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17:1로 싸우다가 아무리 맞아도 금방 회복하는 재생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래 친구들과 자신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정원고등학교에 전학 온 그는 자신처럼 초능력을 가진 친구들을 사귀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늘 계주 대표로 나갔다는 고윤정은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희수와 닮은 점이 많다. 이를테면 인터뷰 중 눈앞에 날아다니는 모기를 한번에 잡을 만큼 털털하고, 옆에 앉아 있는 봉석 역의 이정하가 <무빙> 현장에서 와이어 연기를 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해주는 사려 깊은 배려심에서 희수의 캐릭터가 겹친다.
- <무빙> 오디션을 볼 때는 어땠나.
= 원작 웹툰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디션장에서 준 대본을 준비 없이 그냥 읽었다. <헌트>를 준비하던 때라 앞머리를 내리고 머리를 짧게 자른 상태였는데, 마침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 역할이라 머리를 질끈 묶고 갔다. 감독님이 워낙 좋다, 별로다 같은 티를 안 내는 분이라 오디션 때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지만, 왠지 오디션에 붙을 것 같았다. (웃음) 원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즉석으로 리딩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실제 나와 말투도 성격도 비슷한 캐릭터라 대본이 술술 잘 읽혔다.
-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금방 재생하는 능력을 아빠 주원(류승룡)에게서 물려받았다. 하지만 성격 면에서는 다른 점이 많다.
= 초능력 외에는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많이 닮았다. 아빠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혼란스러워할 때, 이를 다잡아주던 엄마 역할을 대신하며 일찍 철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를 다그치기도, 설득하기도, 이해하기도 하는 애어른 같은 모습을 보인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끔 아빠와 함께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다.
- 류승룡과의 호흡은 어땠나.
= 선배님이 워낙 딸바보 역할로 유명하지 않나. 나 역시 <7번방의 선물>을 통해 선배님을 알게 됐다. 선배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실제로 내가 아빠에게 딸 같은 딸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선배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온전히 역할에 몰입하시도록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선배님의 눈을 보고 슛이 들어가면 대본 이외의 부수적인 것들이 저절로 막 생겨났다. 아빠가 좀더 잘 먹고 잘 살고 잘 자고 본인만 생각했으면 좋겠는데 왜 자신을 희생할까, 고맙지만 답답하고 속상했다. 사실 대사가 너무 많은 신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세팅을 바꿀 때 리허설을 하고 싶었는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 선배님이 먼저 옆에 다가와서 다음 장면 리딩을 한번 맞춰보자고 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먼저 말을 꺼내도 됐을 텐데.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촬영했다.
- 주원이 속한 기성세대가 활약했던 과거와 그들의 자녀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현재, 사회가 초능력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진 것으로 묘사된다.
= 영화 <왓치맨>을 보고 <무빙> 오디션장에 갔다. 초능력을 대하는 태도가 마침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마블 히어로 영화를 보면 초능력자는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멋있는 존재다. 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초능력을 이용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능숙하게 구했다면, 우리는 초능력의 이면을 보여준다. 초능력은 특별한 게 아니라 특이한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이를 숨기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평범한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을 친구에게 공유하며 각박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힘을 나누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 슈퍼히어로영화에서 재생능력은 대체로 CG를 통해 표현된다. 배우가 연기로 부여할 수 있는 디테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겠다.
= 희수가 비행능력을 가진 건 아니라서 크로마키 촬영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아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기는 없었지만 희수가 어느 정도 고통을 느끼는 건지 알아야 했다. 작가님에게 여쭤보니 희수가 총에 맞으면 남들이 주먹을 한대 맞았을 때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하더라. 누군가에게 맞아도 덤덤하게 참고 넘어가는 연기를 하는 건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다. 원래 몸에 상처가 나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왜 이제 왔냐는 말을 들을 만큼 고통에 둔감한 편이다. 어찌 보면 연기를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정말 편안하게 실제 나처럼 연기했다. 다만 맞는 연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 받아줘야 때리는 쪽의 연기도 잘 나올 수 있다. 액션 합을 맞추면서 내가 어설프게 팔을 휘둘러도 멋있는 신이 나올 수 있게 연기해줬던 액션팀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웃음)
- 희수와 봉석 그리고 강훈(김도훈)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나.
= 희수에게 봉석은 ‘처음’이다. 전학 와서 처음 사귀게 된 친구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다. 신뢰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다 보니 로맨스적으로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강훈은 희수를 좋아해서 봉석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돌연변이라서 외롭게 지내고 있는 자신과 달리 저 둘은 다정하고 외롭지 않게 지내는 것 같아서 자신도 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다.
- 희수는 봉석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정의감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한 후 정원고등학교에 전학 온다.
= 너무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겠다고 의식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어리광도 못 부리며 자랐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아빠가 더 살갑고 다정하고 말랑말랑한 성격이다 보니 습관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봉석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감정과 초능력을 드러내는 것처럼, 희수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서게 된다. 천성이 무척 따뜻한 친구다.
- 현재 10대 아이들의 이야기, 과거 부모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 모두가 등장하는 세 파트로 스토리가 나뉘어져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어떤 전개를 기대할 수 있나.
= 초반에 캐릭터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하이틴 장르에 가깝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무빙’이란 제목의 두 가지 의미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무빙은 ‘움직이다’라는 뜻도 있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이라는 의미도 있지 않나. <무빙>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