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필름앤비디오 2022년 하반기 프로그램으로 ‘영화로, 영화를 쓰다’를 상영 중이다. 차학경, 수전 손태그, 마르그리트 뒤라스,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작품들을 모은 이번 전시는 다른 지역, 다른 언어,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이를 융합해 영화의 세계에서 만난 네명의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정신 세계로 잠입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활자(시, 소설, 에세이, 시나리오, 비평 등)를 쓰다가 이를 전복적인 영화 쓰기의 행위로 옮겨온 인물들이다. 4인의 작가 모두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 목소리는 길고 선명하다. 상영작 프로그램은 12월18일까지 만날 수 있다.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1951~82
여성, 한국인, 디아스포라
MMCA 필름앤비디오 상영작 <비밀스런 유출>(1974), <입에서 입으로>(1975) <치환>(1976), <비데오엠>(1976) <다시 사라짐>(1977)
2022년 1월10일, <뉴욕 타임스>에 사망 40년 만에 차학경의 부고가 실렸다. 정기 부고면에 ‘빠뜨릴 수 없는 인물’ 시리즈가 기획되면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책 <딕테>(1982)와 다수의 실험영화들을 통해 디아스포라적 정체성을 실험적 문체로 담아낸 차학경은 아시아계 작가 및 연구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예술가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배경을 가진 사람이 (미국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차학경이 처음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학경은 시,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했기에 그를 수식하는 정의도 개념미술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영화감독, 비디오 아티스트, 시인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그는 프랑스, 영어, 한국어 3개 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면서 이를 예술적 도구로 활용해 영상과 아티스트 북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조형해나갔다. 언어의 혼용을 통해 차학경이 드러낸 것은 무엇보다 이민자, 그리고 망명자로서의 정체성이다. 1980년대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의 삶, 탈식민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이 활자와 영상, 차학경 자신의 몸을 거쳐 장르 융합의 형태로 다루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 속에서 뉴욕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떠오르던 차학경은 책 출간 두달차에 평소 알고 지내던 건물 경비원에게 강간, 살해됐다. 그의 나이 31살 때다. 버클리미술관은 1992년부터 차학경의 기록을 수집·연구하는 ‘차학경 아카이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1993년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그녀의 첫 회고전이 열렸으며 휘트니미술관은 올해 다시 2022 휘트니비엔날레의 작가로 차학경을 선정했다. 처음 차학경이 휘트니미술관에 소개되었을 때 그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 매체는 단 한곳도 없었다. 차학경은 한국에서도 그 명성이 충분히 홍보되지 않아 연구자, 대중 사이에 인지도의 간극이 클 뿐 아니라 그가 남긴 예술적 명성을 압도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죽음의 전말조차 마땅하게 논의되지 않았던 작가이다. 캐시 박 홍의 저서 <마이너 필링스>에서 차학경을 다룬 것과 더불어 이번 MMCA 전시를 통해 간과되었던 그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딕테>에 인용된 그리스 시인 사포의 말을 빌리자면 차학경의 예술은 “육신보다 더 적나라하고, 뼈대보다 더 강하며, 근육보다 더 탄력 있고, 신경보다 더 예민한 이야기”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찌르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흰 바탕 위에 한글 모음(ㅏ ㅑ ㅜ ㅓ ㅕ ㅡ ㅗ ㅛ)이 떠오른다. 화면이 전환되면 클로즈업된 사람의 입이 모음을 발음한다. 포커스는 자주 어긋나고 소리도 뭉개져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언어를 상실해가고 있는 것일까.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뒤섞인 채로 움직이는 입은 계속 낯선 언어의 조합을 반복하고, 상실은 이내 곧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낯설고 힘겨운 과정과 겹쳐진다. <입에서 입으로>는 모국어인 한국어의 증발과 해체를 감지한 차학경이 자신의 실천으로 서술한 영상 기호학이다.
<비밀스런 유출> <비밀스런 유출>은 반복을 통해 시적 리듬을 쌓는다. 익스트림 클로즈업된 상태로 무언가를 힘겹게 더듬는 카메라를 따라가다보면 카메라가 비추는 것이 희고 거대한 자루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미에 이르면 차학경의 손이 자루를 열고 그 속에 가득 채워진 흙을 조심스레 퍼낸다. <차학경 예술론>(‘호모 코메리카누스, 한국계 예술인 차학경의 자아찾기’, 정재형, 북코리아)에서 저자는 개념미술의 측면에서 “차학경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심 기법 중 하나는 전치의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융에게 배운 것처럼 자신 안에 있는 깊은 무의식 속의 기억을 찾아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려는” 탐구가 그의 작품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조상들의 역사, 문화적 기억 등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적 없다 해도 결코 떨쳐낼 수 없는 태생적 기억이 디아스포라들의 삶에는 존재한다. 차학경은 <비밀스런 유출>을 통해 바로 그 감각을 드러내며, 거대한 자루로 존재하는 자신의 근원을 더듬다 끝내 비밀스런 진실을 유출한다.
