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2022 타이틀 매치: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 작가 임흥순, 오메르 파스트를 만나다
2022-12-08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올해로 9회차에 접어든 ‘타이틀 매치’는 2인전이라는 틀 속에서 매년 새롭게 시도하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대표적인 연례전시다. 2022년에는 영화감독이자 영상설치작가인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를 초청해 2023년 4월2일까지 <2022 타이틀 매치: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 전시를 연다. 타이틀 매치 최초의 해외 초청 작가인 오메르 파스트는 <캐스팅>으로 2008년 휘트니비엔날레 벅스바움 어워드를 수상하고, 2009년엔 독일 내셔널 갤러리가 수여하는 40살 이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넘나들며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매개되고 변화하는 방식을 구체화하는 데 관심이 많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와 공공미술 등 다양한 형식을 차용하는 임흥순은 재난과 전쟁, 그로 인해 희생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위로공단>으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려행>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이번 타이틀 매치는 극장이 아닌 미술관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오메르 파스트, 임흥순(왼쪽부터).

- 두 작가의 작품은 1, 2층에 각각 전시되어 있고 작품 배치 방식도 다르다. 오메르 파스트 작가의 경우 작품별로 칸막이가 쳐져 있는 반면, 임흥순 작가의 작품들은 가벽 없이 큰 홀에 함께 놓여 있다. 형식에 관해 의견을 나눈 바가 있나.

임흥순 오메르 파스트가 해외에서 초대된 작가이니 1층에서 먼저 작품을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큐레이터와 대화를 나눴다. 영상 작업은 바리케이드를 쳐서 닫힌 공간으로 설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메르 파스트의 공간 구성을 본 뒤 오픈된 공간으로 결정했다.

오메르 파스트 듣고 보니 임흥순의 전시에 대한 접근법이 정말 좋다. 구조에 의한 제약 없이 작품을 자유롭게 놓을 수 있으니까. 오픈 스페이스는 작품에 문제가 생기기 쉬운 구조이고 개인적으로 그 부분에 상당히 민감해서 지금의 형식이 만족스럽다.

- 오메르 파스트 작가의 <차고 세일>과 임흥순 작가의 <파도>는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공개되는 신작이다.

오메르 파스트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만약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 조부모에게서 부모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일종의 유산으로 물려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그것이 당신 정체성의 일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고 세일>은 박스 안의 박스와 같은 작품이며 배경이 되는 차고 또한 하나의 박스라고 생각했다. 차고에 넣어두는 물건들을 상기해보면 어떤 운명에 처해질지, 어떤 사용 가치를 지녔는지 모르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딱히 원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버릴 순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차고는 일종의 연옥으로 존재한다. 연옥은 무척 흥미로운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무언가가 살아 있을 수도, 죽어 있을 수도 있으며 생과 사가 공존할 수도 있는 일종의 불확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안의 물체들은 망각하고 싶지만 망각할 수 없고, 망각했다 하더라도 신경증적인 증상처럼 다시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차고 세일>을 통해 논해보고 싶었다.

<차고 세일> 2022,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9분30초. Photo by Lukas Strebel ⓒ오메르 파스트

임흥순 <파도>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제안을 받은 뒤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 시작했다가 멈춘 베트남전쟁 관련 프로젝트, 그리고 여순항쟁과 세월호 참사와 같이 아직 다루지 못한 사건들을 이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7~8월 즈음에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위해 미술 교사였던 한 영매 분이 천도재를 지냈다는 기사를 봤다. 그분과 베트남전쟁의 국가 배상 소송 관련 피해자들을 통역한 분을 만나보기로 했다. 앞서 이야기한 사건들은 시간이 꽤 지났거나 피해자들과 직접 대화하기 어려운 경우이기 때문에, 대신 중간 매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도 작업자로서 어떤 측면에선 매개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내 작업 방식에 관한 고민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파도> 2022, 3채널 FHD 비디오, 컬러, 5.1채널 사운드, 48분40초. ⓒ임흥순

- 이번 신작을 포함해 두 작가의 작품엔 공통점이 보인다. 내레이션은 통일하되 2, 3개의 멀티 스크린을 활용하는 방식을 계속 시도하는 이유는.

오메르 파스트 TV를 보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하나의 이미지만 보지 않나. 반면 전시 공간에선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둘 다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관객이 하나 이상의 이미지를 동시에 바라보면 당연히 이미지들간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미지와 비평적 관계를 맺는다. 시공간을 고려하고 다수의 스크린을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이미지 재현의 측면에서 극장과 TV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비디오 아트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이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의 기본이 아닐까 싶다.

임흥순 오메르 파스트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영화나 TV는 스크린 안에만 집중하게 만들지만 미술관은 작품 바깥의 공간도 유동적으로 작용한다. 멀티채널은 일종의 분해된 몽타주고 관객은 계속 움직이면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스크린의 이미지를 선택해 바라본다. 불편한 관람 형식이지만 나는 이것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다.

