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의 형상, <메모리아>
<메모리아>는 소리의 영화다. 소리는 물질이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파동이기에 이것은 또한 존재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소리의 근원이 마침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리는 화면에 드러나는 이미지를 응시하며 시간을 고스란히 체험한다. 영화의 처음, 인적 없는 새벽에 차가 빼곡히 들어선 주차장에서 갑자기 도난방지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한 자동차에서 시작한 경보음은 같은 공간에 늘어선 다른 자동차에 전염되듯 퍼져나간다. 모든 자동차의 경보음이 차례로 울렸다가 멈추기까지의 광경을 카메라는 가만히 지켜본다. 아무도 없는 곳에 울렸다가 멎는 소리는 무언가가 여기에 있었고 그것이 떠나갔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말하면 <메모리아>는 형체가 없는 소리로 존재를 다루는 영화이자 시간을 체험케 하는 영화다.
전생의 기억과 환생을 주요한 테마로 다루었던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몇편의 전작과 <메모리아>는 큰 맥락에서 결을 같이하고 있다. 위라세타꾼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는 영혼과 동물로 환생한 존재가 살아 있는 인간과 함께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엉클 분미>에서 분미 삼촌의 죽은 아내 후아이의 영혼과 실종되었던 아들 자이가 원숭이 귀신으로 환생해 남은 가족과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함께하는 장면이 그렇다. 자이는 온몸에 털이 자란 빨간 눈의 큰 원숭이 모습으로, 후아이의 영혼은 주위 사물이 투과되어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가 점차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메모리아>에는 영혼이나 환생체로의 동물과 같은 신비한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에 신비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소리이다. 형체는 없지만 존재의 유무를 감지해낼 수 있는 소리는 위라세타꾼의 전작에서 태국의 정글을 떠돌던 영혼과 동일하다.
<메모리아>에서 소리가 형상을 드러내는 방식은 어떤 여정을 따른다. 간밤에 불현듯 들려온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사운드 엔지니어인 에르난을 찾아간 제시카는 그에게 자신이 들은 소리를 시간을 들여 천천히 설명한다. 에르난은 곧 자신의 장비를 동원하여 소리를 만들어나가는데 소리가 가진 물체의 속성을 설명할 말을 찾던 제시카는 난관에 봉착한다. 제시카가 찾고자 하는 소리는 석조 구체가 금속성의 우물에 떨어지는 소리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지구 중심부에서 울리는 소리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소리는 에르난이 만들어낸 단 한번의 파동을 가진 음향의 스펙트럼으로 모니터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의외인 점은 제시카가 찾으려는 소리와 가장 닮은 것이 다름 아닌 ‘나무 방망이에 맞아 이불 위로 쓰러질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소리의 진짜 정체와는 별개로 그것이 가진 파동은 어쩐지 인간의 몸과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의 파동이 제시카의 육화한 몸을 거쳐 비로소 감응으로 전이될 때 위라세타꾼의 영화에서 영혼이 사라진 자리에 소리가 들어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만 같다.
소리의 파동은 다른 이의 삶을 느끼는 감응의 형태로 변화하며 마침내 몸을 얻어 육화되는 데 반해 어떤 존재들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제시카는 여동생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식사 테이블에서 여동생이 안드레스에 대한 화제를 꺼낸다. 제시카는 치과 의사인 안드레스가 죽었다고 믿고 있지만 여동생 부부는 안드레스가 살아 있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제시카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지만 안드레스의 생사와 연관된 진위는 끝내 알 수 없다. 부부는 또 정글에 길을 놓던 남자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지는 대화의 말미에서 모호해진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진실이란 이후 에르난을 찾아간 제시카가 누구도 에르난을 알지 못하며 그가 마치 없던 것과 같은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는 것뿐이다.
사라졌거나 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존재, 소리의 근원으로 짐작할 수 있는 어떤 물질과 육화한 인간의 몸은 비선형적 시간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그것은 <메모리아>의 전반부에서 사라진 에르난이 영화의 후반부에 또 다른 에르난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며 그가 있는 보고타 어딘가의 터널에서는 여전히 6천년 전의 유해를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시간을 있는 그대로 감각하게 하는 두번의 롱테이크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눈을 뜨고 잠든 에르난의 육신과 낯선 비행 물체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에르난이 잠시 죽음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화면은 잠깐 정지한 듯 보이지만 그의 몸을 둘러싼 풀이 바람에 흔들릴 때 화면은 정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땠냐는 제시카의 말에 그는 “잠깐 멈춘 것뿐”이라 답한다. 영화를 보는 지금의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그의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또 영화 후반부의 에르난은 지금 목격되는 현재이면서 앞서 등장한 에르난의 미래이다. 제시카가 찾아 헤매던 소리의 근원은 에르난에 의하면 “이보다 앞선 시간”이지만 지금의 우리로선 미래를 암시하는 비행 물체다.
비행 물체와 에르난의 잠든 몸을 담은 각각의 프레임 안에는 과거와 미래가 혼재하고 있으면서 지켜봄으로써 현재의 시간을 감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비행 물체와 그 물체가 만들어낸 파동으로 생긴 동그란 모양의 연기가 사위어가는 롱테이크는 시간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장면으로 남는다. <메모리아>에서 소리는 어떤 이의 삶이며 어느 때의 시간이다. 제시카는 어느 밤 쾅 하는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에르난의 손을 맞잡고 지난 생의 기억을 들으며 소리의 파동을 느낄 때 어느덧 소리는 제시카라는 인물의 몸을 얻어 다른 이의 기억에 감응하는 자로 환생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