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와 문소리, 문소리와 김희애. 두 이름이 서로를 끌고 밀어주면서 검은돈으로 물든 대한민국 정치판에 역전의 드라마를 쓴다. 이 이야기,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퀸메이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두 배우가 작품 공개를 앞두고 나란히 앉아 환담을 나눴다. 기획과 캐스팅을 향한 대중의 뜨거운 환영 속에서 여성배우 주연작에 대한 달라진 바로미터를 살피고, 6부까지 미리 확인한 작품 내용도 소개한다.
4월14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11부작 시리즈 <퀸메이커>는 선거판으로 걸어들어간 <델마와 루이스>의 이야기다. 이번에도 여자들은 자기 알을 깨고 나왔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퀸메이커>의 두 여걸 주인공이 뛰어든 곳은 모뉴먼트 밸리보다 험난한 대한민국 선거판. <퀸메이커>의 결정적 재미는 사실 ‘김희애가 문소리를 서울시장 만드는 드라마’라고 다소 부박하게 압축해도 좋을 만큼 적나라하게 짜릿한 데가 있다.
<퀸메이커>는 각성과 메이크오버의 서사다. 평사원에서 은성그룹 전략기획실 실장까지 올라간 황도희(김희애)는 재벌가 인사들의 온갖 추문과 비리를 덮는 데 써온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로, <퀸메이커>의 서두는 그 재능을 증명하는 데 쓰인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상무 은채령(김새벽)을 위해 그가 준비한 카드는 철저하고 다채롭다. 우선 갓 출시된 명품으로 치장한 ‘블레임룩’으로 주의를 분산시키고, 검찰 앞 취재진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순간을 노려 출산 후 탈모의 흔적을 보여준 뒤, 이윽고 조사실에서 모유 수유 중인 장면을 노출시켜 육아 커뮤니티의 동정 여론을 이끌어낸다. 필요하다면 재벌가 실세들에게도 난감한 주문을 할 수 있을 만큼, 황도희는 유능한 해결사로서 권력을 쥔 것처럼 보이며 때때로 그들과 동등해 보이기까지 한다.
착각은, 오경숙이라는 ‘정의의 코뿔소’와 부딪치면서 깨진다. 백화점에서 부당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해 고공 농성 중인 오경숙을 황도희가 저지하러 간 자리에서 둘은 처음 만난다. 후줄근한 거리의 변호사와 킬 힐 위에 올라탄 전략기획실 실장의 만남을 계기로 황도희에겐 운명처럼 외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은성그룹의 사위이자 차기 서울시장 후보인 백재민(류수영)이 저지른 성범죄를 알지 못한 채 자신 또한 어느 젊은 여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성하게 되는 것이 도화선을 이룬다. 그렇다면 누구를 또 다른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워 재벌가와 싸울 것인가? 도희는 경숙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그를 탈바꿈시키는 데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기로 한다. 자본주의의 첨탑에서 쫓겨난 여자가 높은 구두에서 내려오고, 퀴퀴한 재야의 스타는 세련된 쇼트커트를 하고 정치라는 쇼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순간, <퀸메이커>의 쇼도 비로소 시작된다.
퀸메이커 서사의 탄생
수많은 킹메이커 서사는 있었지만 퀸메이커는 드물었다.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한국 정치판을 무대로 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사실 일종의 버디물로서 이어질 수순을 예측하기란 쉽다. 삿대질하던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설 것이고 언젠가는 끌어안고 말 것이다. 퀸과 퀸메이커의 관계는 필연적인 실망과 배반도 동반할 것이다. <퀸메이커>는 이처럼 관계가 흘러갈 명확한 방향성을 애써 가리지 않되 초반의 딜레마를 끈기 있게 묘사해 감정적 토대를 다지는 편을 택한다. 약간의 기다림으로 더 큰 불꽃을 틔우려는 초반 전개 속에서 드라마의 전반적인 톤 앤드 매너도 확실히 감지할 수 있는데, 캐릭터 구성 면에서는 도전적인 시도를 추구하는 한편 대사와 리듬감, 감수성적 측면에서는 재벌가를 둘러싸고 욕망과 복수의 화신들이 대결하는 한국 드라마의 전통을 잇는다. 어떤 면에서는 안정이고, 어떤 면에서는 ‘첨단의 여성 서사’라기엔 다소 괴리가 있는 이 결과물을 마냥 냉정히 비판하기는 어렵다. 4050 중년 여성배우의 투톱 주연물이 희귀하다시피한 상황에서(여전히 30년 전의 <델마와 루이스>가 좋은 사례로 비교되는), 여성 투톱 드라마 중 독창적 시도로 상찬받는 <구경이>가 평단과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2%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퀸메이커>는 말하자면 광범위한 시청자층을 향한 설득력을 염두에 둔 드라마이고, 이미 영리하게 홍보하고 있는 대로, 김희애와 문소리라는 두 거대한 기둥이 만들어내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자극과 깊이를 발생시킨다. 배우 김희애가 이번 <씨네21>과의 만남에서 “시청자들이 의지를 갖고 클릭해서 보아야만 하는 OTT 오리지널 작품에 배우로서 여전히 호출받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대답한 것은 그래서 꽤나 의미심장하다. 1984년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해 올해 데뷔 40년차. 그사이 한국 드라마 시장의 지형도가 변화하는 과정의 선두에 있었던 배우인 김희애는 KBS 특채 탤런트에서 MBC의 간판 스타로, 지상파에서 종편으로, 그리고 이제 첫 OTT 오리지널 시리즈에도 이름을 올린 셈이 되었고, 그가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동료 여성배우들은 더이상 가족 관계의 범주가 아니라 정재계 요직의 걸출한 얼굴들로 만나게 됐다. <퀸메이커>에서 전형이 개성으로 변모하는 많은 순간들은, 김희애와 문소리 그리고 서이숙, 진경, 옥자연, 김새벽, 윤지혜, 김호정, 김선영이라는 이름들이 저마다의 권력을 쥐고 휘두를 때 완성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배우 김희애, 문소리와의 대담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