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타임>을 정직한 영화로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당연히 못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어려웠다. 이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도덕적 혹은 윤리적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나의 일부를 드러내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세상의 풍경이 거칠고 끔찍하다. 이 지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어려웠다. 유머와 비극이 동시에 있는 게 삶이다. 영화에는 많은 유머가 있기 때문에 농담이나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표현하는 일은 차라리 쉬웠다. 나 역시 내 기억의 유머러스한 부분을 다룰 때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에피소드를 담는 것을 넘어 당신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려고 애썼다. 극중 앤서니 홉킨스는 당신의 할아버지처럼 하얀색 셔츠를 입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운다. 실제 할아버지가 썼던 페도라까지 쓰고 등장한다. 이렇게까지 세밀한 고증이 필요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디테일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앤서니 홉킨스와 나는 그저 할아버지를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가 입고 먹는 것, 피우는 담배의 종류 등 세부사항까지 파악해 그의 영혼을 담아내는 데까지 동기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런 디테일을 통해 관객 역시 누군가의 매우 특별한 것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단순한 영화 관람을 다른 사람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한 인물의 세계를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드러내려면 구체적인 사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페도라가 거기 있어야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감상적이지 않게 묘사한 점이 눈에 띈다.
=영화를 만들 때 나는 최대한 개인적인 것을 가져오려고 노력한다. 과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정확하지만 동시에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억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할 따름이다. 과거를 떠올릴 때 그 풍경은 내가 바라던 세상이 아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도 아니다. 그걸 아름답게 혹은 감상적으로 보여준다면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물론 아름다운 우화 역시 세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심지어 <스타워즈>도 세상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더 나아진 세상을 보고 싶다면 정직하게 돌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향수라고 부를 만한 걸 없애고 싶었다. 맑은 눈으로 돌아보고자 했다. 진짜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세상을 진정으로 반영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첫 수업 장면에서 선생님은 “체육시간은 특권이야”라면서 폴과 죠니를 배제한다. 특권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에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암암리에 그것이 특권인 줄도 모르고 취하거나 누군가는 완전히 배제당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특권의 의미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다. 평생 온수기를 고쳐온 배관공인 아버지에게 “아버지, 당신은 특권의 수혜자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아버지는 매우 화를 낼 거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아버지에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결코 많은 특권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가 몇몇 특권을 경험했다고 설명한다면? 그때 아버지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특권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이해되기 쉽지 않다. 오늘날의 특권에는 더 많은 층위가 있다. 특권을 누리고 있는 어떤 사람도 어떤 문제에서는 다른 누군가에 비해 불리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즉시 트윗을 날리거나 쉽게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엔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다리우스 콘쥐 촬영감독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야기를 많이 한다. 화가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박물관에도 자주 갔다.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에드워드 호퍼, 잭슨 폴록….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이 화가들에게 우리가 끌리게 되는 공통적인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다리우스에게 이 영화를 유령 이야기처럼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사라졌고 지구상에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 이 상실감을 영화에서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며 다리우스는 박물관에서 그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을 발견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잠자는 소녀>다. 이게 우리 영화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에서처럼 인물들이 조명에서 약간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이 유령처럼 보일 거라고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아나갔다.
-전작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당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은 내면과 정서를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폴의 부모와 할아버지를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런 캐릭터를 빚을 수 있는 까닭은 당신이 자신의 내면에서 이야기를 끌어올리는 데 능한 창작자이기 때문일까.
=불편하거나 자랑스럽지 않은 부분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게 내 일이라고 말해준 선생님이 있었다. 운이 좋았다. 만약 당신도 마음 깊숙한 곳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부끄럽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을 들여다보면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세계를 인식하는 나의 관점을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다른 영화 제작자들은 어떤지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이건 내가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