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이 운명처럼 만난 작품과 함께 돌아왔다. <서울의 봄>은 12·12에 관한 실제 기억이 있는 감독이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파헤치는 내밀한 작업이다. 무국적성을 지향한 안남시(<아수라>)에서 1979년 서울시(<서울의 봄>)로 옮겨온 김성수의 세계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육박하는 카메라와 장근영 미술감독의 집요한 터치로 전과 다른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전두광이라는 불편한 캐릭터에 도전한 황정민과 꿈이 없던 <비트>(1999)의 민이에서 목적의식 뚜렷한 군인이 되어 김성수 세계에 복귀한 정우성의 격돌하는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 이번 영화로 <아수라>의 드림팀과 다시 뭉친 그는 감독의 비전을 정확히 이해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계속하고 싶은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 19살 때 그날의 총성을 직접 들은 뒤 12·12가 인생의 오랜 의문으로 남았다고.
= 그렇다. 1979년 12월12일 당시에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보이는 데서 살았는데, 그날 밖에 있다가 장갑차 하나가 공관쪽으로 가는 걸 봤다. 호기심에 그걸 보겠다고 육교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총소리를 처음 들었다. 이미 육교에 있던 군인들에게 가라는 소리를 듣고 내려왔는데 그다음이 궁금해서 도무지 집에 갈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근처 친구네 집 옥상에 올라가 웅크리고 앉아 간헐적으로 계속 들리던 ‘땅, 타당’ 하는 총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오래 각인됐고 몇십 년간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았다. 한참 지나 감독으로 데뷔할 즈음인 2003년 무렵에서야 그날 밤의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걸 찾아 읽으며 당시의 상황에 놓였던 군인들은 어떻게 행동했을지 계속 상상했다.
- 2019년에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로부터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고 놀랐을 것 같다.
= 뭣해서 내색한 적은 없지만 시나리오가 내 손에 들어왔을 때 운명적이라고 느꼈다. 그만큼 깊이 오래 생각했던 사건이니까. 처음에 고사하면서도 어쩌면 이걸 하게 되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고, 10개월 정도 지나 2020년 여름에 진행이 결정됐을 때는 결국 이건 내가 거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각색에도 참여했는데, 무엇에 중점을 뒀나.
= 10·26 사태에서부터 12·12가 일어나기 전까지 약 50일에 해당하는 전반부 작업을 오래 했다. 요즘 관객들에겐 우리 이야기가 다소 낯설 것이라 극의 초반부터 영화 안으로 확 끌어들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몸통이 되는 약 9시간, 즉 반란군이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하며 총성을 울린 오후 8시부터 대통령(정동환)이 총장 연행을 재가한 다음날 새벽 5시10분까지는 르포 기자가 긴박한 현장을 밀착해서 지켜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 일을 일으킨 사람조차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과 신념에 따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거기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잘 살려보고 싶었다.
- 영화의 전체 톤을 잡아준 이미지가 있나.
= 12·12에 관한 사진과 기록 영상들이 워낙 많이 남아 있다 보니 굳이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것들을 조합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 상황과 명령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군인들을 따라잡는 이모개 촬영감독의 실력이 빛을 발한다.
= <아수라> 때도 느꼈지만 이모개 감독은 카메라로 구도를 잡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움직이는 감정을 찍는다. 이번에는 그날 앉아서 전화만 받은 군인들의 요동치는 마음까지 잡아냈다. 이모개 감독과 나의 목표는 <아수라> 때처럼 인물들의 동물적인 움직임을 잡아내는 것, 일촉즉발이라 계속 움직이면서 얘기하는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바로 옆에서 본다는 느낌으로 담는 거였다. 마치 빠르게 걸어가는 정치인을 담는 카메라 기자처럼 말이다. 그랬을 때 진짜 같음,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살 것 같았다.
- <아수라>의 장근영 미술감독이 이번에도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았다. 육군본부 벙커, 국무총리 공관, 30경비단 작전실 등 다양한 실내 공간들이 시대의 분위기와 인물의 성격을 반영해 몰입을 도왔다.
= 워낙 밀착해서 찍다 보니 카메라가 잡히는 모든 공간이 더더욱 진짜처럼 보여야만 했다. 가장 훌륭한 영화미술은 시간을 가진 공간을 그대로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장근영 감독에게 최대한 ‘만든 느낌’이 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내 요청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장근영 감독은 시간을 머금은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걸 워낙 행복해하는 아티스트라 믿고 맡긴 바가 크다.
- <아수라>에 이어 협업한 키스탭을 말하자면 김상범 편집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의 봄>이 장르적으로 재밌는 영화가 된 건 편집의 힘 또한 크다. 특히 세종로에서 이태신(정우성)과 전두광이 발포를 두고 대치하는 시퀀스는 적극적인 교차편집 덕분에 긴장감이 배가됐다.
