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영화뿐만 아니라 내 삶 전체에 영감을 안겨준다. 보통 영화와 자신을 분리하는 창작자가 많지만 나는 개인의 삶과 감독의 삶을 연결하고 싶었다. 바다 아래에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아름다움이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아바타: 물의 길>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접 심야 해양 탐사를 가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꼭 눈부신 물고기들과 함께 있는 꿈을 꾼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내한 기자회견에서 아무 이유 없이 바다와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탈취하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며 <아바타> 두 번째 시리즈의 테마로 바다를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인터뷰에서 자신을 탐험가, 다이버, 바다 애호가이자 영화 제작자라고 소개해왔기에 그가 <아바타> 시리즈에서 아득히 넓은 대양을 배경으로 삼은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수면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잊고 지낸 바다 본연의 아름다움과 즐거운 기억을 회상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는 “<아바타: 물의 길>은 가르치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느끼게 하는 영화에 가깝다. 바다에 담긴 드라마, 감정, 그리고 가족 이야기까지 잔상을 남기면서 바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싶다”며 영화의 원천을 소개했다.
달 같은 심연의 바닷속으로
2012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해저에 축적된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어둡고 캄캄한 심해에 직접 내려가보기로 결심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무려 잠수정 설계에도 참여한다. 망설임을 모르는 우직한 덕후의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이후 그는 마리아나해구에서 수심 1만908m까지 잠수하는 데 성공한다. 단독 잠수로는 당시 최고 기록이었다. “바다의 심연은 달 같았다. 아주 황량하고 고립된 곳이었다. 마치 다른 행성에 갔다온 기분이다.” 자신을 둘러싼 많은 매체 앞에서 탐사의 소회를 전한 제임스 카메론은 이어 “탐사 과정에서 찍은 영상을 3D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니 이날의 경험이 <아바타: 물의 길>의 탄탄한 기반이 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귀환을 기다리는 과학자들을 위해 심해의 진흙 샘플을 채취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해저 탐사를 향한 많은 이의 호기심과 열망까지도 두루 살필 줄 아는 탐험가다.
그는 두편의 전작을 통해 바다와 인간을 연결짓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먼저 <어비스>(1988)를 통해 지능을 가진 수중생물에 대한 환상을 처음 풀어냈고 <타이타닉>(1997)에서는 1912년 ‘침몰하지 않는 배’로 불렸으나 유빙에 걸려 결국 바닷속으로 침몰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의 이야기를 다뤘다.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 출연한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을 회상하며 “영화 초반에 일부러 타이태닉호를 무작정 돌진시켰다.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듯 바다도 지배할 거라 믿었던 시절의 모습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그는 바다와 인간이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존재로 공명을 느끼는 관계라는 자신의 뜻을 담았다. 이 메시지는 <아바타> 시리즈의 세계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익숙하지만 신선한 해양생물들
<아바타: 물의 길>을 제작하면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바로 “익숙함 속에서 신선함을 이끌어내는 것”(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이었다. 전편의 좋은 점을 관객에게 다시 보여주되 지루하고 뻔하지 않도록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새로움을 전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지는 <아바타: 물의 길>의 다양한 수중생물에게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관객에게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새로운 종을 직접 디자인하고 싶었다. 먼저 고래의 성향을 차용한 ‘툴쿤’은 웅장한 판도라의 규모에 걸맞은 생물체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툴쿤은 90m에 달하는 길이를 자랑하며 노래를 만들거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등 나비족만큼,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자랑하는 지각동물이다. 이들의 뇌에 있는 소량의 물질만 채취한 뒤 버리는 지구인의 모습은 마치 향유고래를 죽여 기름만 얻고 버리던 옛 포경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외에도 폭발음으로 음파를 방해하여 활로를 막거나 새끼를 위협하여 어미 툴쿤을 잡는 모습은 현실에서 지금도 자행되는 여느 고래 사냥을 연상시킨다. <아바타: 물의 길>은 해양 크리처를 디자인할 때 특유의 개성을 염두에 두지만 궁극적으로 생태계와 공생, 화합과 다양성의 메시지를 반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외에도 물의 부족 멧케이나족이 바다를 이동할 때 타고 다니는 ‘스킴윙’은 거대한 날치를 닮았다. 존 랜다우 프로듀서는 <엠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스킴윙의 기본 설정을 이처럼 소개했다. “날치처럼 생긴 스킴윙은 지나간 자리마다 수면 위로 흔적을 남긴다. 강한 추진력이 꼬리에 있기 때문이다. 해안가에 사는 모든 물의 부족은 스킴윙을 자신의 일상적 탈것으로 활용하는데, 전투에 임할 때에도 든든한 군마 역할을 한다. 스킴윙은 시간당 100km가량을 달릴 수 있고 유지 시간은 무한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먼저 공개된 해양 크리처도 있다. 바로 ‘일루’다. ‘월트디즈니 월드의 판도라: 아바타의 세계’(Walt Disney World’s Pandora: World of Avatar)의 ‘플라이트 오브 패시지 라이드’(Flight of Passage Ride)라는 놀이기구에서 먼저 소개된 것이다. 존 랜다우는 “일루는 스킴윙보다 훨씬 경쾌한 성격으로, <아바타>에 나왔던 다이어호스의 해양 버전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심해 다이빙에 관한 강연을 듣고 <어비스>의 시초를 떠올렸던 고등학생 소년은 이제 잠수정을 설계하고, 다른 행성의 바다생물을 디자인하고, 수중 촬영을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 생동감 넘치는 장면으로 오감을 간지럽히는 <아바타: 물의 길>을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다를 향한 제임스 카메론의 온전한 사랑과 집념이었다. 정글을 거쳐 바다까지 왔다. 그다음엔 어느 길을 열까. 제임스 카메론만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