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의 방법론에 중요한 담론을 제시했던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가 한국을 방문했다. 전주영화제를 찾은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은 레드 카펫에서 손가락 하트를 하며 인사하고, 마스터클래스와 GV 등 공식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며 영화제 관객을 살뜰히 만났다. 그들의 첫 내한을 성사시킨 신작 <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 아동 문제를 다룬다. 체류증을 받지 못한 토리와 로키타는 합법적인 생존을 위해 불법적인 노동을 이어가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다.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언제나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의 삶을 담아왔지만, 최근 작품에서 그 범주는 유럽에서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로 확장되고 있다. 전주영화제 기간 중 다르덴 형제 감독을 만나 그들의 영화가 현실과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 들었다.
- 2014년 전주영화제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세 감독의 초기 다큐멘터리영화를 조명하는 ‘출발로서의 다큐멘터리: 세 거장의 기원’이라는 기획전이 열렸다. <레옹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강을 내려갈 때>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했다> <어느 임시 대학의 강의> <조나단을 보라, 장 루베의 작품 세계>가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두 사람에게 전주영화제는 어떤 곳인가.
뤽 다르덴 원래 2020년에 오기로 했었는데 아쉽게도 팬데믹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사실 영화사 진진에서는 20년 전부터 한국에 와달라고 얘기했고 우리도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쉽지가 않더라. <토리와 로키타> 프로모션을 위해 여러 국가를 다니면서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절감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 GV 등 여러 공식 일정 때문에 전주영화제에서 다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한국영화를 통해서만 알고 있던 한국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것 같아 기쁘다.
-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에 이어 <토리와 로키타>까지 최근 세편의 영화 모두 벨기에의 비백인 이민자들이 등장한다. <약속>도 이민자 이슈를 다뤘지만 당시 주인공은 백인이었다. 최근 유럽 난민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 피에르 다르덴 수년 전 어떤 신문 기사를 읽었다. 유럽에 이민 오거나 난민 신청을 한 수백명의 아이들이 쉼터에 가지도 못하고 떠돌다가 만 18살이 되도록 체류증을 받지 못하면 결국 마약 밀매상 같은 음성적인 조직에 몸담게 된다는 거다. 범죄에 내몰린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러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곤 믿기지 않아 취재를 하다가 2008년에 썼던 시나리오 초고가 떠올랐다. 당시엔 두 아이를 둔 이민자 여성의 이야기였다. 난민 신청을 한 국가에서 쫓겨나면서 미성년자인 아이들만 남게 된다.
- 그러다 실제 친남매가 아닌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뤽 다르덴 이민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데, 소년과 소녀가 돌아가며 서로의 엄마 역할을 해주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매춘에 가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로키타가 마약 재배소에 갇히면서 주인공들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상황을 그렸다. 우정이라는 메시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약 범죄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배신하는 경우도 많은데, <토리와 로키타>는 목숨 걸고 끝까지 서로를 지켜내는 숭고한 우정을 표현한다. 이들의 난민 신청을 받아주는 쉼터가 곧 토리와 로키타의 우정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 다르덴 형제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노동’과 ‘자본’이다. <토리와 로키타> 역시 불법적으로 돈을 축적하는 검은손이 약자들의 노동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매우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그 구조적 문제를 파헤친다. <아들>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 등 전작이 개인의 딜레마와 내면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시스템의 문제를 다룬다. 과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작품에선 사회 고발에 가까운 디테일이 엿보인다.
장 피에르 다르덴 <토리와 로키타>는 사회 고발을 목적으로 한 영화가 맞다. 토리와 로키타가 처한 현실 때문에 그런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은 난민이라는 이유로, 이민자라는 이유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다. 어떤 나라의 청소년이든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만 18살이 됐을 때 체류증을 받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핍박받고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 벨기에 출신 백인 감독이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어쩔수 없이 부딪치는 당사자성의 문제가 있다. <소년 아메드> 때도 무슬림이 아닌 감독이 연출할 때 생기는 한계를 지적하는 리뷰가 있었다. 원래 잘 알지 못했던 세계를 다룰 때 감독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하나.
뤽 다르덴 만약 흑인 감독이 <토리와 로키타>를 만들었다면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 그들의 희로애락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같은 작업을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가 해낸다면 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빈곤하고 폭력적인 사회를 겪어본 적이 없지만 그들 입장에 서서 소설을 쓸 수 있고, 그것은 토니 모리슨의 소설과는 다른 작품이 된다. 나이가 많은 백인 남성인 우리가 한국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찍는다면 당연히 한국인이 만든 영화와 다른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다르덴 형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 로키타가 구강성교를 강요당하고 강제로 누드 사진을 찍는 등 강도 높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착취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윤리적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장 피에르 다르덴 이런 대답이 다소 뻔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얘기한 장면을 찍을 때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가해자 베팀의 입장이 아닌 로키타의 반응에 중점을 두고 촬영해야겠다고 생각한 신이었고, 로키타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프레임 밖에 두도록 설정했다. 가해 행위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연출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은 따로 있었다.
- 어떤 신이었나.
