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인터뷰] 물음표의 눈, ‘지옥만세’ 오우리
2023-08-23
글 : 이우빈
사진 : 오계옥

“조금 더 억눌리고 상처받으며 살았을 때의 나 같다.” 배우 오우리는 <지옥만세> 속 송나미와 본인의 모습을 하나로 겹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소위 ‘오글거리는’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특유의 감성, 종종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왈가닥 같고 어리숙한 모습들. 최근 5년간 20편이 넘는 독립 장·단편 영화에 얼굴을 내비치면서 주로 사회의 그늘, 성장기의 아픔을 그려냈던 오우리의 본성은 이처럼 명랑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그는 본인의 얼굴을 두고 영화의 문제의식과 서사성을 관객에게 던질 줄 아는 “물음표의 눈”을 가졌다고 규명한다. 배우로서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적확히 아는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밀어붙이기에 충분한 활동량이 만나서 지금의 ‘배우 오우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 대략 5년째 매해 4~5편의 장·단편 영화에 출연 중이다. 그동안 3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워커홀릭인가.

= 맞다. 내가 봐도 일중독이다. (웃음) 사실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쪽에 가깝기도 하다. 취미나 특기도 딱히 없어서 일로 인생을 해소하는 편인가보다. 오는 9월엔 학교(숭실대학교)에 복학하고 졸업 작품으로 단편영화도 하나 더 찍어야 한다. 계속 바쁠 것 같다.

- 나미는 선우(방효린)와 채린(정이주) 사이에서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 감독님께서 오디션 당시에 하셨던 말씀이 있다. 실제 여고생들을 보면 아무리 우울한 상황일지라도 마냥 침체해 있진 않는다는 거다. 한껏 풀이 죽어 있다가도 갑자기 힘이 넘치는 모습이 있지 않냐는 말씀이었다. 아마 내 본모습에서 그런 면모를 발견하신 것 같다. 그래서 나미를 연기할 때도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신경 쓰면서 일부러 더 통통 튄다거나 시니컬해지려고 애쓰진 않았다. 대신 나미의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고 발산하면서 내가 지닌 에너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려 했다.

- 임오정 감독이 “유서 그냥 아무 우체통에다 넣어줘. 운명처럼 어디든 닿겠지”와 같은 나미의 “쓸데없이 낭만적인 대사”를 잘 소화해줬다고 언급했다. 자칫 머쓱할 수 있는 이런 대사를 어떻게 상황에 녹여냈는지.

= 이것 역시 내 안에 있는 모습의 일부인 것 같다. 중학생 때 별명이 ‘고독을 즐기는 오리’였는데… 이런 사춘기 시절에 느꼈던 감성을 많이 떠올렸다. 사실 요즘도 크게 다르진 않다. 사진 찍을 때 나도 모르게 자꾸 이상한 포즈가 문득문득 튀어나올 때가 있다. (웃음)

- 나미는 겉으론 쾌활하고 호전적이나 알고 보면 선우보다 훨씬 겁이 많다. 가시를 드러내고 있으나 속은 말랑말랑한 고슴도치 같다는 인상이다.

= 나도 선인장 같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늘 움츠려 있고 눈치 보며 산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미는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지 않나. 그러한 과거 역시 나미가 은연중에 품고 있는 생존 본능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느꼈다.

- 처음 종교 단체에 가서 채린이와 재회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복수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채린이를 보자마자 덜덜 떨고 있었다.

= 공격의 힘이 아예 상실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선우 앞이니까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서 남은 힘이라도 보여주려는 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떨고 있지만, 한편으론 온몸에 힘을 꼭 주고 있단 인상을 주려 했다.

- 나미의 순한 성정은 명호(박성훈)에게 종교 가입을 권유받을 때도 드러난다. 흔들림 없이 복수를 노리는 선우와 달리 나미는 점차 그들의 온기를 받아들인다. 덩달아 채린을 향한 복수심도 희미해진다.

= 속이 여린 만큼 언제나 다른 사람의 감정과 애정, 관심을 갈구해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호나 채린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역지사지의 마음도 있었을 거다. 나미 역시 선우에게 어떤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뒤로 가면서 차차 드러나지 않나. 그렇기에 본인이 채린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선우가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을 거란 두려움도 있던 것 같다. 워낙 겁이 많으니까.

- 애초에 나미에게 채린을 해칠 의지나 용기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어떻게 생각했나.

= 생각보단 말부터 꺼내고 보는 타입이라고 여겼다. 계속해서 세게 말하면 본인이 정말 강한 줄 아는 거다. 다른 사람에게도 호언장담했으니 해내야겠다는 강박도 생기고. 또 선우를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줘야겠다는 마음도 있던 것 같다. 그런데 갈수록 선우는 더 강한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고 나미는 여린 모습을 들킨다. 아마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는데 나미만 몰랐던 것같다.

- 나미의 성격엔 가정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어머니와 싸우는 장면에서 애증의 농도가 짙게 표현된다.

= 나미는 다른 누구보다도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 친구다. 나미가 죽음 이후의 자신을 상상할 때도 어머니가 본인 때문에 아파하고 본인에게 더 큰 관심을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마냥 행복한 로맨스나 아기자기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맡은 경우는 드물다. 대신 <지옥만세>처럼 일종의 사회적 무거움을 짊어지는 역할로 자주 얼굴을 비췄다.

= 예전에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모더레이터께서 해준 얘기가 있다. 내가 사회적 병폐를 말할 때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 왜 우린 더 좋아질 수 없지?”란 뉘앙스가 남들보다 배로 풍기는 편이라고 하시더라. ‘물음표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여줬었는데, 아무래도 내 얼굴이 각종 문제의식을 던지기에 적합한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앞으로는 다른 분야에도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로맨스영화. 로맨틱 코미디 말고 진짜 절절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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