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구교환이 픽한 '슬램덩크' 최애 캐릭터는?
2023-04-04
글 : 김소미
사진 : 최성열

그는 여태 한번도 조용한 적 없었다.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겸한 단편영화들과 예외성으로 일관한 독립영화 캐릭터들로 살아갈 때 그는 자기 말마따나 늘 “아우성거렸다”. <꿈의 제인> <반도> <모가디슈> <괴이> 등을 거치는 동안 <씨네21>은 구교환과 꾸준히 마주 앉았지만, 3월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제외하고도 총 5편의 신작(<탈주>, 시리즈 <D.P.> 시즌2, <기생수: 더 그레이> <왕을 찾아서> <신인류 전쟁: 부활남>)으로 기대감에 불을 지피고 있는 이 배우의 근황을 지켜보며 그 왕성한 활동력의 근원에 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뻔한 해석을 향한 구교환의 저항심은 한결같았다.

짙은 정념과 유머, 모종의 쓸쓸함을 동반하는 구교환의 낯선 연기는 이 배우의 자질을 타고난 본능에 기대어 서술하는 일이 얼마나 역부족인지 절감하게 한다. 그의 개성은 영화제작과 현장의 원리를 직접 살핀 경험과 생동하는 직관을 조우시키려 꾸준히 자신의 기량을 다듬어온 사람의 것이다. 이런 배우 앞에서 ‘날것’의 신화는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때때로 전형을 가뿐히 박살내버리는 구교환의 성취가 자신의 특이점을 과시하고 싶은 배우의 나르시시즘으로 여겨지지 않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통제된 상황 안에 최대치의 변칙을 가미하려는 배우 자신의 창작열로부터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구교환은 이런 활동을 종종 유머, 실험, 농담 같은 말로 수식하곤 했다.

-연초 <씨네21>의 ‘매니지먼트는 지금‘ 특집 취재 당시 나무엑터스 사장실에 깜짝 등장해 감동적인 멘트를 남기고 사라졌다고. 오늘 매니저 말을 들어보니 회사 사무실에 가장 자주 방문하고 오래 머무는 배우 중 하나라고 한다.

= 강남에서 마땅히 갈 데가 없어서는 아니고…. (웃음) 스케줄 사이에 시간이 애매하게 뜨면 사무실 가서 (김종도) 사장님과 수다를 떤다. 마음이 마냥 찰싹 붙는다기보다 서로를 설득하는 관계다. 시나리오를 읽는 시선, 작품 선택에 있어 신중함과 과감함의 정도가 조금씩 달라서 합이 좋다. 나는 마음이 너무 잘 맞는 사람과는 오히려 불안하다. 아무래도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은 열망이 내게 있나보다.

- 공개될 신작과 촬영 중이거나 촬영 예정인 작품이 줄줄이 있다. 그런데도 여기서 더 밀어붙이고 싶나.

= 요즘 하는 생각은 ‘더 할 수 있겠다’이다. 아마도 그동안 많이 참아왔던 게 아닐까? 촬영하러 갈 때마다 의무적으로 필요한 일을 한다기보다 내 몫만큼 잘 놀고 온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요즘은 모니터실에서 잡담을 많이 하는 편이다. 팟캐스트로 치면 ‘코너 속의 코너’의 진행자처럼.

- 모니터실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추구하는 스타일은.

= 현장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무질서한 영감을 얻는다. 감독님의 모니터 위에 한라봉 하나가 올려져 있다면, 그 한라봉에 눈을 그려주고 그걸 주제로 한참을 떠든다. 최근 제주도에서 <왕을 찾아서>를 촬영하면서 생긴 일이다.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다정한 돌멩이가 생각나는데.

= 정말 그렇네. (웃음) 제주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제작진들 고생이 많았는데 어느 날 원신연 감독님이 모니터 위에 한라봉을 올려둔 순간부터 날씨의 영향을 안 받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 얘기가 좋아서 감독님이 한라봉을 더욱더 애정할 수 있게 눈·코·입을 그려주었다. 이 친구가 정말 영험한 것이 이후로 날씨로 인한 딜레이가 정말 줄어들었고 비가 와도 점심시간에 오곤 했다. 무언가 마음처럼 안되는 게 있을 때 가능한 한 기분 좋게 받아들이려 한다. 말하자면 징크스라는 건 그것 나름대로 일을 순탄하게 만들어주는 면도 있으니까.

- 그 밖에 일하는 태도에 좋은 영향을 주는 구교환만의 의식이나 루틴 같은 게 있나.

= 아침에 촬영 가기 전에 4~5km 정도 달리는 것. 딱 기분 좋을 만큼. 그렇게 한 지 꽤 됐다. 부기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어서 나름의 생존법으로 뛰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일종의 러너스 하이를 경험해버렸다.

- 하루키형 배우인 건가. (웃음)

= 정말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멋있어서 시작한 것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쪽은 아니다. 음악에 몰입한다. 음악에 따라 뛰는 속도와 강약이 달라지니까. 선곡은 그날의 테마에 따라 다른데 ‘총총총’ 보사노바틱하게 뛰고 싶을 땐 <청혼>을 듣는다. 굉장히 터프하게 뛰고 싶은 날에는 <록키> O.S.T. 오래된 발라드에 맞춰 달리는 것도 좋아한다. 내 플레이리스트의 사골,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혹은 그보다 좀 더 힘 있고 빠른 템포의 도입부로 시작하는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도 자주 듣는다.

- 연기도 달리기도 자기만의 절묘한 리듬을 찾아 해내는 것 같다.

= 재밌어야 또 뛰니까. 그게 무엇이든 행동하는 재미를 찾아내려 한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연기가 가장 즐기는 일이 아니라면 지금의 생활이 누군가에겐 고난일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완전히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매번 궁금하고, 더 더 해내고 싶은.

- 이런 의욕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인가. 배우로서의 동기가 일종의 발화점을 갖게 된 것은.

= 주변의 조력 덕분이지 않을까. 연기에만 집중하도록 주변에서 도와주는 환경 안으로 진입했다. 지금의 내 역할은 촬영장에 가서 열심히 연기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레이업슛 하는 강백호의 심플한 마음 같은 걸 생각해본다. “두고 온다.” (<슬램덩크> 속 강백호의 대사. “무릎을 부드럽게, 높이 뛰어올라, 두고 온다!” -편집자)

- 구교환의 <슬램덩크> 최애 캐릭터를 물어도 될까.

= 황태산! 아니다, 전권을 다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 버전으로 고르자면 송태섭? 나 역시 청년기를 <슬램덩크>와 함께 보냈고 특히 송태섭을 좋아했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에서 성원이 이마로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디어를 냈었다. 그때 내 머릿속 어디에서 이런 이미지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망치 가방을 이마에다가 멘 송태섭의 영향이더라. 송태섭과 한나의 로맨스, 볼을 운반하는 사람의 숙명 같은 것에도 늘 반응했다. 그러고보니 농구를 볼 때도 주로 포인트 가드(팀이 공격할 때 적재적소에 공을 공급하는 민첩한 플레이어)를 좋아했다. 공을 뿌리면서 상황을 쌓아가는 데 기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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