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천안 책방 노마만리에서 만난 한상언 대표와 영화 서적들
2023-04-07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희귀한 고서와 지식의 장소

기온이 부쩍 올라간 3월 끝자락에 찾은 책방 노마만리는 중정을 개방해 완연한 봄기운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서울 남부에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저수지의 낚시터를 너른 배경으로 품은 3층짜리 건물인 이곳은 한상언 영화사 연구자가 지난해 5월 말에 문을 연 영화 책방이자 카페다. 식민과 분단을 주제로 한국 영화사와 북한 영화사, 영화 운동사를 연구해온 그는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영화 운동의 최전선> <해방공간의 영화·영화인> <조선영화의 탄생>, 월북 영화인 시리즈 <문예봉 전> <강홍식 전> <김태진 전> 등을 썼다. 처음엔 영화 연구차 시작한 일이 수집광의 기질을 자극해 어느새 내로라하는 고서 수집가가 됐다. 특수자료실로 등록된 남양주의 한상언 영화연구소에 보관된 북한 관련 도서만 약 5천점이다. 노마만리에선 영화 책, 잡지, DVD, 1920~30년대 영화 전단 등을 포함해 약 3천점이 공개되어 있다. 강단을 뒤로한 채 아내와 함께 연고도 없는 천안으로 내려온 지 1년 남짓. 책방 주인이 된 수집가는 이제 자신의 터전을 전시 공간이자 도서관, 그리고 각종 영화 모임과 강좌가 열리는 충청남도의 예술 실험소로 가꾸어나가는 중이다.

▼<노마만리> 초판본, <대구일일신문> 유일본, 조선도서관협회 문서철 등이 전시되어 있는 노마만리 2층.

▼영화 잡지는 “영화사를 서술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보고”라는 한상언 대표. 현재 노마만리의 주요 전시는 동아시아의 초창기 영화 잡지를 모아보는 기획으로, 1층 입구엔 중국 <대중전영>, 2층 계단 옆 서가엔 <기네마준보>, 2층 안쪽 서가엔 북한의 <조선영화>를 배치했다.

▼“전쟁 이후 <영화예술>이 폐간하자 북한에서 새로 생겨난 영화 잡지가 <조선영화>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조선 시리즈’ 잡지가 나왔다가 1968년에 대부분 폐간되었다. 이후 신상옥 감독의 영향 아래서 <조선영화>가 복간된다. 잡지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완전 폐간되었다. 현재 노마만리에서 전시 중인 책들은 1960년대 책이다.”

▼<영화예술>의 복간 50호 기념 특집호가 보인다. <영화예술>은 1965년 4월 창간해 90년대 중반까지 정간과 복간을 이어가며 1960년대 영화 담론과 한국 영화문화를 이끌었다.

▼올해 2월에 김종원영화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을 마친 노마만리 3층. 시 공간이자 카페의 성격이 강했던 1, 2층과 달리 3층은 영화 도서와 잡지, DVD 등이 가득 차 있다.

▼책방 노마만리의 이름은 김사량의 항전기행문 <노마만리>(駑馬萬里)에서 따왔다. 1980년대에 월북, 납북 작가들의 해금이 이뤄질 무렵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김사량은 해방 전 일본어로 소설을 쓴 조선인 작가다. 중국 북지전선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독립운동의 기지 연안으로 가는 김사량의 광활한 여정이 담긴 <노마만리>는 주로 평양 국립출판사에서 간행한 <김사량 선집>(1955)으로 읽혔으나, 평양 양서각에서 처음 출간된 1948년 판본은 국내외 어느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속 왼편에 만리장성이 그려진 낡은 책이 이 양서각 초판본으로, 한상언 대표가 중국의 중고책 거래 사이트를 뒤져 구해낸 국내 유일의 소장품이다.

▼책방 창고에서 나온 희귀 자료들. 서광제의 북한 여행기 <북조선기행>(1948), 안철영의 할리우드 스튜디오 탐방기 <성림기행>(1949) 등. 영화 <어화>(1939)를 연출한 안철영 감독은 미군정청 예술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영화산업을 시찰하는 역할로 할리우드에 건너가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취재했다.

▼한상언 대표가 아끼는 두 영화소설. 카프 영화(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으로부터 태동한 영화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1930년대 일군의 작품들)인 <류랑>(1928)과 <노래하는 시절>(1930)의 시나리오다.

▼영화소설 및 잡지인 <영화시대>(1930)의 한 페이지. 신인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영화 <춘풍>의 여성배우들이 소개되어 있다.

▼노만의 <한국영화사> 철필 등사본. 1959년부터 <영화예술> 편집장 등을 지낸 노만 선생이 마땅한 교재가 없었던 한국배우전문학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등의 수업에 쓰기 위해 1963년 저술한 교재다. 1962년 월간 <국제영화> 5월호부터 약 10회 연재한 ‘한국영화사’가 바탕이 됐다. 정식 출간된 단행본이 아니기에 그동안 영화사가들 사이에서 선행 연구로만 언급됐다가 2023년 2월 노만 선생이 90살을 바라보는 시점에 인쇄본으로 정식 출간됐다.

▼ 주변 영화광, 평론가들이 기증한 개봉 영화의 팸플릿, 포스터, 보도 자료 등도 2층 서가 곳곳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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