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재효는 모종의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다. 재효는 갓 전역한 준성(유승호)을 민우(유수빈)와의 술자리에 부른 뒤 민우가 인사불성으로 취하자 자신의 자취방에 민우를 납치, 감금한다. 그리고 민우 엄마(백지원)에게 몸값으로 현금 10억원을 요구한다. 배우 김동휘는 그런 재효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는 캐릭터”라 요약했다. 하지만 재효와 달리 김동휘는 재효의 궤적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수많은 연기적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 재효와 준성은 오랜 친구였다가 범죄의 공범이 되고 또 서로의 눈엣가시가 된다. 두 사람의 사이를 어떻게 규정했나.
= 준성이 전역 당일 재효를 만나러 온 걸 보면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계속해서 변해도 단짝이라는 점은 가져가려 했다. 재효가 준성을 납치극에 끌어들인 이유 또한 준성을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저질러도 되는 범죄지만 준성의 상황도 여의치 않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다. 함께 일을 도모하면 범죄일지라도 친구의 곤궁한 사정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다.
- 공식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를 보면 재효는 납치극을 ‘충동적으로’ 벌인다고 적혀 있다. 재효를 연기한 배우로서 이 설명에 동의하나.
= 연기로 시청자를 납득시키는 일이 재효로서 급선무였다. 내가 연기를 조금만 잘못해도 시청자들에게 “저렇게 납치까지 해야 해?”라는 볼멘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재효는 이것 아니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납치극을 벌였을 것이다. 충동도 결국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마음이 발현된 것 아닌가. 여러 스트레스가 재효를 덮치며 돌파구를 찾던 찰나에 기회를 잡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정곤 감독님과 함께 촬영 전 재효와 준성, 민우의 상황을 함께 버무리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 버무리는 과정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 지난해 12월에 크랭크인을 했는데 10월부터 감독님이 승호 형, 수빈 형과 만나는 자리를 많이 주선하셨다. 밥도 자주 먹고 밥 먹는 게 지겨울 때면 연습실에서 대본 리딩 시간도 가졌다. 사전 작업이 없었다면 촬영 현장에 가서야 서로 친해졌을 텐데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친 후에 촬영에 들어가니 자연히 합이 맞았다.
- 의대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 재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학과 점퍼를 입고 다닌다.
= 재효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퇴학의 부당함을 소명하러 학교에 갈 때 학과 점퍼를 입고 가는 것도 내가 감독님께 제안했다. 재효에게 의대는 준거 집단의 소속감을 넘어 인생의 전부다. 재효는 의대생으로서의 삶이 끝나면 본인의 인생도 끝난다고 여겼을 것이다. 내게 연기를 그만두라고 종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 감정 변화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무표정한 얼굴에서 번뜩이는 눈빛이 대사 이상의 것을 전달해주더라.
= 감독님과 끊임없이 이야기한 지점이 재효는 회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효는 한순간도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됐다. 모든 상황을 주도하고 계획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하루살이처럼 무조건 현재에만 집중해 민우를 조종하고 괴롭혀야 당장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 납치범인 재효의 범죄 행각이 인상적이다. AI 번역 앱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든가 끊임없이 민우에게 동요 <문어송>을 반복해 틀어주는 점이 신선하다.
= 전부 대본에 나와 있다. 나는 재효가 민우를 장롱 속에 가두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방 자체를 감옥으로 써도 되는데 인질을 방 속의 방인 암실에 가두어서 완전히 폐쇄시킨다. 그런 점에서 재효는 정말 극악무도하다. 추측건대 재효는 민우와 일대일로 붙어선 승산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치 ‘코끼리의 족쇄’처럼 재효에게 끝없이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을 것이다. 재효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는 악한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연기하는 상황별로 매번 몰입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 끊임없이 상황에 몰입하다 낯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나.
= 앞서 말한 2화의 학교 방문 장면을 찍을 때였다. 사실 그 신은 <거래>에서 찍은 장면 중 난이도가 낮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스탠바이 중 눈앞에 소화기가 보이자 순간 ’저걸로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면 한번에 죽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재효만 생각하고 재효에만 갇혀 살던 스스로가 무서웠다.
- 몸싸움에 가까운 액션 연기도 매회 등장한다.= 전문용어로 드잡이라 한다. (웃음) 액션스쿨에 가 몇 차례 지도를 받고 현장에서도 리허설을 굉장히 많이 했다. 1화에서 재효와 준성이 핸드폰을 두고 싸우는 장면은 사흘간 찍었다. 안무를 외워 퍼포밍하는 느낌이었다. 사흘간 찍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액션은 매컷이 새로웠다. <거래> 촬영 현장은 작품의 시간 순으로 촬영한 축복받은 현장이었는데 액션 신 바로 앞에 깊은 감정 장면이 주로 나오다 보니 힘겨울 때도 있었다.
-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는 영화의 면면이 흥미롭다. <초록물고기> <파이트 클럽> 같은 옛 영화도 있지만 다수가 올해 개봉한 예술영화다.
= 개봉작은 전부 챙겨보는 편이다.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나 수상작들도 개봉 전 아카데미 특별전에서 직접 예매해 관람한다. 영화 이야기는 하루 종일 나눌 수 있다. (올해 개봉작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 뭐냐는 질문을 건네자) 너무 어렵다. 세개 뽑으면 안되나. 우선 <파벨만스> <애스터로이드 시티> 그리고 <잠>도 좋았다. 그런데 <오펜하이머>도 아이맥스로 두번이나 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