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8월3일 오전 11시30분, 극장에서 응원할 시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인터하이 상영으로 보는 과몰입 문화
2023-09-07
글·사진 : 이자연

지난 7월의 어느 평온한 날, <슬램덩크> 팬들에게 일본으로부터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8월3일 오전 11시30분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인터하이 상영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에서도 같은 시각에 같은 상영회가 열린다고 했다. 8월3일 오전 11시30분. 도대체 이날이 무슨 날인가. 원작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고 농구부가 고교최강자인 산왕공고 농구부와 경기를 치른 날이 아닌가. 이 인터하이 상영은 원작 만화와 똑같은 상황을 구현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초대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극장은 경기장이 되고, 관객은 관중이 되는 과몰입의 산 현장이 펼쳐지는 셈이다.

영화산업의 새로운 활로, 과몰입

사진출처 전혜진

인터하이 상영회를 본 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바로 인터하이 티켓. 실제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처럼 경기 티켓을 나눠주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티켓 디자인이다. 영화에서 전년도 우승 고교를 포스터(송태섭이 주먹으로 포스터를 쾅 치며 “이 녀석의 분해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 하던 장면에서 나온 그 포스터)의 주인공으로 내건 것처럼, 포스터에 담긴 정우성의 사진을 실제 티켓 앞면에 그대로 내세웠다. 인터하이에 참여한 고교 대진표가 담긴 티켓 뒷면은 덤. 만화와 영화 속에 담긴 요소를 현실로 꺼내오기 시작하면서 상영회의 모든 게 ‘진짜’가 되어갔다. 설레는 상상과 낭만으로 가득해질 영화관 속 세계. 인터하이 상영회가 열리지 않을 예정이었던 한국의 <슬램덩크> 팬들의 갈망은 더더욱 커져갔다. 이들은 같은 행사를 경험하고 체험하고 싶다며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슬램덩크> 팬 있어! 한국 사람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 볼 줄 알아!”

결국 ‘북산고 VS 산왕공고 인터하이 상영’은 한국에도 상륙했다. 전국 CJ CGV와 메가박스의 참여 아래 8월3일 오전 11시30분, 인터하이 상영관이 마련된 것이다. CJ CGV는 ‘산왕공고 VS 북산고’, 메가박스는 ‘북산고 VS 산왕공고’로 표기하며 과몰입에 더 박차를 가했다. 티케팅은 치열했다. 팬들은 하루 종일 영화관 앱을 새로고침하며 고군분투했고 좌석은 이쪽 모서리부터 저쪽 모서리까지 몇십 초 안에 빠르게 사라졌다(영화 예매 앱에서 ‘접속 대기인원 2천명’을 처음 목격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배급한 NEW의 류상헌 유통전략팀장은 “SNS를 통해 많은 팬들이 적극적으로 행사 니즈를 밝혔다. 사실 배급사에서는 그전부터 인터하이 상영을 기획하고 있었고, 수입사인 SMG홀딩스를 통해 원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으로부터 해당 상영회의 컨펌을 받기 위해 애썼다”며 인터하이 상영이 국내에서 열릴 수 있었던 과정을 설명했다. 이때 류상헌 팀장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특전 티켓이었다.

“원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으로부터 티켓 저작권 허가를 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8월3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가 빨리 넘어오지 않아 어려웠다. 특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행사까지도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의 허가가 필요해 검수가 엄격한 편이다. 하지만 특전 티켓이 이 상영회를 상징하기 때문에 무조건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과 한국의 티켓 재질이 다르다. 실물이 아닌 인쇄 데이터를 받은 거라 각국의 인쇄 기술에 따라 컨디션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더 얇지만 절취선이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고, 한국은 절취선은 그림으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 티켓처럼 빳빳하다.”

8월3일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하루 관객수는 1만4680명에 달한다. 이날 인터하이 상영을 진행한 전국 극장 수는 62곳. 극장당 한개의 상영관을 오픈했으니 62개의 상영관 대부분이 빽빽하게 관객으로 들어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1월4일 개봉 이후, 9월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묵묵히 상영 중이다. 류상헌 팀장은 “배급 일을 10년 했는데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지금까지의 장기 상영과는 패턴이 다르다. 영화관에 영화가 오랫동안 걸리기 위해서는 신작과 견줄만한 수요와 판매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8개월 동안 그 정도의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게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일주일 관객 추이로 영화 상영 기간을 예측할 수 있는 요즘, 팬덤과 과몰입 문화는 영화산업의 생존 활로로 떠오른다”며 공고한 팬덤이 콘텐츠의 생명력을 어떻게 유지시키는지 설명했다. 실제로 ‘송태섭 생일 특별 상영(7월31일)’과 인터하이 상영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장기간 넘지 못했던 누적 관객수 470만명의 벽을 넘었다. 말 그대로 “뚫어, 송태섭”이었다.

관람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극장

팬들의 과몰입을 하나의 즐길 거리로 적극 반영한 극장들도 있다. 인터하이 상영이 있던 날 메가박스 대전중앙로지점은 상영관 입구에 “난 북산 팬이긴 한데 어제 풍전이랑 붙다가 주전도 다치고…”라는 문구를 부착했다. 원작에서 북산고가 8월2일에 치른 풍전전을 언급하며 <슬램덩크>의 인터하이 여정을 연속적으로 상기시킨 것이다. 화룡점정은 스크린에 띄워둔 산왕공고와 북산고의 주전 선수 명단이었다. 이로 인해 원작에 대한 근사치는 더욱 높아졌다. 메가박스는 “인터하이 상영을 찾는 관객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대한 애정이 깊고 적극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실제 경기장을 찾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관객의 수요층, 성향, 선호 등을 파악하여 반영한 결과, 많은 팬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해당 이벤트는 팬덤의 니즈를 고려한 극장 경험이 관객의 콘텐츠 충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극장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 이미지까지 제고할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로 남았다.

메가박스 더 부티크 목동현대점은 <슬램덩크> 팬들 사이에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점대만’ 점장님으로 유명하다. 각 인물의 생일날 경품 행사를 진행하며 작은 생일 파티를 열거나 상영관 명칭을 주인공 이름으로 바꾸는 등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이번 인터하이 상영에서도 배급사에서 전달받은 특전 티켓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응원봉 선물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메가박스는 “관객들이 극장 안에서 영화 관람 이상의 경험을 안고 가길 바랐다. 특히 특별 상영의 경우 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높고 실관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긍정적인 성과를 설명했다.

124분의 시간이 흘러 인터하이 상영이 끝났다. 27번째 관람이었다. 영화는 여느 때처럼 짜릿하고 고무적이었지만 그전까지의 기분과는 사뭇 달랐다. 나를 포함해 인터하이 상영을 찾은 관객은 산왕전의 관중이 되었다. 어느덧 관객은 포기를 모르는 소년들을 ‘본’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이 되었고, 영화와 현실 사이의 가로막을 넘는 경험을 하게 됐다. 관객은 그렇게 과몰입의 세계로 빠져든다. 팬들은 각자의 일상을 부지런히 살다가 또 광장이 마련되면 재빠르게 모일 것이다. 자, 다음 회동은 언제가 될까. 아마도 내년 1월1일 서태웅 생일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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