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로 사는 일의 즐거움이 이런 걸까?"
- 구교환의 2020년대는 상업영화로의 진입, 그리고 SF·좀비물 등 한국 장르영화의 주역으로 변신하는 시기로 수식할 수 있겠다. 다가올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액션 스타로서 입지를 굳혀가는 행보 또한 흥미진진하다.
= 내 변화가 제일 놀랍고 신기한 사람이 나일 거다. 액션은 계속해서 익숙해지고 함께하는 과정 속에 있다. 현장에서 무술팀이 “하네스 와이어 해본 적 있으세요?” 물으면 “네”, “매트 촬영 해본 적 있으세요?” 그러면 “네”, “디지털 캐릭터 만들 때 스캔 따는 작업 해본 적 있으세요?” 거기에도 “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됐다. 적성 검사의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채워나가는 이상한 자부심이 든다. (웃음)
- 블록버스터의 주연으로 극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역할도 커지고 있다. 1980년 비무장지대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만나는 군의관 역할로 나오는 <왕을 찾아서>에선 어떤가.
= 러닝타임에서 책임져야 할 비중이 많은 영화여서 어깨가 무거운데 그만큼 즐거움도 크다. 예전엔 분량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주의였다면 이제는 나라는 배우를 바라봐주는 장면이 많은 작업이 주는 그것대로의 재미와 의미를 인정하게 됐다. 그동안 장르물 프로덕션에서 체득한 것과 과거의 독립적인 작업들 속에서 비선형적으로 움직였던 감각을 믹스하는 실험을 해보고 있다. 더 잘 섞어보고 싶달까. 내 식대로 해석한 테이크에 오케이가 떨어지더라도 한 테이크 더 나아가보기도 하고, 어떨 땐 내 안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기도 한다. 얼마 전 <왕을 찾아서> 촬영장에서도 좀더 곡예적으로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나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구현하는 레벨의 높낮이를 잘 가늠하고 조절해보는 연습 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 <반도> <모가디슈>에서 쌓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길복순>에선 C급이지만 실력만큼은 A급인 청부회사 소속 킬러의 안무적인 움직임을 유려하게 해냈다.
= <길복순>에선 슥 등장해서 툭 퇴장하고 싶었다. 내가 연상한 한희성의 이미지는 길복순 옆에서 그녀의 옷깃 끄트머리를 살짝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액션 역시 혼자한다기보다 주요 장면에서 마치 팀플레이처럼 한 데 뒤섞인다. 그래서 안무라는 말이 어울리는데, 내겐 무척 매력적인 요소였다.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의 색을 입은 캐릭터가 되어보고 싶은 호기심, 그리고 감독 지망생으로서 그의 연출론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망설임 없이 합류한 영화다.
- 감독 지망생이라는 말은 너무 겸손 아닌가!
= 연출 후배란 말은 어떨까. (웃음)
- <D.P.>의 한호열은 인간 구교환 본연의 개성이나 매력을 보여줄 기회가 가장 많아 보이는 캐릭터이고, 첫 시즌제 드라마 주연작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할 듯싶다.
= 맞다. 처음엔 한번 해낸 임무를 다시 또 한다는 게 내 취향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즌2를 작업하면서 예측은 부서졌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환경이 바뀌면 배우는 결국 처음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호열은 내가 가진 어떤 면을 최대한 만화적으로 끌어올리는 캐릭터여서 리액션에 공들였다. 그 대척점에 <킹덤: 아신전>이 있겠다. 나를 가능한 한 닫아버리는 작업이었다. 그땐 오직 눈빛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의 최대치를 보고 싶었다. 배우로 사는 일의 즐거움이 이런 걸까? 인물을 조형하고 컨셉을 잡아가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나는 게임을 할 때도 캐릭터를 꾸미는 데 1시간을 쓰고 정작 본게임은 2분 하다가 꺼버리는 유형이다.
- <탈주>는 <모가디슈>에 이어 북한인을, 그리고 <D.P.>에 이어 군인을 연기한다는 면에서 오히려 자신감이 엿보이는 선택이라고 해두고 싶다.
= 외피상 이전에 한 역할들과 연결점이 있는 동시에 완전히 다른 캐릭터다. 그래서 오히려 과감한 변주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탈주>의 북한 보위부 장교 리현상은 남다른 카리스마의 소유자이고, 꽤 멋있는 남자다. (웃음) 태준기는 관객이 직접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게 만드는 캐릭터였다면, 리현상은 거침없이 문을 열어 자기 내부를 보여준다.
- <기생수: 더 그레이>는 연상호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에 괴수 호러란 점에서 배우의 새로운 리액션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데.
= 상황이 내게 계속 칼을 쥐여주고 앞으로 나아가 거칠게 돌파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거기에 너무 함몰되지 않도록 나름의 해석과 저항 정신을 계속 더하는 게 포인트였다. 설강우는 일종의 건달같은 인물인데, 그동안 장르영화에서 묘사되어 온 클리셰를 최대한 피하고 겉보기와는 다른 면을 살려 표현해보고 싶었다.
- 웹툰이 원작인 <신인류 전쟁: 부활남>도 독특하다. 죽으면 3일 만에 부활하는 능력을 얻게 된 만년 취준생으로 분할 예정이다.
= 요즘 한창 프리프로덕션 중으로 5월 정도에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백종열 감독님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작업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앞서 감독님과 두번의 CF 작업을 하면서 나를 두고 <신인류 전쟁: 부활남>을 향해 서서히 시동을 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로서는 꽤 유용한 카메라 테스트이자 리허설을 거쳤던 셈이라 본 촬영이 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