- <아우구스트>는 이번에 공개된 작품 중 유일한 3D 단편영화다. 아우구스트 잔더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으며 3D로 그의 삶을 이미지화하기로 결정한 계기는 뭔가.

오메르 파스트 <아우구스트>는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라는 독일 미술관에서 제작 의뢰를 받아 만들었다. 그때 미술관 디렉터가 전시 공간을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그곳에 취임해 처음으로 진행한 것이 아우구스트 잔더를 기리기 위한 전시였다고 하더라. 당시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에는 7개의 커다란 공간이 있었는데 잔더의 사진을 벽에 설치하고 이 프레임 밖에 시간성을 부여해서 시네마로 확장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이를테면 사진이 촬영되기 전후를 보여주는 식으로. 여기서 더 확장해 시간의 앞뒤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3차원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과 같이 완성하게 됐다.

<아우구스트> 2016, 스테레오스코픽 3D 필름, 컬러, 사운드, 15분30초.Photo by Stefan Ciupek ⓒ오메르 파스트

- <아우구스트> <세상은 골렘이다>를 포함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가 당신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발견된다.

오메르 파스트 가상과 현실을 나누는 것 자체가 허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든 특정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고, 벌어진 사건들은 전부 우리가 사후적으로 기억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오늘 아침에 이런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라고 시작하는 순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과 그 속에서 발생한 사건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나의 정돈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골렘이다>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39초. Photo by Stefan Ciupek ⓒ오메르 파스트

- <좋은 빛, 좋은 공기>와 <파도> 모두 피해자 혹은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증언을 듣는 식으로 진행된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작가인 자신과 작품을 매개자로 두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임흥순 그것이 오메르 파스트와 나의 다른 지점인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완전히 재구성하기보다는 당사자의 본래 이야기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는 편이다. <파도>에서 매개자들을 섭외한 건 그들이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된 활동을 하고 가장 가까이서 바라봐온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치에 따라 시선의 차이가 발생하고 또 말로 완벽히 전달할 수 없는 어떤 정신적인 부분들이 생겨난다. 그걸 이미지로 그려내는 작업 방식을 선호한다. 나아가 과거의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그리고 미래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함께 나눌 수 있길 희망한다.

<좋은 빛, 좋은 공기> 2018, 2채널 FHD 비디오, 컬러, 4채널 사운드, 42분. ⓒ임흥순

- <내 사랑 지하>는 작가의 초기작이어서 그런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작가 개인의 삶이 내밀하게 담겨 있다.

임흥순 말한 대로 초창기 때 촬영한 홈비디오의 성격을 지닌 작업이다. <내 사랑 지하>는 가족의 이사를 도와주기로 했는데, 전날 밤 친구를 위로하는 술자리에서 팔을 다쳐 무거운 짐을 들 수 없었다. 그래서 짐을 옮기는 대신 촬영을 하기 시작했다. 술자리부터 이어진 일련의 상황들이 사람들의 관계와 그에 대한 나의 생각 같은 것을 더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비의도적으로 시작된 작업들이 있는데, 이런 일기성의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 사랑 지하>는 이후 제작한 작품의 원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가령 누워 있는 아버지는 죽거나 쓰러져 있는 남성으로, 일하는 엄마와 여동생은 계속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으로 역사를 다룰 때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느낌이 있다.

<내 사랑 지하> 2000, 단채널 6mm 비디오, 컬러, 사운드, 20분9초. ⓒ임흥순

- 미술관에 전시된 영상 작업들을 관람할 경우 관객은 극장에서보다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지만 한 작품을 집중력 있게 관람하긴 어렵다. 미술관에 영상 작업을 전시한다는 것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이자 시도로 느껴지나.

임흥순 극장과 비교해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장점이 곧 단점이 되는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다. 사실 내가 다루는 주제 자체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주제들이지 않나. 그래서 시각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전달 방식 또한 관객이 편하게 느끼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불편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런 맥락에선 미술관이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오메르 파스트 지금 상황에서는 영화만이 참조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술과 영화라는 이분법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고, 또 20~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TV와 극장, 모바일 장치 등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 화면이 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선 미술관에서까지 스크린을 봐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작가로선 바로 이 지점을 도전이라 느낀다. 작품을 만들 때 내가 영화를 미술관에 걸기 위해 소규모로 다시 제작하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면 그렇게 작업하기도 한다. 임흥순의 말대로 관객이 미술관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시선을 움직인다는 점을 작품과 작품의 설치 요소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도 그런 고민들이 반영됐다.

<2022 타이틀 매치: 임흥순 vs. 오메르 파스트 《컷!》> 전시 전경.
사진제공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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