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대담은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_zW6EduGSM)
송강호 안녕하십니까!
이상일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귀중한 기회를 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송강호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유랑의 달> 개봉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개봉 첫날 꼭 보겠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이상일 감사합니다. (웃음)
송강호 우리가 처음 만난 게 2001년이던가요?
이상일 제 기억에는 <조용한 가족>(1998)으로 형이 일본에 오셨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김지운 감독님과 강호 형이 오셨는데, 학생이었던 제가 아르바이트로 두분을 안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송강호 맞아요! 98년이죠?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1년 <반칙왕>(2000)으로 도쿄필름엑스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도 김지운 감독님과 같이 만났죠. 매번 이상일 감독에게 너무 감사했어요. 처음엔 통역가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일본의 거장 감독이 된 것도 정말 놀랍고요.
이상일 우리의 첫 만남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한낱대학생인 제게도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형이 연극부터 시작해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죠.
송강호 저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이상일 감독이 따뜻하게 맞아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늘 감사했습니다. <기생충> 촬영 현장에도 한번 오셨죠? 밤에 전주 세트장에서 촬영했는데, 촬영이 끝나는 새벽까지 지켜보신 후 아침 식사와 막걸리까지 한잔하고 올라가셨잖아요. 한식구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형제 같은 느낌이에요.
이상일 저는 옛날부터 형님 같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송강호 형님은 형님이죠. 제가 일곱살 많으니까! (웃음)
우리가 함께 영화를 찍는다면
이상일 배우님 작품은 모두 명작이라 생각해요. 배우님이 출연하면서 명작이 되는 것이겠죠. 그중에서도 초기작으로는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는 나의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도 한편을 꼽자면 <밀양>에서의 송강호 배우 연기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송강호 과찬이십니다. 저도 말씀드려야겠죠? 이상일 감독님 작품을 다 좋아하는데, <악인>을 최근에 뒤늦게 봤어요. 초기작인 <훌라걸스>에서 보여준 감성과 달라서 ‘이 감독은 무궁무진한 깊이와 재능을 갖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할 수 있다면 저야 너무 좋죠!
이상일 <밀양>에서 송강호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쓸쓸함을 안고 있는 시골 아저씨잖아요? 그런 고독을 안고 있기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을 알아보고 조용히 다가갈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그런 섬세한 캐릭터를 구축하신 건지 너무나 궁금했어요.
송강호 글쎄요, <밀양>은 이창동 감독님의 걸작 중 걸작이죠. 제가 어떤 인물을 해석해서 연기했다기보다 그저 이창동 감독님의 원대한 깊이에 흡수된 것 같아요. 다들 과찬의 말씀을 해주시는데 제가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이상일 이창동 감독님과 현장에서는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송강호 현장에서도 제게 말씀을 많이 안 해주시더라고요. 여자주인공이 워낙 중요한 작품이다보니 전도연씨하고만 얘기하시고 저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코나 후비고 있었죠. (웃음)
이상일 영화에서처럼 현장에서도 지켜보셨군요.
송강호 저는 연극할 때도 그랬는데, 어릴 때부터 연출가가 뭔가 구체적이고 확실한 디렉션을 줄 때가 가장 어렵더라고요. 막연하고 추상적인 디렉션을 줄 때 배우로서 신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창동 감독님의 디렉션이 좋았어요. 저는 연극을 할 때부터 정해진 답이 있는 주문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감독님의 연출 방식이 편했습니다. 그래서 이상일 감독도 다음에 저와 작품을 할 기회가 생기면 제게 말씀을 많이 해주지 마세요. 멀리 떨어져 계세요. (웃음)
이상일 그럼 구체적인 말은 안 하고, ‘오늘 어떻습니까?’ 이 정도만 묻겠습니다.
송강호 ‘오늘 좋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는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웃음)
이상일 역시 그런 관계가 베스트죠! 저는 구체적인 디렉션을 해도 결과가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송강호 그대로 되면 오히려 비정상적입니다. 감독의 디렉션이 배우에게 맞게끔 형상화될 때, 감독이 생각한 정답이 아니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더 좋지 않을까요? 주제넘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매번 그럴 수는 없겠죠. 많은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그런 연기를 해야겠죠. 이상일 감독님이 <밀양>을 말씀하셔서 드리는 이야깁니다.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