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작업을 했다. 1부 마지막 밀본 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실제로 세트를 부수고 불을 내며 촬영했다. 거기에 3D 캐릭터로 외계인을 합성했다. 외계 행성이 등장하는 마블 영화와 달리 CG로 구현한 공간에서 한국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은 아직 관객에게 낯설다. CG로 해야 하는 것은 CG로, 비록 힘들지만 리얼로 찍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날로그로 찍으려고 노력했다.
- 할리우드만큼 많은 비용을 투입할 수는 없지만 한국 자체 기술력으로 완성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
= <구미호>로 영화를 처음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CG가 활용된 작품이었다. 미국에서 컴퓨터를 공수해서 사용법을 번역하고 카이스트 연구원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가며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모여서 특수효과와 특수분장, CG를 공부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한국 영화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경험치가 부족했던 한국이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면서 할리우드를 제외하고 가장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 회사에 의뢰하지 않고 우리가 20여년에 걸쳐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오리지널 스토리인 <외계+인>을 완성해보자는 데 기술 스탭들이 열광했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다들 기다렸다.
- 13개월에 걸쳐 1부와 2부를 함께 촬영했다. 투자나 예산 운용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
=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고 캐릭터를 소개하고 사건이 전개된 후 엔딩까지 맞이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한편 안에 소화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1부와 2부로 나누었다. 당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1년 간격으로 개봉했고,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역시 한번에 촬영한 후 두개의 파트로 나누어 공개된다. 이렇게 프로덕션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지은 세트를 몇년이고 계속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세트가 남아 있는 동안 전부 찍어야 한다. 이야기가 연속성을 갖고 이어지기 때문에 제작진과 배우들이 연결성을 유지하기도 수월하다. 투자사 역시 해볼 만한 시도라고 판단했다. 다만 사전에 CG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제작비가 많이 늘어나기는 했다. 인건비도, 전반적인 건축 자재비도 모두 상승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세트를 짓는 데 필요한 건축 자재를 저렴하게 수입할 수 없었고, 비싼 한국 자재를 수급할 수밖에 없는 일도 벌어졌다.
- 1부는 순제작비 330억원, 2부 역시 그에 상응하는 제작비가 예상된다. 가령 국내는 극장 개봉을 하고 해외는 OTT 플랫폼과 계약을 맺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제작비를 충당하는 전략을 고려할 수도 있는데, 극장을 선택했다.
= OTT는 전세계 관객에게 동시에 공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입자가 아니면 볼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열려 있지만 또 닫혀 있는 플랫폼이다. 한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한국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넷플릭스의 경우 IP 소유권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다. 극장 개봉을 전제할 경우 OTT 플랫폼이 제시하는 가격으로 밸런스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고민도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극장 개봉을 위해 시작한 작품이기 때문에 극장영화로 완성하고 싶었다. <외계+인>이라는 도전은 극장 상영에 완성도가 맞춰져 있었고, 때문에 퀄리티를 이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미국에선 8월 극장 개봉을 준비 중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일, 이탈리아 등 아시아 및 유럽 지역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한국은 물론 해외도 극장 개봉이 가능한 상황이 된 만큼 반드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