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을 극장에서 보고 각본집을 산 독자라면, 각본집 표지에 실린 ‘산해경’ 속 문장부터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동쪽으로 이백오십 리를 가면 기름산이 있는데… 이 산의 봉우리는 깊이 감추어져,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기름산에 산다는 구더기가 떨어져 죽으면 터진 머리에서 황금색 파리 떼가 날아오른다니, 기름 바른 듯 미끄럽다는 비금봉에서 떨어져 죽은 기도수와 그 눈의 시점에서 잡은 묘한 화면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각본집 표지를 넘기면, 서래의 집 벽지였던 붉고 푸른 산이 인쇄된 검푸른 종이가 나온다. 영화 속 화려한 벽지와 정갈한 부엌 소품이 놓인 장면이 다시 환기된다.
독자로서 각본집을 읽으며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 기억을 떠올리는 체험은 풍요롭다. 경찰서에서 서래가 해준을 향해 미소를 보낸 순간, 각본집에는 ‘해준, 잠시 눈이 부시다’라고 쓰여 있다. 이어 둘이 스시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착착 정리하는 장면은, ‘둘은 손발이 잘 맞는다’라고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두 배우가 그 장면을 얼마나 훌륭히 연기해냈는지, 나중에 수완이 ‘저 여자, 초밥 왜 사준 거예요?’라고 따지던 장면까지 함께 떠오르며 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또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서래가 칫솔과 치약을 건넨 해준의 호의를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대목을 읽을 때도, 그 모습이 화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각본집과 영화 속 실제 연기가 다른 대목도 있다. 각본집에는 “황망하신 중에 죄송합니다만 혹시 패턴 아십니까?”라고 휴대폰의 잠금 패턴을 알고 싶다는 뜻이 확실하게 표현된 문장이, 영화 속에서는 “패턴을… 알고 싶은데요?”라고, 휴대폰의 패턴을 알고 싶다는 것인지 살인의 패턴을 알고 싶다는 것인지 혹은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대사로 탄생했다. 서래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이 서래를 만나게 된 과정 등 개봉된 영화에서 편집된 몇몇 내용도 각본집에 담겨 있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영화만큼이나 빈틈없고 매끈한 각본집을 읽는 재미를 여러 관객이 누리기를.
168쪽“난 해준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