= 대한민국 편집의 선생님이시다. 박찬욱 감독 작품을 다 하시지 않았나. 내가 워낙 편집에 많이 관여하는 편인데 그분을 만나 많이 배웠다. 세종로 대치 신은 어떻게 하면 긴박하게 묘사할지 고민하다 보니 굉장히 여러 번 편집했다. 반란군을 향해 진짜 포를 쐈을 때 생길 민간인 피해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들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와 난처함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이 비극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 황정민 배우는 어떤 역할에서든 황정민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이 강점이고, 낯익은 얼굴의 스타다. 관객이 황정민 배우를 전두광으로 온전히 봐줄까 하는 염려는 없었나.
= 황정민을 택했는데 황정민스러움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잘못된 거다. 나는 정민씨가 자신의 육체 언어로 맡은 역할을 해석해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운반하는 전달력이 매우 뛰어난 배우라고 생각한다. 2018년, 2022년에 황정민 배우가 출연한 연극 <리차드 3세>를 봤다. 잔혹하고 내면이 뒤틀린 왕을 활화산 같은 에너지로 표현하더라. 그런 배우에게 전두광 역할을 맡기는 건 당연했다. 다만 황정민의 겉모습 그대로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정민씨도 원래의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하고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면 더 편할 것 같다고 의견을 줘서 같이 의욕적으로 전두광의 외형을 만들어갔다. 그래서 (특수분장 업체) CELL의 황효균 대표와 회의했는데 황 대표가 “감독님이 원하는 수준까지는 저희가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더라. (웃음) 그래서 내가 “관객들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하고 나왔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한번 가보자”라고 북돋웠다. 성사되고 나서부터는 R&D 공정하듯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여러 형태의 가발을 만들었다. 촬영 때마다 정민씨가 4시간씩 분장을 해야 해서 고생이 많았다.
- 전두광의 적나라한 얼굴로 스크린을 채우는 데에 주저함이 없더라. 불편해할 관객도 있을 텐데.
= <서울의 봄>은 전두광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그가 12·12를 야기했고, 매듭도 그가 짓는다. 그 모든 비극이 그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 그럼에도 <서울의 봄>이 ‘전두광 영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악인의 광기에 영화가 잡아먹히지 않도록 전두광 캐릭터를 세심히 통제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전두광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영화에서 그의 시점으로 전개까지 된다면 이야기의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고 무엇보다 영화가 위험해질 거라 판단했다. 그를 깊이 있게 밀착해서 다루되 관객의 눈까지 되어줄 인물, 전두광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욕심과 야망을 위해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걸 그와 대척점에 서서 증명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 역할이 바로 이태신 장군이다. 책임감 있게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이태신을 통해 전두광이 위법자이며 중범죄자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 <서울의 봄>까지 보고 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의 정우성 배우는 한국영화에서 수호자를 상징하는 얼굴이 된 것 같다.
= 정우성 배우와 나는 <비트>(1997)로 신인배우, 신인감독으로 만나 한국영화계에서 함께 쭉 성장해왔다. 오랜 시간 우성씨를 지켜봐오면서 이제는 그를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는데, 정우성에게는 이태신 같은 면이 있다. 그와 이태신 모두 우리가 으레 신념이 강하다고 말할 때의 그 신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졌고, 근원적으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성씨가 이태신 역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 <서울의 봄>을 본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공수혁 특전사령관(정만식)을 불법 체포하려던 반란군에 홀로 맞서다가 전사한 오진호 소령(정해인)의 이야기로 기억할 것 같다. <서울의 봄>이 ‘전두광 영화’가 되지 않은 건 이 부분의 공도 큰데, 실존 인물인 정병주 사령관과 김오랑 소령의 이 에피소드는 처음부터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나.
= 그렇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얘기는 전체에서 메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 8분짜리 에피소드는 12·12를 압축하는 면이 있다. 극 중 공수혁 사령관을 잡으러 온 이들은 신군부의 회유에 넘어가 그를 배신한 부하들이었고 그를 지키던 오진호 소령은 동료의 총에 맞아 전사한다. 하극상, 다시 말해 같은 편의 배신이라는 데에서 오는 충격과 희생이 다 들어가 있는 신이기에 상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나와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일지라도, 영화적 통일성에 하자가 생기더라도 쪼개지 않고 통으로 과감하게 넣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진짜 훌륭하고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군인이었던 두 실존 인물의 삶을 찾아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 앞으로도 남자들이 극한으로 부딪히고 관계 맺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여전히 그러한가.
= 평생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 일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스토리텔러로서 계속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정해진 것 같다. 그게 바로 남자들끼리의 충돌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고. 한국영화계에 빚이 있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이야기만 좋다면 매체 상관없이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이야기꾼이 자리를 가리면 쓰겠나.