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넓은 멀티버스 우주에는 수많은 스파이더맨이 존재한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스파이더맨들이 마치 아파트 반상회 모임 나오듯이 우주를 넘나들며 한데 모이기도 한다. 사는 우주는 달라도 슈퍼히어로의 삶과 운명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스파이더버스 특유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보면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다양한 스파이더맨들에게 감정이입하기 쉬울 것 같다. 복잡한 미로의 정답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멀티버스와 이번 영화의 새로운 뉴 페이스들을 소개한다.
지구-65 그웬 스테이시(스파이더 그웬)
피터 파커 대신 그웬 스테이시가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우먼으로 활약하는 지구. 그웬은 이곳에서 스파이더우먼이 되었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피터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를 빌런 리자드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졸업식을 엉망으로 망친 지구-65의 피터(리자드맨)는 목숨을 잃고 그웬은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걸 지금도 후회한다. 그러다 1편에서 다른 지구에 사는 마일스 모랄레스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웬은 마일스와의 재회를 꿈꾸지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방법이 없기에 지리멸렬한 일상을 버틸 뿐이다. 그웬의 지구-65는 수채화풍 색감으로 묘사된 세계로 캐릭터 대신 배경 표현을 통해 인물의 추상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지구-1610 마일스 모랄레스(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가 사는 지구. 1편에서 마일스는 브루클린 비전 아카데미로 전학한다. 아들이 좋은 환경에서 뛰어난 교육을 받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일스의 엄마는 그가 브루클린에서 멀리 떨어진 뉴저지의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깜짝 놀란다. 마일스는 이제 투명화 능력, 전격 능력 등을 잘 컨트롤하는 어엿한 스파이더맨이 되어 브루클린의 평화를 지킨다. 한 가지 걱정은 부모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을 수 없다는 거다. 그로 인해 부모와의 사이가 벌어질수록 마일스는 답답하기만 하다. 전작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마찬가지로 코믹스의 톤을 기반으로 묘사된 세계다.
지구-50101 뭄바튼/ 파비트르 프라바카르(스파이더맨 인디아)
스파이더맨 인디아가 존재하는 이곳 지구의 인도에는 뭄바이와 맨해튼을 뒤섞은 듯한 도시 뭄바튼이 있다. 원래 마일스는 여기를 오면 안되지만 스팟을 추적하는 그웬을 몰래 쫓다 어쩔 수 없이 흘러들어온다. 문제는 마일스가 ‘캐논 이벤트’라고 하는, 각 우주의 스파이더맨들이 반드시 희생을 치러야 하는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온 멀티버스의 사건들이 꼬이게 된다는 것. 이를 막아보려 수많은 스파이더버스 속 스파이더맨들이 찾아오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후 다. 그리고 뭄바튼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구-138 호비 브라운(스파이더 펑크)
록 스피릿이 충만한 아웃사이더 기질의 스파이더맨으로, 밴드 활동에 열을 올린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체제에 굴복하지 않는 반항아이며, 알케맥스의 방어막을 한방에 뚫는 등 강력한 능력을 지녔다. 마일스와 그웬이 사건을 해결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깨알같이 도움을 주는 신스틸러 조력자다. 기본적으로 2D 질감에 잡지를 덕지덕지 조각내 붙여놓은 스타일로 표현된다. 몸통과 조끼, 테두리의 프레임 간격을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만들어 컷아웃 처리한 애니메이팅 방식은 마치 스톱모션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유의 쿨함으로 그웬을 포함한 많은 스파이더맨들의 지지와 원망을 한몸에 받는 사랑스러운 골칫덩어리.
지구-928 미겔 오하라(스파이더맨 2099)
이곳에 존재하는 도시 ‘누에바요크’의 기본 컨셉은 시드 미드가 디자인한 것 같은 신미래 도시의 이미지다.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의 헤드쿼터 본부 같은 곳. 마일스가 방해를 놓은 ‘캐논 이벤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이곳으로 모인다. 그리고 마일스는 스파이더맨 2099로부터 자신의 아빠가 서장이 되면 목숨을 잃게 되며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개한다. 미구엘 오하라, 일명 스파이더맨 2099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라 불리는 스파이더맨 세계관 전체의 존속을 책임지는 존재다. MCU의 멀티버스에 관해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캐릭터의 면면을 보며 쾌재를 불렀을지 모른다. 스파이더맨 2099가 강력하게 사수하는 ‘캐논 이벤트’ 사태가 바로 디즈니+ 시리즈 <로키>에 등장하는 신성한 타임라인과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크로스오버의 기운이 묻어난다.
지구-42 클론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여러 지구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장소다. 마일스는 그웬과 함께 빌런 스팟의 만행을 막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원래 살던 지구가 아니라 다른 지구에 불시착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곳에는 죽은 줄 알았던 아론 삼촌이 살아 있다! 왜 마일스가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걸까. 마일스의 손등을 깨문 거미가 실은 지구-1610의 거미가 아니라 지구-42의 거미라는 점에 힌트가 숨겨져 있다. 지구-42는 마일스가 사는 지구와 유사하지만 좀더 어둡고 암울한 톤으로 묘사된다. 미구엘의 명령을 받은 스파이더맨 추격대들이 여기까지 쫓아오지만 사실 지구-42에는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 않고, 진정한 적은 따로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