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2023-03-21
글 : 진영인 (번역가)
이길보라 지음 / 창비 펴냄

가족을 보듬어주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공동체로 갈수록 부모는 ‘고졸’ , ‘자영업’, ‘특이사항: 청각장애인’으로 분류되며 점점 멀어졌다는 고백.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감독이자 작가 이길보라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공간도 있다. 농인의 천국이라 불리는 갤로뎃대학교는 미국 수어를 공용어로 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농인 앞에서 음성통화를 하면 정보 소외가 일어나기 때문에 음성전화가 오면 숨어서 받거나 영상통화 혹은 문자메시지로 바꾸어 소통해야 한다. 이렇게 농문화가 존중받는 공간에서는 같은 농인이라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고 때로는 갈등과 어둠이 존재한다고 머뭇거림 없이 드러낼 수 있다.

이길보라 감독은 영화를 상영하고 글을 쓰면서, 코다를 비롯하여 단선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여러 존재를 마주한다. 다큐멘터리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일본에서 상영했을 때, 자신을 재일조선인이라 소개한 어느 관객은 영화가 “자신의 삶의 경험”과 정확히 만난다고 감독에게 알려왔다. 북한과 남한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며 일본 정부에서도 지원하지 않는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들의 삶이, 농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코다와 닮았다는 깨달음을 구하게 된다. 또 미등록 이주아동을 인터뷰한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으면서, 이주민 2세대가 어린이 시절부터 집과 관련된 서류 처리며 전화를 떠맡게 되는 ‘애어른’이라는 점에서 코다와 비슷하다는 점도 알게 된다. 소수자가 당사자로서 제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고 가시적이고 보편적인 흐름이 되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고민한다. 환경 운동부터 생활동반자법, 돌봄 문제까지 새로운 법과 제도가 필요하고 새로운 정치 활동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변화를 위한 문턱은 아직 너무 높은 것 같다. 수십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동권 투쟁만 해도 여전히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이다.

59쪽

“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존재와 삶을 경유하여 국가, 민족, 언어, 문화의 경계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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