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아마겟돈 타임’ ② 리뷰, 우리가 성장한 순간에 상실한 것들
2022-11-17
글 : 김수영

“자기 스스로를 그릴 때는 자기 안의 본질을 담아내야 해.” 극중 미술 선생님의 조언을 실천하기 위해 제임스 그레이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정직하게 직시한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했다”는 그는 아마존 정글(<잃어버린 도시Z>)과 우주(<애드 아스트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도 그래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미국 퀸스를 배경으로 본격적인 자기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해 살았던 집과 다녔던 학교를 실제와 가깝게 구현했다. 가족사진과 졸업앨범을 토대로 당시 인물들의 외양과 의상을 디자인했고 집에 있던 초록색 패턴의 소파, 덴마크 모던 양식의 가구, 자신의 침대맡에 붙어 있던 스티커까지 그대로 영화에 옮겼다. 정직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카메라 위에 네개의 단어를 붙여두기도 했다. 사랑, 온기, 유머, 상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의 가족을 그려낸 영화 곳곳에서 사랑과 온기, 유머가 느껴지지만 무엇보다 <아마겟돈 타임>은 상실에 관한 영화다. 소중한 존재와 아름다운 순간이 어떻게 존재했다 사라졌는지 관객 역시 그가 빚어낸 세계 속에서 체험하게 된다. 레이건 대통령 취임 직전, 아메리칸드림을 향한 욕망과 인종차별을 공공연히 드러내던 198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이야기는 ‘사랑, 온기, 유머, 상실’을 통해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이고, 부분적이면서도 전체를 말하는 드라마로 확장됐다.

특권이라는 유산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폴은 학기 첫날 선생님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그림으로 지적받는다. 예술가를 꿈꾸는 폴은 남다른 그림 실력을 지녔지만 선생님이 보기에는 공상에 빠진 문제아일 뿐이다. 수업 시간에 농담을 던져대는 죠니(제일린 웹) 역시 선생님 눈 밖에 나긴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가난한 동네에 아픈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흑인 죠니에게 혐오와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폴과 죠니는 우주와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가까워지지만 호기심에 마약을 하다가 발각된 일로 둘의 세계는 분리된다. 폴은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전학을 가고 죠니는 학교를 그만둔다.

사립학교로의 전학은 수직적이고 계급적인 이동이다. 폴의 의중과 상관없이 어른들은 폴이 더 나은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더 많은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로 이동시킨다.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 이주한 유대인 가족은 애초에 좋은 곳에 씨를 뿌려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빈손으로 미국에 왔지만 이제는 손자까지 돌볼 수 있게 된 조부모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폴은 그렇게 흑인을 ‘검둥이’라고 부르는 세계, 교복 정장을 입고 옷깃의 칼라를 똑바로 세우는 것으로 학교의 전통을 유지하는 세계, 40명의 학생이 통제되는 교실에서 교사가 단 12명의 학생과 소통하는 세계로 옮겨진다. 폴에게 닥친 ‘아마겟돈 타임’이다.

제임스 그레이가 다녔던 명문 사립학교 큐 포레스트 스쿨은 부동산 재벌 프레드 트럼프 집안의 아이들이 다닌 학교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임스 그레이가 재학 중일 때 도널드 트럼프의 누나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 검사가 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영화에선 제시카 채스테인이 이 장면을 연기한다. “우리 학교 학생인 여러분은 뭐든지 할 수 있다. 그건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았기 때문이다.” 성공은 그저 노력이 아니라 기회를 통해 획득하는 거라고 외치던 당시의 연설을 제임스 그레이는 이렇게 회상한다. “3루에서 태어나 3루타를 쳤다는 연설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차피 불평등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면 운 좋게 쥔 특권으로 불평등을 당하는 것보다 행하는 쪽에 서고 싶다는 아메리칸드림이 오늘날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까지 이끌었다. 그의 품위 없는 욕망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그의 이름이 차기 대권에서 존재감 있게 언급된다는 점에서 메리 앤의 연설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셈이다.

제임스 그레이가 구현한 상실의 세계

규율과 통제가 가득한 학교에 죠니라는 숨 쉴 구멍이 있었다면 집에는 폴의 할아버지(앤서니 홉킨스)가 있다. 할아버지는 폴의 야망을 사랑으로 지지하는 정신적 지주이자 세상의 이치를 폴이 납득할 수 있게 일러주는 유일한 어른이다. 이런 할아버지의 세계와도 폴은 작별하게 되는데 제임스 그레이는 영화에서 폴이 겪는 세계의 상실을 공들여 그려낸다. 그는 상실 혹은 상실의 풍경이 회상을 넘어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은 것처럼 보인다. 집 안은 대체로 조도가 낮고 몇개의 조명들이 인물을 비춘다. 특히 폴의 방에서 할아버지와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어른들은 어둠 속에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검은 실루엣 그대로 서 있기도 한다. 금방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느낌으로 그들은 존재한다. 어둠 속에 선 인물의 얼굴에 옅은 조명 빛이나 창밖의 거리에 빛이 묻어나는 순간이 종종 있는데 그 자체로 아련한 느낌, 희미한 느낌을 담아낸다. 할아버지와의 유대감과 추억,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 죠니와의 우정. 이 모든 것은 분명 존재했지만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카메라는 그들이 머물렀던 빈 공간을 다시 보여주고, 인물들은 목소리로만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는 무언가 거기에 있었다가 사라졌다는 것을 자꾸 각인시킨다.

소년은 상실을 통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사실 소년뿐 아니라 1980년은 그들의 부모 역시 자신의 세계가 한번 무너지는 일을 경험한 시절이다. 제레미 스트롱과 앤 해서웨이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부모의 모습과 동시에 혼란으로 가득한 유대인 가정의 모습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담아냈다. 자식에게 폭력을 쓰거나 때때로 방임하는 이들 역시 아메리칸드림으로 절실하지만 연거푸 실망과 낙담의 시간을 겪는다. 그들이 지켜내고자 한 것 역시 그들이 운 좋게 얻은 것들뿐이다. 부모는 소년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조하지만 폴은 “세상과 맞서 싸우고 행동해라. 네 과거를 잊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은 예술가는 <아마겟돈 타임>을 통해 우리가 성장한 순간에 상실한 것들이 무엇인지 직시하게 한다.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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