<치환> 카메라는 침묵 속에서 한 여성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춘다. 많은 이들이 차학경이라 착각하지만 <치환>의 주인공은 차학경의 동생 차학은(버나뎃)이다. 차학경의 모습은 마지막쯤 플리커 기법으로 번쩍하고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한 프레임의 침투, 그사이 차학경-차학은은 한몸이 된다. 아티스트 북 <딕테>에서도 차학경은 젊은 시절 일제강점기를 피해 만주로 떠난 어머니와 미국으로 이민 간 자신의 존재를 겹치고 이를 유관순 열사, 그리고 잔 다르크의 이미지로- 영화 <잔다르크의 수난> 속 클로즈업을 삽입해두었다- 확장한다. 개인과 역사, 주체와 타자가 차학경의 언어적 융합 속에서 서로 치환 또는 (그의 또 다른 작품 제목처럼) ‘통과’하는 순간이다.
포루그 파로흐자드 Forough Farrokhzad, 1934~67
움직임과 정적, 소음과 침묵 사이
MMCA 필름앤비디오 상영작 <검은 집>(1962)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에 그 시가 인용되기도 했던 이란의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유일한 영화 <검은 집>을 남기고 32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국내에서는 동명의 시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가 출간되어 있다). 그는 현재까지도 20세기 이란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기억되지만 영화로는 자국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963년 오버하우젠단편영화제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상을, 2014년 <사이트 앤드 사운드>가 주관한 역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설문에서 19위를 차지할 정도로 <검은 집>은 작가의 사후에 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검은 집>은 파로흐자드의 연인이자 이란의 감독/문학가인 에브라힘 골레스탄(그와 장뤽 고다르의 대화가 담긴 영화 <씨 유 프라이데이, 로빈슨>이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이 제작한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 이란 북서부에서 한센병 환자의 집단 감금 문제가 발생하자 파로흐자드는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일상에 침투한다. 폐쇄된 울타리 속에 머무는 환자들의 조용한 일상은 인권 탄압, 종교 이데올로기의 기만을 말없이 폭로한다. 이 고발적인 영화는 그러나 놀랍게도 아찔할 정도로 탐미적이며 유려하다. 아름다움은 영화 속 인물들을 당연하고도 강렬한 동일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괴사된 신체, 고통스러운 신음은 평범한 식사 시간과 기도, 공놀이, 학교 수업 등과 공존한다. 감독은 평등하고 긴밀한 관찰을 통해 그들을 이 영화의 대상이 아니라 주인으로 거듭나게 한다. 자신의 시와 구약성경, 코란의 인용문들이 보이스 오버로 끊임없이 겹치면서 움직임과 정적, 소음과 침묵 사이의 긴장감이 형성하는 순간들도 매혹적이다.
시인은 폐쇄된 그곳에서 영원을 본다. 오후의 산책, 카드 놀이 같은 순간들을 잘게 부순 다음, 여러 겹의 시간을 경유하는 몽타주를 삽입하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그러자 무의미해 보였던 짧은 장면이 영원에 가깝게 누군가의 삶으로 각인된다. 파로흐자드는 정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그 집은 검다”라고 말하는 소년을 아들로 입양했다.
수전 손태그 Susan Sontag, 1933~2004
투명한 붕괴
MMCA 필름앤비디오 상영작 <형제 칼>(1971) <약속의 땅>(1974) <안내 없는 여행>(1983)
1996년 2월, 수전 손태그는 영화예술의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 타임스>에 칼럼 ‘시네마의 쇠퇴’(The Decay of Cinema)를 썼다. 2019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역시 <뉴욕 타임스>에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띄우면서, 시장 논리가 영화 제작의 모든 원칙을 결정하는 가운데 이상적인 창조 행위가 질식하고 있다는 수전 손태그의 메시지는 20년이 훌쩍 넘어 다시 회자되고 있다. 4권의 소설, 6권의 에세이, 몇편의 희곡과 이야기 모음집, 그리고 수많은 예술비평을 쓴 수전 손태그의 치열한 글쓰기는 때로 영화로부터 촉발되곤 했다. 손태그는 자신만의 영화 리스트를 대중에 공개하는 등 열성적인 영화 애호가의 자리를 자처하다가 직접 필름메이커가 되기로 한다. 시네마의 쇠퇴를 공표하기 27년 전인 1969년, 손태그는 스웨덴에서 작업한 첫 영화 <식인을 위한 듀엣>을 시작으로 정신적 위기가 불러내는 일상의 긴장과 균열, 관계의 파국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 돌입했다. 두 번째 영화 <형제 칼>(Brother Carl) 이후 그는 유대교 명절 욤 키푸르 기간에 일어난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그린 <약속의 땅>, 베니스를 떠도는 여행객의 내면적 긴장을 담은 <안내 없는 여행> 등을 발표했다.
