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된 제이크(샘 워딩턴)는 아바타의 신체로 부활한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이 자신을 악착같이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른 나비족의 안전을 위해 저 먼 바닷가 지역으로 터전을 옮긴다. 전쟁과 평화, 환경과 파괴, 침략과 저항, 수탈과 보호…. 상반된 단어 속에서 제이크와 쿼리치의 간극을 조명한 샘 워딩턴, 스티븐 랭을 만나 지난 5년간의 제작기를 들어보았다.
-전편에서 새로운 사랑을 이룬 제이크는 이제 다섯 아이의 아빠가 되어 터전을 잡고 가족을 책임진다. 또 죽음을 맞이했던 빌런 쿼리치 대령은 지구의 자원 개발 기업 RDA의 유전자 기술을 통해 특수 아바타로 생명과 신체를 얻었다. 전편과 비교했을 때 제이크와 쿼리치 대령에게 각각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나.
샘 워딩턴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모두 공감하겠지만, 부모가 되면 아이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굉장히 강해진다. 마음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부모로서 제이크를 연기하면서 그 감각을 연기로 표출하려 했다. 보호, 수호 등의 태도를 특히 강조했다. <아바타>에서 제이크가 새로운 문화권에 진입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여정을 보여줬다면 <아바타: 물의 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아내와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제이크의 강한 의지와 태도, 처세가 잘 드러난다.
스티븐 랭 쿼리치 대령의 기본적인 성향은 속편에서도 유지된다. 그는 굉장히 공격적이고 잔인하고 역동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추가된 면모도 있다. 쿼리치는 전편에서 죽음을 경험했다.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이고 내밀한 경험이다. 이 사건을 통해 쿼리치는 나름대로 겸허함을 보인다. 그는 원래 겸손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띄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또 전과 달리 나비족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 한다. 중요한 건 바로 그 이유인데, 제이크를 죽이는 미션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나비족이 살아가는 방식을 따르는 것이 가장 영리한 전략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년 만의 속편이다. 짧지 않은 공백인데, 전편인 <아바타>와 비교하면 제작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 기술적으로 더 좋아진 부분도, 더 어려워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샘 워딩턴 어려워진 부분이 많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그 이점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사람이다.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것을 보여주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한다. 그만큼 배우들도 이해하고 습득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우리도 기술을 잘 알아야 제대로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에 있어 기술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통 기술의 힘을 빌릴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기술 발전에 준하는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더 많은 영감이 필요할 때도 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진 것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선을 드러내는 것, 그게 <아바타: 물의 길>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스티븐 랭 그래서 <아바타: 물의 길>에 폭발적이고 강렬한 분위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다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다.
-<아바타: 물의 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수중 장면이 많다. 직접 수영하면서 수중 모션 캡처를 진행했다고. 이 과정은 어땠나.
샘 워딩턴 평생 잊을 수 없다. 내가 물속에 있다는 것을 잊어야만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계속 잠수하고 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고 몰입하기 어려웠다. 기술이 나를 도와준다는 것, 내가 안전하다는 것. 이 두 사실을 믿고 의지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무섭기도 하고 자칫하면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위험은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배경이 물속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스티븐 랭 쿼리치는 다른 인물과 다르게 물과 친한 존재가 아니다.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계속 뭍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쿼리치는 다른 사람처럼 물속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웃음) 이런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다 같이 수중 트레이닝을 받았다. 샘이 말한 것처럼 물속에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인지하면 더 힘들었다. 그래서 명상처럼 임하려 했다. 막상 물속에 들어가면 굉장히 조용하다. 감독의 목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실제로 명상처럼 트레이닝을 따를 수 있었다.
-쿼리치 대령은 영화 안팎으로 공동의 악이 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과 그의 가족을 응원하도록 한다.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기 어려운 숙명의 빌런인데, 그럼에도 쿼리치 대령을 연기하면서 인간적으로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스티븐 랭 애틋함보다는 감정이입하는 부분이 있었다.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이해하고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인물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연결 고리를 만들고 연기해야 관객도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 연결 고리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도대체 이 인물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내가 찾아낸 답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된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 쿼리치는 내게 입체적인 인물로 보였다. 속편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와 약점을 알게 되었는데 그 지점에서 쿼리치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이어진 마지막 전투 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샘 워딩턴 그 장면을 찍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일단 배 위에서 전투를 그려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정교한 세트장에서 공간 구조를 살리며 합을 맞추는 것이 마치 다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감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촬영할 때만 해도 이게 그렇게 강렬한 장면인지 잘 몰랐다. 나중에 완성본을 본 뒤에야 알았다. 특정 액션 때문만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제이크의 사랑과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과 두려움 등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쌓여가는 방식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스티븐 랭 사실 마지막 전투 신은 리허설 때부터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번 시작하면 얼마나 힘든 여정이 될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 무엇보다 큰 배 위에서 위치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바느질하듯 하나하나 차근차근 메워나갔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려면 결국 해낼 수밖에 없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함께 작업한 시간에 대해 묻고 싶다. 그는 현장에서 어떤 유형의 디렉터인가.
샘 워딩턴 워낙 디테일에 강한 감독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는데 동시에 배우의 해석과 의도를 경청하고 존중해준다. 촬영 현장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손가락을 튕기는 제스처를 취하는지 보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내가 해냈다는 걸 알 수 있는 감독님만의 시그널이다.
스티븐 랭 확실히 두 가지 면이 모두 있다. 즉흥적으로 재량을 마음껏 펼쳐보라고 열어줄 때가 있고,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안내해줄 때가 있다. 그 사이에서 잘 맞출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샘 워딩턴 그런데 가끔은 말이 아닌 어떤 제스처로 시그널을 보낼 때가 있다. 잘하고 있는지 혹은 더 보완이 필요한지 시그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게 가능한 건 배우와 스탭을 향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신뢰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의 힘을 믿는 분위기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