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영웅’ 윤제균 감독, "도전은 나의 성향"
2022-12-22
글 : 김수영
사진 : 백종헌

-무대적 상상력을 반영한 화면 전환, 감정적으로 연결한 매치컷에서도 공들인 흔적이 보이지만 원테이크로 연출한 전투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던 안중근 의사의 면모를 임팩트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전투를 치렀고 국내 진공 작전에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다른 의병대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포로를 만국공법에 의거해 석방했다가 반격을 당한 일이 있는데 그때 부하들이 많이 죽어 평생 회한으로 남았다. 폭파 후 10m 앞까지 걸어가는 장면을 원테이크로 한번 촬영하는 데도 합을 맞추느라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3, 4분가량 나오는 장면이지만 일주일간 공들여 촬영한 전투 장면이다.

-사전녹음, 라이브, 후시녹음까지 세번 녹음했다. 각각의 녹음본은 어떻게 활용했나.

=대부분 뮤지컬영화가 이렇게 진행된다. <레미제라블>이 100% 라이브라고 해도 중간에 벌레 소리나 바람 소리가 들어갔을 때를 대비해 후시녹음을 딴다. 인이어에서 들리는 반주에 맞춰 배우들의 노래를 라이브로 녹음하고 촬영 후에 다시 후시녹음을 했다. 사전녹음은 촬영하기 전에 녹음한 버전이라 드라이한 노래다. 흥미롭게도 연기에 신경 쓰지 않고 노래에 집중한 사전녹음본 퀄리티가 가장 높다. 마지막 최종 작업할 때 사실 고민을 했다. 감독 입장에서 좋은 녹음본이 있는데 목소리가 튀거나 갈라진 라이브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 김고은 배우도 라이브보다 훨씬 잘 부른 사전녹음본이 있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데 라이브만 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군중 신인 <그날을 기억하며>는 실제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했고 가장 많은 인원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현장 분위기도 뜨거웠겠다.

=군중 앞쪽 100여명은 뮤지컬 <영웅>에 출연했던 코러스 배우, 뮤지컬학과 학생들이다. 뒤쪽에는 보조 출연자가 200여명 있었다. 배우 파트와 군중 파트의 콘티가 각각 있었고 배우는 타이트하게, 군중은 대부분 풀숏으로 담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 편집기사가 갑자기 일반 민중 중에 이 사람, 이 사람은 클로즈업을 땄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배우 얼굴에 집중하느라 군중 얼굴은 캐치하지 못했는데 편집기사가 무조건 따야 한다고 주장해 군중 서너명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편집해서 보니 그분들이 노래 부를 때 정말 울컥하더라. 그날도 수십번 테이크를 갔는데 매번 울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주는 힘이라고 느꼈고 출연자 분들에게 고마웠다.

-라이브로 노래하면서 연기도 해야 해서 배우들에게는 고난도의 촬영이었겠다. 감독으로서 오케이컷의 기준은 어떻게 잡았나.

=그게 제일 어려웠다. 노래와 연기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는데 그때는 연기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라이브 버전도 여러 번 촬영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노래는 없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다른 테이크의 라이브 버전을 넣는 식으로 보완했다. 촬영을 시작할 때 배우들에게 준 디렉션은 딱 하나였다. 연기하지 말자. 너무 준비하거나 계산하지 말고 현장에서 느낀 감정 그대로 해보자. 이미 정성화 배우의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져 있는 것만 봐도 엄청나게 분석했구나 싶었지만, 연기하는 느낌보다 현장의 느낌을 살리길 바랐다. 주인공이 되면 천컷 가까이의 영상이 붙는데 관객은 신의 경지라 그것이 기교인지 진심인지 귀신같이 알아챈다. 나는 필이 오는 테이크에서 오케이컷을 외쳤다. 보통은 어떤 액션이 어색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이번에는 ‘이게 제일 필이 온다’고 모호한 단어로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웃음)

-정성화, 김고은 모두 성실한 배우들이라 연기와 노래를 완벽히 해내기 위해 부담이 컸을 텐데. 배우들의 부담감은 어떻게 완화해나갔나.

=현장에서 우리는 디렉션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평적으로 의견을 교환해나갔다. 어떤 감정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나는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배우도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부분은 끝까지 우겼다. 설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려다 실패하는 장면 있잖나. 발각된 설희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대사를 내지른다. 나는 설희가 조곤조곤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고은 배우가 “오랫동안 울분을 참아왔고 죽기 직전이라 조곤조곤 말할 순 없다”고 했다. “황후마마를 해친 걸 용서하지 않겠다”는 대사도 원래는 한국말이었는데 일본말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기분 풀자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당사자에게 인지시켜야 한다는 거다. 그가 연기하는 걸 보니 이게 맞구나, 필이 딱 왔다. (웃음) 치열하게 대화하고 의견을 나눴다. 그 과정이 진실됐고 그래서 서로 외롭지 않게 작업했다.

-마두식 역의 조우진, 명성황후 역의 이일화도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다.

=마두식 역은 신인으로 갈 생각이었다. 당시 조우진 배우가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선뜻 하겠다고 했다. 영화에 나오는 마두식의 노래는 세트장에서 100% 라이브로 부른 버전이다. 촬영 전에는 조우진 배우가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줄 몰랐다. 명성황후도 누가 연기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응답하라> 시리즈의 오랜 팬이다. 그 시리즈를 보면서 이일화 배우와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었다. 1회차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제안을 드렸는데 수락해주셔서 기뻤다.

-뮤지컬영화라는 낯선 장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 <영웅>이라는 도전을 자평해본다면.

=도전은 나의 성향이다. 새로운 요소가 없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 <영웅>을 하면서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강박과 부담감이 컸다. 다행히 뮤지컬 <영웅>의 제작자 윤호진 대표님이 칭찬해주셔서 한시름 놓았다. 감독으로서 기분 좋고 행복한 건 출연한 배우들이 칭찬받는 일인데 정성화, 김고은 배우나 나문희 선생님과 조연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견 없이 좋은 얘기를 듣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중견 영화인이 된 만큼 한국영화계에 도움이 되는 감독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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