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형사록' 진구, “진짜 형사가 되다”
2022-11-09
글 : 이자연

진범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어디로 튈지 몰라 극적인 긴장감이 팽배해지는 사이, 김택록(이성민)의 건너편에서 이야기의 무게추를 침착하게 조정하는 건 다름 아닌 국진한(진구)이다. 의심과 추궁이 갈지자로 무한히 뻗어나갈 때 배우 진구는 <형사록>만이 그려낼 수 있는 형사의 진면을 생각했다. 이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잘하는 일의 경계를 계속해서 조정해온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진짜 형사’를 그려내고 싶었다. 누가 진범인지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한시도 의심을 놓을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 이야의 균형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그게 형사의 중심이니까.”

-국진한의 첫 등장이 강렬하다. 택록이 한창 범인을 추격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 사건에 개입한다.

=사실 대본 속 첫 등장은 느슨했다. 지나가듯 잠깐 나타나서 나중에야 아까 그 사람이 진한이었다는 걸 알게끔 하는 정도였는데 현장에서 조금씩 바뀌었다. 생각보다 달리기도 오래했다. 그 추격 장면만 찍는 데 사흘이 걸렸다. 당시 OCN 드라마 <우월한 하루> 촬영과 겹쳐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몸이 아팠다.

-안 그래도 형사물이라는 장르상 체력과 지구력을 요하는 장면이 많다.

=혹여나 약하게 나오거나 피곤해 보일까봐 걱정이 많았다. 몸을 쓰는 건 사실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관절에 염증이 생겨서 고통을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 졸음을 참거나 심폐지구력이 필요한 달리기는 백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은 카메라에 담기잖나. 나의 개인적인 부침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이제는 많이 회복했다.

-국진한 경위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면 가감 없이 쏟아내는 저돌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를 두고 주변에서 능력자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사실 ‘능력자’라는 말은 국진한의 능력이 출중해서 건네는 칭찬이라기보다 비꼬는 말에 가깝다. 금오경찰서는 워낙 지역 비리와 유착이 깊고 내부적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라 새로 부임한 진한을 간 보기 위해 경계의 제스처를 취한 거다. 동료와 선배는 그를 은근히 따돌리고 후배는 그를 상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배경 때문에 국진한이 오직 겉모습에서만 저돌적으로 보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속은 여리고 상처가 많다. 전사가 비중 있게 드러나지 않지만 대화를 통해 진한의 슬픈 과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장치로 시청자가 진한에게 연민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날카로운 태도의 진한이 초반에 가장 경계한 인물은 김택록이다. 그런 진한이 택록과 공조를 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진한은 무슨 생각인 걸까.

=드라마에서 흐르는 시간은 열흘 정도 된다. 누군가를 향한 의심을 거두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원래 수사는 차근차근 정확하게 진행해야 하지만 극이다 보니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일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감정도 요약해야 한다. 그사이 진한은 사건 정황과 자신의 판단을 통해 택록이 협업할 만한 인물이라고 짐작해간다. 진한에게 음흉한 꿍꿍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공조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움직일 뿐이다.

-택록과 진한은 서로 닮아 보인다. 불의를 참지 못해 윗선을 정통으로 공격하고, 그래서 진한은 좌천되고 택록은 만년 경위다.

=자기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부분이 똑같다. 그래서 이성민 배우를 흉내내려고 연기할 때 적잖이 신경 썼다. 인물 연구를 하면서 성민 선배만 따라 하면 될 것 같았다. 김택록의 어린 시절이 국진한이고, 국진한이 나이가 들면 김택록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의 심리적 거리감이 줄어드는 모습에서 진한과 택록이 힘을 합칠 순간이 왔다는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었다.

-살인사건의 진범이자 협박범인 ‘친구’의 정체를 계속 시청자와 함께 풀어가야 한다.

=<형사록>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친구’ 찾기다. 누가 진범인지 알아내기 위해 촬영 내내 배우들도 추리 과정을 즐겼다. 옛날에도 이런 희열을 느낀 적이 있다. 같이 살던 친구 둘과 함께 일본 드라마 <언페어>를 보면서 매 에피소드의 범인 맞히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덟 가지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그 누구도 한번을 못 맞히더라. (웃음) 그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이 기억처럼 관객도 <형사록>에서 누가 진짜 범인인지 함께 맞혀나가는 경험을 누리면 좋겠다.

-한동화 감독은 어떤 스타일의 디렉터인가.

=한동화 감독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외강내유다. 짧은 스포츠 머리에 보일 듯 말 듯한 타투, 눈빛을 가리는 선글라스까지 강인한 남성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한없이 다정하고 여리다. 특히 감독님은 카메라감독 출신이라 앵글을 섬세하게 신경 쓴다. 예고편을 보고 많이 놀랐다. 우리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심도 있게 나왔더라. 드라마를 영화처럼 찍는 사람이다. 촬영도 빠르게 진행하고 망설이지 않는 결단력을 보여줘서 현장이 나이스하게 흘러갔다.

-영화 <달콤한 인생>부터 <마더> <26년> <연평해전>,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불야성>까지, 거칠고 야성적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

=처음엔 비슷한 결의 역할들이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나만의 특기로 받아들이게 됐다. 전공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하지만 ‘OO 전문 배우’ 같은 수식어는 싫다. 전공 분야가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와 격정 멜로, 가족 드라마 등에도 여전히 열려 있다.

-특히 올해는 진구 배우에게 특별할 것 같다. <마녀 Part2. The Other One> <우월한 하루> 그리고 <형사록>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나를 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해였다. 연기의 스펙트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일종의 자기 효능감을 느끼면서 다양한 역할을 유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외에 외적인 평가는… 늙었다는 것. (웃음) 예전엔 강한 액션을 해도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젠 쉽게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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