수전 손태그의 두 번째 영화 <형제 칼>의 내용은 이렇다. 카렌과 레나, 두 여자가 스웨덴의 휴양지인 섬을 방문한다. 그곳에선 레나의 전남편이자 안무가인 마틴이 정신장애가 있는 발레 무용수 칼과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마틴은 칼을 ‘형제’로 생각하지만 둘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다만 그들은 형제처럼 모종의 책임감과 구속력을 스스로 강제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정확히는 마틴이 칼을 망가뜨린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두 사람의 상호 의존은 점차적으로 섬을 찾은 두명의 여성에게까지 확대된다.
손태그는 1966년 출간한 비평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탁월한 영화의 조건으로 “해석의 충동에서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는 직접성(directness)이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때 손태그가 옹호한 영화들이란 장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 브레송, 장 르누아르 등이며 할리우드 고전기 영화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형제 칼>은 손태그가 영화의 직접성, 그리고 투명성에 대한 자기 관점을 입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네명의 인물이 심리적으로 예민하게 대립하는 동안 일면 표현주의적이기까지 한 몸의 움직임, 가식적인 대화나 관계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극단적인 무표정과 침묵이 스크린을 지배한다. 손태그는 배우들의 연기가 종종 어색한 순간들을 지향(혹은 감수)하면서 불완전함에 가치를 둔다. 비평,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미국 사회의 정신적 모순과 위기를 통찰했던 그였기에, 기교를 배제한 채 영화에 담아낸 감정의 거친 파장과 나약한 육체들의 감흥도 비로소 구체화된다. 손태그의 글이 줄곧 지적해온 ‘위선’이라는 거대한 불편함이 흑백의 작품 안팎을 공명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 1914~96
모두이거나 아무도 아닌, 목소리들의 영화
MMCA 필름앤비디오 상영작 <갠지스 강의 여인>(1974) <인디아 송>(1975) <캘커타 사막의 베니스라는 그의 이름>(1976)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45살에 영화계에 입문, 53살에 연출 데뷔작 <라 뮤지카>(1967)를 만들었다. 조너선 로젠봄, 폴린 카엘 등 열렬한 비평적 지지자들의 호응 속에서 이후 20편이 넘는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뒤라스의 영화는 단일 작품으로서는 사실상 언제나 미지의 영역에 있다. 소설 원작에서 출발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영화들은, 문학적 태도의 연장 선상에서 언제나 고려되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인디아 송>이다. 파리에서 1937년의 인도 캘커타를 재현해 촬영된 영화는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 안느 마리(델핀 세리그)가 타국에서 겪는 정신적 단절감과 세 남자 사이에서의 러브 스토리를 몽환 속에 새긴다.
<인디아 송>은 단순히 심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이방인의 나른함, 쇠락해가는 것들의 관능, 노스탤지어, 쓸쓸한 욕망을 입은 배우들이 각자 스크린의 매혹적인 도상으로 충실히 기능하는 덕분이다. 그러나 <인디아 송>을 비롯한 뒤라스의 영화들이 근본적으로 남기는 충격은 문학적 쓰기의 방식을 영화에 전복적으로 도입했을 때, 그것이 결코 문학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영화언어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영화 <인디아 송>은 뒤라스의 소설이 그러하듯 전혀 다른 두 화자의 서술을 겹쳐두거나 묘사를 불쑥 생략해버리는데, 이때 사운드라는 영화적 요소가 거대한 차이를 만든다. 배우의 대사는 존재하지 않고 트래킹 카메라는 수행하듯 느리게 머무르는 동안 화면의 이미지(장면)와 소리(보이스 오프)가 점차 간극을 키운다. 발화자를 구분하기 힘든 노래와 목소리들이 뒤섞이거나 날카로운 울음과 비명이 정적인 화면을 깨트리기도 한다. 뒤라스 자신의 목소리가 끼어들 때 이러한 특성은 더욱 선명해진다. 요컨대 <인디아 송>의 모든 배역은 뒤라스 자신의 대리자이거나 분열적 주체라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이에요. 나는 캘커타이고, 거지이며, 메콩강이고, 직위이기도 해요. 캘커타 전부죠. 백인 구역 전부고요. 식민지 전체예요. 모든 식민지의 쓰레기통이 바로 나예요. 그건 확실해요. 나는 거기에서 태어났어요. 거기에서 태어났고 그곳에 대해 썼어요.”(<말의 색채-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말하는 나의 영화들> 중)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중심 인물들을 떠나 갑자기 장소와 내러티브 바깥으로 탈주하는 카메라가 그러했듯, <인디아 송>은 영화의 디제시스(영화에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 속 시공간 또는 가상의 인물들이 살고 있는 허구화된 세계를 이르는 말)와 영화 바깥의 세계가 기묘하게 접붙는 순간을 활자가 아닌 이미지와 소리의 영역에서 발견해나간다. 바로 다음 작품인 <캘커타 사막의 베니스라는 그의 이름>은 <인디아 송>의 전체 사운드트랙이 그대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뒤라스의 과감한 실험 정신을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