뤽 다르덴 먼저 마약 재배소에서 마르고가 로키타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장면.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두신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현장에서 두 사람이 복도에서 로키타 방까지 걸어가는 신을 롱테이크로 찍게 됐다. 마르고와 로키타가 함께 걷다가 로키타가 쓰러지고 공황 발작을 일으키지 않나. 관객 입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걸을 때 리듬감을 담아내는 것이 필요했고, 카메라가 같이 움직이게 됐다. 그리고 마르고가 언쟁하다 로키타를 밀고 침대에 앉혀버리는 신도 까다로웠다.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크레센도처럼 점점 강도가 높아져야 했기 때문에 연출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는 로키타가 혼자 냉동고에 남아 음식을 정리하다 혼잣말하는 신이다. 배우 졸리 음분두 혼자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장면이었다. 지금 말한 장면들을 찍기 위해 이틀이 소요됐고, 총 43번의 테이크를 갔다. 영화에 쓰인 건은 42번째 테이크다.
- 다르덴 감독의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주인공들을 쉽게 동정하거나 사회의 관습하에 해석하지 않도록 만들어 훨씬 깊은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토리와 로키타>의 두 주인공은 상황만 놓고 봤을 때 관객이 동정하기 쉬운 인물들이다. 관객과 이들의 거리감을 어떻게 설정하고 싶었나.
장 피에르 다르덴 <토리와 로키타>의 주제가 다른 영화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디선가 봤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토리와 로키타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객이 최대한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고, 결국 두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 많은 관객이 엔딩에서 로키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용서와 관계 회복에 대한 답을 유보하던 전작과 달리 굉장히 극단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뤽 다르덴 오늘날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다.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마약 조직에 몸담게 된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본 관객은 로키타의 죽음을 보고 무척 부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정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토리를 살려낸 로키타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각자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우리가 잘 모르는 존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체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거나 소외된 사람의 당사자이거나 이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연민이란 감정이 반복되면 지치기 마련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지치지 않는 길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장 피에르 다르덴 그것은 우리의 역할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편집에 이르기까지 신파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할 수 있게끔 절제하려고 한다. 또한 토리와 로키타가 마리오네트 같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이 주인공들을 연민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미니멀하게 영화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감정이 우러나오도록 하고 싶다.
뤽 다르덴 토리와 로키타를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두 아이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래서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이 필요했다. 토리가 로키타를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든지 침대를 뛰어다니며 장난치고 학교 문제를 두고 싸우는 장면 등 이들이 처한 어려운 문제에서 도피해 평범한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장면이 들어갔다.
- 영화를 본 관객은 로키타를 잃은 토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대체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주인공의 앞날을 공백으로 남겨두고 마무리된다.
뤽 다르덴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의 미래를 함께 생각한다. <약속>에서 이고르가 아시타를 만나러 간 다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우리 역시 고민한다. <토리와 로키타>에서 11살의 남자아이가 진정한 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토리는 나디아나 바바라 등 쉼터에서 만났던 믿을 만한 성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학교도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베팀과 그 일당을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토리가 더이상 마약을 팔 일도 없을 것이다. 부디 토리가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다르덴의 카메라’라는 말이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당신들의 촬영 방식이 세계 영화사에 미친 영향이 막대하다. 주인공 어깨너머 높이의 카메라, 종종 엉뚱한 곳을 찍기도 하는 롱테이크 촬영, 관객 또한 프레임 안에 함께 갇힌 듯한 폐쇄적인 느낌 등이 그 특징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던 시절부터 <약속>으로부터 이어지는 극영화까지 당신들의 카메라가 지켜온 논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변모해왔다고 생각하나.
장 피에르 다르덴 난니 모레티가 에두아르도 데 필리포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이런 말을 전해준 적이 있다. 스타일을 찾는다면 죽음을 찾게 될 것이고, 인생을 찾는다면 스타일을 찾을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영화는 삶 그 자체를 녹여내기 때문에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카메라 앞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극영화도 마찬가지다. 다르덴 형제의 무빙 스타일이라고들 하는 게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인물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롱테이크나 핸드헬드가 뒤따르게 된 것이다.
뤽 다르덴 작업을 하다 보면 스타일은 저절로 따라온다. 우리가 예전에 해봤던 방식이었다고 상기하며 촬영에 임하면 안된다. 뭐든지 처음 접하는 느낌으로 좋은 재료를 찾아야 한다. 도전 정신이 있어야 원하는 스타일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한번도 안 찍어봤던 장면을 연출할 때 오히려 더 즐겁다. <토리와 로키타> 첫 장면에서 앉아 있는 로키타를 고정된 카메라로 2분30초 동안 찍은 것도 처음 도전하는 촬영 방식이었다.
- 특히 2010년대부터 만든 최근작에서는 마리옹 코티야르 같은 유명 배우와 함께하기도 했지만 <토리와 로키타>에서 다시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했다. 토리 혹은 로키타쪽을 안정적인 연기력을 가진 기성 배우로 캐스팅하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장 피에르 다르덴 어쩌면 로키타 역에 훈련된 배우를 캐스팅했을 수도 있다. 시나리오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11살 소년과 16살 소녀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아예 연기 경험이 없거나 경험이 있다 한들 필모그래피가 한두편밖에 없는 친구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처음 하는 친구들의 맞은편에 서서 그들의 시작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감독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고 아름다운 순간이 아닌가 싶다.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는 <토리와 로키타>로 배우 경력을 시작한 이후 이미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 극영화를 만든 이후에도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장르, 이를테면 판타지영화처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뤽 다르덴 (농담으로) 뮤지컬영화를 만들어볼까? 우리 스타일대로 만들면 꽤 괜찮을 줄 누가 알겠나. (웃음) 역사영화를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이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을 하기로 했다.
장 피에르 다르덴 나도 동생과 같은 생각이다. (웃음)뤽 다르덴 이 얘기는 단독 기삿감이다. 하지만 ‘어쩌면’이라고 했지 우리의 진짜 차기작이라고는 안 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