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영웅’ 윤제균 감독이 예고편에도 넣지 않았다는 히든카드 시퀀스의 정체
2022-12-22
글 : 김수영
사진 : 백종헌

-영화 곳곳에 뮤지컬영화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한 고민이 느껴졌다.

=정성화 배우와 많이 의논했다. 영화 <레미제라블>도 참고했지만 그 영화는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로 진행되잖나.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이끌어가는 극이라 <영웅>과는 맞지 않았다. 한국에서 뮤지컬영화가 많이 제작되지 않는 건 감정이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노래가 시작하는 순간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감정 ‘아웃’된다. 14년 동안 뮤지컬 <영웅>을 이끌어온 정성화 배우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영화에 안무가 없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나는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춤을 추는 장면이 감정을 달아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작에서는 추격 장면도 춤으로 표현하는데 영화에서는 리얼하게 보여주는 게 낫다고 봤다.

-대사에서 노래로 넘어가는 순간, 자연스러운 송모먼트는 어떻게 찾아나갔나.

=둘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송모먼트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게 목표였고 거기에 사활을 걸었다. 음악감독님, 콘티 작가와 상의하면서 전주가 들어가는 순간까지 담은 콘티를 짰다. 술잔에 떨어지는 설희의 눈물 한 방울이 송모먼트가 되어 설희의 첫 노래로 넘어간다. 이토 히로부미도 건배의 잔을 잡는 순간 송모먼트가 시작된다. 초반에는 뮤지컬영화라는 것을 인식하겠지만 중반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음악과 드라마에 빠져들 것이다.

-원작 뮤지컬과 비교했을 때 설희의 서사가 보강됐다. 설희의 노래 <그대 향한 나의 꿈>도 추가됐다.

=설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왜 죽이지 않았을까. 공연을 여러 번 보면서 설희의 개연성이 가장 의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설희가 어떤 순간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은 명확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대에서는 설희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가진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이 부분도 영화상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과감히 걷어냈다.

-왕웨이, 링링도 한국 남매로 바뀌었다. 링링도 원작에서는 안중근 의사를 짝사랑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젊은 커플로 재구성했다.

=원작의 왕웨이와 링링 중국인 남매가 영화에서 한국 남매로 바뀐 게 캐릭터상으로는 가장 큰 변화다. 무대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배역도 한국말을 쓰지만 영화에서는 리얼리티를 더하기 위해 일본인은 일본어를 쓴다. 그런데 중국인 남매가 등장하면 중국말까지 3개 국어가 나오게 되어 관객이 혼란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해 한국인 남매로 바꿨다. 진주가 안중근보다는 또래의 어린 독립운동가 유동화에게 첫사랑을 느끼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 둘의 사랑 이야기로 풀었다.

-라이브로 녹음했으니 촬영 현장이 무대 자체였을 것 같다. 현장을 담는 카메라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내가 관객이라면 이 장면을 정면에서 보고 싶고 옆에서도 보고 싶고 가까이 다가가 배우 얼굴도 보고 싶을 거다. 공연장에서는 관객과 배우의 거리가 고정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관객의 눈이 될 수 있다. 감정이 궁금할 때는 배우 얼굴로 과감하게 클로즈업했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감정이 끊어지지 않게 롱테이크로 갔다. 공연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장면들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영화에 노래가 열 몇곡 나오는데 각각 다른 컨셉을 가져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컸다.

-무대에서는 <누가 죄인인가>를 비롯해 몇몇 주요 노래를 부를 때 배우는 많이 움직이지 않고 무대장치나 연출 요소로 풀어낸다. 이런 장면을 영화에 반영할 때 어떻게 풀어나갔나.

=<누가 죄인인가>는 예고편에도 넣지 않은 히든카드 시퀀스다. 3D애니메이션으로 프리비주얼을 만든 후에 그대로 촬영했다. 보통 프리비주얼은 SF나 특별한 촬영이 있을 때 쓰며 드라마적인 장면에서 활용한 건 처음이었다. 공연에서는 배우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일본인, 한국인이 다 섞여 있다. 하지만 실제 방청석에는 조선인이 한명도 없었고 그들은 문 밖에서 외치고 있었다. <누가 죄인인가>는 관객으로서 여러 장면이 궁금할 것 같았다. 노래하는 안중근 의사의 얼굴도 보고 싶고, 그때 판사나 방청객의 표정, 변호인과 간수의 반응도 보고 싶을 거다. 컷을 최소화하면서 문 밖의 조선인의 반응도 담아야 했다. 이를 다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가 유영할 수밖에 없겠다고 결론내렸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처음으로 다이내믹하게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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