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소박하다. 20년 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 중화상창이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실종되었다. 자전거는 우리 가족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때 여섯 아이를 다 먹여살릴 수 없어 다섯째 누나를 다른 데로 보내려던 아버지를 붙잡으려고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기차역으로 내달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나를 살리려고 아버지는 자전거에 나와 어머니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도합 130킬로그램을 실은 자전거가 무사히 움직인 덕분에 나는 살아났다. 그랬던 아버지가 사라졌고, 나는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행복표 자전거를 찾기 시작했다. 고물장수 친구 덕분에 마침내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 모델 넘버가 찍혀 있는 자전거를 찾아내지만, 정작 자전거 주인은 그 자전거를 팔 생각이 없다.
대만 최초로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된 작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는 자전거 바퀴와 딱 붙어 시간을 달려온 아시아의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책을 펼치면 바닷가 포격을 피하려고 생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아이가 등장한다. 이어 과거를 향해 달리듯, 일치시대(일본의 대만 지배 시기)와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말레이반도에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현지 자전거를 징발하여 ‘은륜부대’로 활용했다. 서구의 압제에 맞선다는 기쁜 마음으로 입대한 군인들을 기다린 것은, 모기와 독사와 가시 식물과 진흙탕이 지옥처럼 뒤얽힌 밀림이었다. 과거 군인들이 대면한 현실이 궁금해 무모하게도 자전거를 끌고 밀림에 들어간 어느 사진가는, “극한의 아름다움은 공포다”라는 말을 몸소 확인한다. 아름답고도 악의적인 숲을 통과한 이 경험은 아시아 현대사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나비 수천만 마리를 잡아 공예에 이용하고 해외로 수출한 대만의 나비 산업 이야기며, 태평양전쟁 막판에 물자가 모자라 동물원의 동물들을 다 죽여야 했던 상황 속에서 코끼리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비밀 작전을 펼친 이야기까지, 이제는 옛이야기가 됐지만 여전히 오늘처럼 생생한 일화들이 자전거와 함께 펼쳐진다.
233쪽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건 한 사람의 인생과 진정으로 만나는 것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